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죽기 직전까지 평생 예술하고 싶어요.” 프로 n잡러 청소년지도사 김현민 ①

김현민표 광대 철학, 배우에 대한 고찰, 그리고 청도년 지도사
글 입력 2022.04.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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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걸 다하며 살 순 없을까? 요즘 mz 세대에선 n잡러가 화두다. 본업 이외에 자신의 관심사, 재능을 살려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단순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는 것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경제활동이다.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그걸로 수익창출도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1세기는 이름하여 융합의 시대다. 서로 접점이 없는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이전엔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분야를 융합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분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세상에 뛰어난 청소년 지도사는 많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청소년사업을 잘 기획 운영하고, 무대예술에 능하며 음악까지 잘 만드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런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냈다면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갖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융합의 시대 21세기에 한 분야의 전문가인 스페셜리스트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갖춘 제너럴리스트가 더 각광받는 이유다.

 

*

 

필자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 길이 전형적이지 않고 독특하다면 더욱. 지역의 청소년수련관을 이용하다가 '김현민'이라는 청소년지도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예사롭지 않았던 첫인상만큼이나 유별난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연극배우를 거쳐 청소년 지도사, 작곡가, 프로듀서까지. 내가 찾고 있던 n잡러였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만들어버렸고, 다양한 직업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 그는 4년간 정들었던 근무지를 떠나 꿈에 가까운 직장으로 옮겨가는 분기점에 있다. 어떻게 꿈에 다가가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직업의 관점으로 직무부터 직업에 대한 고찰, 목표와 가치관, 간직하고 있는 꿈, 그리고 인간 김현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광대 #배우 #청소년지도사 #음악 #김현민 이 다섯 가지 키워드로 인터뷰는 진행된다.

 

특히 6년간의 청소년지도사 일을 하며 쌓았던 노하우가 담겨있으니 이 진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유심히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풀리는 계기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펼쳐낸 솔직한 매력의 인터뷰였다. 큰 욕심 없이 현재를 살며, 죽기 직전까지 예술을 하고 싶다는 광대. ‘김현민’을 만났다.

 

 

 

김현민, 뭐 하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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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기소개해주세요.

 

저는 항상 광대를 꿈꾸는 33살 김현민입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속에서 광대가 되기 위해서 꿈을 찾아 헤매는 사람입니다.

 

 

개인 sns 계정과 센터 내 홍보물에서 본인을 청소년지도자, 작곡가, 프로듀서, 배우라고 소개하셨어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어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정확하게는 ‘였던’입니다. 배우’였던’. 경험했던 일들을 지금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관심을 뚝 끊고 살지는 않거든요. 워낙 전에 것들을 오래 했었고 거기서 쌓인 경험들이나 좋은 센스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하더라도 거기에 잘 융합해서 또 하나의 창작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이런 거를 하고 있던, 했었던, 그런 거를 계속 각인을 시키려고 네이밍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안 붙이려고요. 제 정체성에 혼란이 와요. (웃음) 이게 다재다능…하진 않지만 그게 또 엄청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너무 힘들어요. 그 혼란 속에 사는 게. 아무튼 그렇게 소개를 하고 다닙니다.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고 융합해서 사는 게 큰 목적이거든요. 하나만 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60살 넘어서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요즘 그런 거 있잖아요. MZ 세대들은 안정적인 직장 나와서 건물 사서 연금 받으면서 살고 싶고. 저도 그런 기회가 된다면 좋겠죠. 그런데 뭐가 더 행복하냐 떠올렸을 때 그런 상황보다는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으면 일을 하는 게 좀 더 행복한 상상이더라고요. 청소년지도사를 정년으로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배우 활동이나 작곡가 활동이나 그런 문화 예술 활동을 진짜 죽기 직전까지 업으로 하고 싶거든요. 오히려 노후의 취직 준비를 지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그 타이틀을 계속 갖고 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광대


 

방금 자기소개에서도 그러셨고 ‘광대를 꿈꾼다.’, ‘평생 광대로 살고 싶다’라고 다양한 매체에서 말씀하셨어요. 현민님이 되고 싶은 광대란 어떤 의미인가요?

