[Review] 작은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 - 앤서니 브라운 展

글 입력 2022.05.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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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유치원과 학교에선 선생님들에게, 매일매일 부모님의 머리맡에서 세상을 조금씩 배워 나갔다. 동네에서 마주친 어른들의 인사와 또래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 장난 속에서도 어김없이 한 뼘씩 자라났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존재가 있었다. 세계를 이해하고,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함께 고민하고 궁금해하던 존재. 다정하게 이야기를 속삭여주던 동화책이다.

 

 

Willy the Dreamer 1997 @ Anthony Browne  .jpg

 


한가득 쌓아 두던 동화책 중에도,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유독 마음 깊이 남곤 했다. 앤서니 브라운은 동화를 읽으면서 사랑과 용기, 믿음과 꿈의 소중함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동화책과 함께 오던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고, 노래를 따라 부르던 어느 날의 기억도 떠오른다. 그 또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노랫말이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훌쩍 커서 어른이 되었고, 그만큼 시간은 늘어난 테이프처럼 흘러갔다. 요즈음 어린이들에게 앤서니 브라운은 어떤 존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어린이 친구들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들으니, 아무래도 앤서니 브라운은 여전히 어린이들의 좋은 친구임에 분명했다.


세계를 차근차근 알아가고 탐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동화책 속 글자를 따라, 부모님의 목소리를 통해 듣던 익숙한 이야기를 전시장에서 만나는 것도 그렇다. 문자에서 그림으로, 영상으로, 나아가 직접 작품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나는 전시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展”, 이곳에선 책을 덮은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가족의 품 안에서


 

My Dad 2000 @ Anthony Browne .jpg

 

 

앤서니 브라운, 그 이름을 들으면 곧바로 “우리 아빠가 최고야”, “우리 엄마”의 표지가 떠오른다. 그만큼 그는 가족을 주제로 다정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부모님이 한 명씩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족의 존재, 그 존재는 우주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동화책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나의 가족을 연결 짓게 되었고, 이야기의 결론은 역시 우리 집 사람들로 향한다. 그들과 나의 관계,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는 그림책 뒤의 사람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앤서니 브라운은 어떤 가족이 있고, 그의 가족은 어떤 존재인지, 그들과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뭐든지 잘하는 형이 멋지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럽고 샘이 났던 모습도 재미있고 어쩐지 공감이 갔다. 그의 그림엔 그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사랑이 가득한 그림 뒤에는 어떤 삶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어린이들은 손을 꼭 붙잡은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소중함을 느끼고,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가족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전시였다.

 

 

Piggybook 1986 @ Anthony Browne.jpg

 

 

그 어떤 동화책보다 마음 깊이 남았던 “돼지책”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고, 책이 준비된 공간에서 오랜만에 다시 동화를 읽었다.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었는지,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깨달았다.


“돼지책”에서 엄마는 집에서 요리와 청소, 온갖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고, 자신을 잃어간다. 도저히 변화하지 않는 상황 속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와 아들들은 돼지로 변한다. 엄마의 부재 속에 하루하루를 후회하며 반성하는 그들에게 다시 돌아온 엄마의 이야기. 어린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지, 무엇이 당연하고 무엇은 당연하지 않은지, 존재의 소중함과 올바른 성 인식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전시장의 어린이


 

Our Girl 2020 @Anthony Browne.jpg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를 보면서 작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작은 발로 힘차게 걷는, 무릎을 스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그보다 더 작아서 실수로 발끝과 부딪히진 않을까 걱정이 들어 조심히 걷게 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편안하게 걷고, 기고, 앉아서 전시를 보는 어린이와 그들의 가족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들뜨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전시장에서 어린이를 몇 번이나 보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앤서니 브라운 전시이니 어린 친구들이 많았던 것은 당연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기획도 많이 기획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꼭 어린이를 위한 전시가 아니더라도, 심심할 때 자주 들르던 미술관, 갤러리에서 이렇게까지 어린이를 본 기억이 없다고?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시각 교육은 문자 교육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런 말을 했다. 어린이만을 위한 기획도 좋지만, 어린이들도 더 폭넓고 다양한 전시회에서 세상과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동안 미술관이 어린 관객들의 방문과 체험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는지, 작은 존재들을 배제하고 있진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로 잠시 다시 돌아가 볼 수 있었던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展”.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고, 가족의 존재와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즐거운 어린이들이 가득하고, 그들의 웃음에 힘을 얻는 전시. 나의 가족을, 나아가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을 사랑하기 좋은 5월, 앤서니 브라운의 세계에 들어서 보길 추천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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