 

초중고 때 희망 직업란을 쓰잖아요. 그거를 집에 와서 쓰는데, 항상 초중고 직업이 똑같았어요. 광대였어요. 왜 인지 그때는 몰랐는데,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는 앞에서 까불고 흔히 말해 관종이 되는 게 좋았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고등학교 때 연극을 배우고 나서는 오히려 그런 감성들이 좀 사라졌어요. 무대에 서서 내가 빛나 보이고 싶고, 웃기고 싶고 그런 거보다는 미디어든, 극장이든 무대든, 어디든 만나서 서로 교감하고 ‘나에 대해서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직업이 좋더라고요.

 

저는 광대가 가진 애환이 되게 좋거든요? 제 지금 배경화면도 광대예요. (폰 배경화면을 보여주며) 피에로로 항상 이렇게 해놓거든요. 그 광대가 무대에서 희극을 하고 무대 뒤편에서 애환을 담고 울기도 하고 힘들어하고 그런 모습들이 되게 고통스러워 보이고 안쓰러워 보였지만 사실 그런 모습에 반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조금 힘들고 걱정을 하더라도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광대만 한 애환과 페이소스(동정과 연민의 깊은 감정)를 가진 직업을 못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광대가 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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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단 사람들과 교감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대를 꿈꾼다니 조금은 새롭네요.

 

사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광대랑 제가 생각하는 광대랑 조금 다를 순 있죠. 제가 생각하는 광대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과 웃음을 주고,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점이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평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냐면 제가 연예인이나 엄청난 대배우, 대스타, 방탄소년단이 되면 사람들은 나를 ‘동경’하잖아요. 나를 동경하고, 나를 존경하고. 어떻게 보면 나처럼 되고 싶고, 아이돌화가 되고. 그런 스포트라이트보다는 늘 약자의 편에 있고 소통했을 때 가장 어려움이 없는 존재가 광대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과 재미와 웃음을 주는 거는 똑같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광대가 되고 싶은 거예요.

 

사회구조상 광대는 되게 천박한 직업일 수 있겠죠. 그렇지만 유명인이 되고, 기득권이 가진 에너지를 나눠주는 게 아니고 같은 위치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그 마인드로 살아요. ‘나는 기득권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걸 계속 강조하면서 사는 편이죠.

 

 

 

#배우


 

고등학교 때 연극을 배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연극을 배우게 된 건가요?

 

고2 때 극단을 들어가게 됐는데, 흔히 말해서 길거리 캐스팅이었어요. 친구들이랑 롯데월드를 갔는데 캐스팅 당한 거죠. ‘연예인 해볼 생각 없냐’ 이런 말들이 어린 나이에 부러웠죠. 4~5명 친구들과 롯데월드에서 다 놀고 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명함을 주셨어요. 그때 기억이 생생히 나는 게 ‘연예인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그런 것도 아니고 ‘연극 한 번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갑자기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갑자기 그래갖고 연극은 처음인데 전 연예인이나 연극배우나 그게 그거겠거니 생각했죠. 명함에 주소를 보니 강남에 있는 엔터테인먼트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강남은 그냥 본사였고 대학로로 가라고 해서 갔죠. 소극장에 있는 먼지가 엄청 가득한 곳이었어요. 거기서 이제 처음 연극을 시작했죠. 배우는 것도 없었어요. 학원처럼 배우고 코칭 받고 그런 것도 없이 대본을 툭 던져주면서 이거 외워라. 이제 그렇게 배우의 삶이 시작됐죠.


 

오오 길거리 캐스팅이라.. 되게 신기한 운명이네요?

 

그렇죠. 나는 그래서 그때 그 매니저한테 나를 왜 데려갔어요? 했더니 딱히 이유가 없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되게 말랐었거든요. 맞는 배역이 필요했던 거예요. 째잘째잘대고 목소리도 높은 톤의 앙상블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나는 하나를 처음 시작하면 발만 담구고 빠지는 타입이 아니긴 하거든요. 그때는 솔직히 꿈도 없었고, 꿈에 뭐 광대하고 적었지만 광대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고 공부도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제가 친구 관계라든지 그런 게 엄청 좋은 편도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계속 소극장에 좀 박혀있었죠. 그렇게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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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인스타그램에서 “어둑어둑한 지하 소극장의 먼지는 바깥 먼지와 다르게 아름답다.”라고 쓴 걸 봤어요. 이 문장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 같던데, 어떤 의미로 쓰셨나요?

 

솔직히 술 먹고 쓴 것도 있긴 한데 (웃음)

 

제가 행복감이나 만족은 소소한 데서, 미니멀한 데서 얻는 편이거든요. 대학로 극장 조명은 켜질 때 휘잉 하고 특유의 소리가 나면서 켜지고요. 그 먼지가 촤악 부서지는 감성이 있어요. 나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데 집에서 먼지 날리고 옷에 먼지 붙어있으면 짜증 나잖아요. 같은 먼지고, 같은 존재잖아요. 근데 그게 연극에서 나는 먼지가 그렇게 예뻐 보이더라고요.

 

‘먼지가 보인다’라는 건, 사람들이 들어와 객석에 앉고 만석이 되고 암전이 되고 조명이 탁 켜졌을 때. 어둑어둑한 데서 먼지가 탁 보이는 거거든요. 그 정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떻게 보면 ‘먼지가 많다는 건 관객도 많이 왔다’라는 저만의 반증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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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에 애정이 많은 필자도 그 순간을 굉장히 좋아한다. 공연장엔 바깥세상과 다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극장에 들어서고, 암전이 되고 잠시 후 극장의 조명이 탁 켜졌을 때. 필자는 그 순간을 ‘다른 세계에 들어왔다.’ 하고 표현한다. 같은 빛이지만, 극장에서 켜지는 불빛은 바깥세상과 다른,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빛이다. 관객과 마찬가지로 배우도 이 극장의 낭만을 좋아하는구나. “공연은 밤에 일어나는 기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작품들을 올리셨나요?

 

지금 생각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건, <겁탈>, <작업의 정석>, <남자충동>, <빨래>, <누가누구>, <배고파4> 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엄청난 메이커 작품을 하진 않았어요. 낙하산 배우였고 족보도 없는 배우여서 워크숍 작품을 했었죠. 근데 보통 대학로에 있는 연극 작품들은 다 비슷해요. 메이저 작품을 좀 차용해서 쓴 작품들이 많죠. 메이저 작품을 변형해서 만든 워크숍 기획 공연들을 많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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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만족스러우면 만족스러울수록 (코로나 이전 상황에) 최고로 큰 목소리로 환호하고 가장 큰 박수를 치곤하는데요. 제가 받은 감동을 표현하고 배우분들, 스탭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서였어요. 무대 위 배우들이 생생한 반응을 받을 때가 그때뿐이잖아요. 커튼콜 때, 수많은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 쳐줄 때. 무대 위에선 어떤 느낌이었어요?

 

수많은 관객들이 와주셨었나... (농담) 비교적 작은 소극장에서만 공연을 해서, 사실 엄청난 환호 속에 연기를 한다는 경험이 많지는 않아요! 물론, 찾아와주신 관객분들은 너무나 감사하죠. 저라는 사람을 보러 와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준비했던 것을 관심 가지고 보러 와주신 분들이잖아요. 우리의 과정과 결과를 함께 보기 위해 힘겹게 발걸음을 해주시는 거잖아요.

 

연극의 매력은 그 부분인 것 같아요. 우리의 노력과 결과물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 되려 위로가 되고 힘이 나죠. 그때만큼은 연습실에 힘겹게 연습했던 순간이 한순간 사라져요. 그때의 카타르시스만 남게 되죠. 물론, 공연 정리하고 며칠 뒤에는 힘들었던 순간이 다시 재생되어요.... ‘a’

 

 

소극장의 무명 배우는 생계 문제나 설 무대가 없어서 힘든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요. 현민님은 어떻게 소극장의 무명배우로 그 기간을 보내셨나요?

 

그냥 보냈죠. 아까 말했듯이 저는 제 스스로를 무명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스타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냥 그 과정이 좋았던 거지.

 

요즘에 무명 배우가 있나요? 난 무명 배우는 난 개인적으로 없다고 생각하거든. 왜냐하면 다들 본업이 있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이걸 하거나 혹은 이 일 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무명 배우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게 미디어에서 무명 배우의 이미지가 좀 각인됐다고 생각이 들어요. 생활고를 겪는 무명 배우. 이런 거는 나는 공감. 근데 무명배우이기 때문에 생활고를 겪는다는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그건 공감이 잘 안되거든요. 이유는 그런 사람이 주변에는 없었어요. 저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았고 단원들도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서 힘든 시간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근데 이것만 파는데 무명이 되고 생활고를 겪는다면 힘드시겠죠. 요즘에 플랫폼이 많아서 들은 거는 좀 있었어요. 배우 생활을 20년을 하셨고 근데 무명이고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생각도 하시고. 그 사람들을 내가 감히 공감할 수 없겠죠. 돌아와서 말하자면 저는 광대가 되고 싶었지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말 배우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과 저는 좀 약간 결이 다르겠죠.

 

우리가 이제 생활 속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될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배우는 가난한 직업이다.’ 그러니까 ‘대학로의 배우는 가난한 직업이다.’라고 인식이 어느 정도 돼 있다고 저도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배우만 하는 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알바도 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관련 유튜브를 하는 사람도 많고, 강의나 강사를 특히 많이 하시고, 그런 과외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입시 학원도 하는 사람도 있고 되게 여러 가지예요. 일은 선택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거기 있는 책임은 본인이 하는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요즘 사회가 한 우물만 파는 사회도 또 아니니까. 그거는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들도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무대가 다시 부른다면 무대로 가실 건가요?

 

아니요. 이거는 아닙니다.

 

제 최종 꿈은 “광대 협회” 같은 걸 만드는 거예요. 광대 건물도 만들고. 그래서 저는 광대가 사회적으로 생활 속에 들어가 있는 직업처럼 되는 게 하나의 소소한 꿈이거든요. 지하철 전철 한 칸, 한 칸이 있잖아요. 그 칸을 이제 ‘예술인의 칸’. 이런 식으로 해서 지하철과 협업을 하는 거죠. 그래서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 퇴근해 힘들었던 사람들, 이별했던 사람들, 사기당했던 사람들. 이런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문화 전용 칸을 만들고 그곳에 탑승한 사람들을 위해서 광대 쇼를 하는 게 저의 소소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거든요. 사람들을 위해서 공연하는 예술가 혹은 광대가 되고 싶어요.

 

보통 전철에서 그렇게 하면 잡상인이잖아요. 그게 아니고 이제 직장인들과 학생과 주부와 군인들과 그런 구인 구직하는 사람들, 노인들, 청소년. 지하철 한 칸에서 그분들을 위해 애환을 담아 무언가 드릴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저는 그게 만약에 무대라고 한다면 그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죠. 근데 그 대학로의 무대 이런 거기보다도 저는 전철 혹은 버스 아니면 길거리 아파트, 단지 주택, 단지 공원, 이런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같이 연계해서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그 일을 할 거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다시는 안 할 겁니다.

 

근데 그게 배우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 배우가 쭉 순탄하게 올라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쭉 한 번에 올랐다가 어느 순간 몇 달, 몇 년째 고립됐다가 기점이 터지면 또 한 번 쫙 오르는 높은 계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정체돼있는 시기와 고립이 굉장히 길어질 것 같고 고민에서 오는 혼란이 많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에 했던 그런 배우 일을 하기에는 조금 많이 어렵겠다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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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하시다가 어떤 계기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어떻게 청소년 지도자가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해요.

 

아까 말했듯이 배우에 대해서 고립이 막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여러 번 연습을 하고 몇 년을 했는데도 이런 계속해서 좀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건 내가 솔직하게 냉정하게 재능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아까 말했듯이 나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거를 별로 안 좋아해요.

 

이걸 가지고 타인이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것을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다가 내가 그때 대학을 청소년지도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졸업을 하게 됐어요. 그 타이밍에 전공자가 되었고. 이타적인 것에도 관심이 있으니까 ‘나의 문화 예술 경험과 청소년 지도사랑 같이 도전을 해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27살 때 처음 청지사(청소년지도사)가 됐어요.

 

사실 늦은 나이에 됐죠. 동기들은 미리 됐는데 나는 연극하고 휴학하고 그러다 보니까 늦은 나이에 지금의 직업을 시작했죠. 지금 직업이 딱 6년 됐어요. 오히려 그전에 하던 일보다는 덜 됐죠

 

 

청소년 지도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청소년지도사는 학생과 비학생과 그 모든 청소년을 막론하고 청소년 법제 안에서 청소년의 활동이나 보호나 복지를 위해서 관련된 기관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사업을 하고 인테이크 하는 사람들입니다.

 

직업이 생긴 지가 한 30년밖에 안 됐을 거예요. 다른 직업에 비해서 전통이 길지 않죠. 그래서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직업이 뭐예요?' 이러면 바로 청소년 지도사라고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들을 앉혀놓고 ‘이 직업은 이런 걸 합니다’라고 설명할 수가 없는 부분이 좀 답답한 상황입니다.

 

저도 항상 이런 질문들을 보면 '하...' 이렇게 한숨을 쉬곤 해요. 이게 약간 직업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제 스스로도 직업에 대한 정돈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근데 이거 진짜 재밌는 실험이, 청지사들한테 똑같은 질문하면 바로 한숨부터 시작할걸요. 진짜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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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청소년지도사로 어떤 일을 해오셨어요?

 

연차가 점점 쌓이면서 조금씩 변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청소년이 좋아하는 것, 청소년이 원하는 것을 맞춰서 했었는데 지금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게 과연 그 법 안에 있는지. 그리고 지역사회의 그 법제 안에 있는지. 그런 것들을 같이 찾아보고 이 법제 안에 적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의논해 보죠.

 

만약 그게 없어요, 그러면 이제 그 청참위(청소년참여위원회)나 그런 친구들처럼 조례를 만들어줄 수 있는 환경을 좀 링커(연결)를 해준다든지. 그렇게 일을 하고 저는 항상 청지사(청소년지도사)로서는 늘 공항 같은 일을 했다고 생각을 해요. 각자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 아이템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거죠.

 

그러니까 제 역할이 그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소년들이 최초로 수련관에 오면 저를 만나는 역할로 계속 활동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와 관계 형성을 하고 이 친구가 수련관을 생각하는 문턱을 최대한 낮춰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많이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링커를 해주고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게 했어요. 그 역할과 문화 예술과 접목해서 할 수 있는 동아리 같은 사업들을 진행했고, 문화 예술 활동들을 지원하는 일들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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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특히 최근 웹드라마로 공모전에서 수상하셨다는 이야기을 들었습니다. 소개해 주시죠!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프로그램 공모사업인데요, 2020년에 “청소년 권리 침해 개선 웹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사업이 선정되어 진행되었어요.

 

웹드라마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청소년의 입장에서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침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점을 3편의 에피소드로 꾸려 만들어 봤어요. 성인이 청소년에게 반말하는 많은 상황들, 그리고 학벌로 인해 인생이 등급으로 나뉜다고 느껴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봤어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심한 상황이어서 웹드라마를 촬영할 만한 장소, 마음 편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장소도 없었죠. 그래서, 파주에 있는 호리존을 대관해서 거기서 리딩시어터(낭독극) 형태로 웹드라마를 만들었어요! 참여했던 청소년도 배우, 촬영, 작가 등 분야를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물론, 전문 프로들은 아니지만 처음은 다 그렇게 시작하니까요.

 

유튜브에 “일산서구청소년수련관 웹드라마”만 검색하셔도 3편의 에피소드는 물론, 상영회도 함께 보실 수 있어요!

 

 

 

 

청소년 극단에 대해서 궁금한데요, 그 극단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어떤 작품을 올렸나요? 또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 극단인가요?

 

극단은 올해 4기째 활동하고 있는 자치 동아리 형태에요. 단순히 연예인이 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어 경력을 쌓는 것에만 국한된 활동이 아니고, 예술 연극/연기라는 소재를 통해 성장하고 내 몸의 변화를 확인하고, 단원들과 소통하며 협업하는 과정을 배우는 동아리죠.

 

실제로 지역사회나 주변의 청소년을 봐도,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높아요. 그렇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예술이잖아요. 연극/연기라는 장르가 분명 누군가에게는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연극/연기는 내 삶이나 주변의 삶 속에 꼭 녹아져 있을 정도로 가깝다고 느끼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극단의 궁극적인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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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서구에 청소년 수련관이 생긴 지 4년이 됐어요. 지역주민으로서 수련관이 생긴 이후로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지역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죠?

 

코로나 전까지는 사람이 정말 바글바글했었는데 그만큼 지역사회 안에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코로나가 기점으로 확실히 여기 찾아오는 청소년들이 굉장히 없어졌어요. 

 

어쨌든 여기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로 한다면 여기가 또 학원가에 있잖아요. 그래서 그 학원가에서 항상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긴 청소년들이 성장을 하는 데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역량 있는 지도자들과 지원이 가능한 관계 기관들이 이 주변에서 협력을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본인 같은 후기 청소년들이 굉장히 많아요. 고등학생일 때 들어와서 대학생이 되고 이런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지역사회 안에서 선순환 구조의 역할을 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 지도사를 하며 ‘이 일하길 잘했다’했던 보람됐던 순간이 있나요?

 

저는 ‘이 직업을 왜 했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은 없고요. 저는 되게 많은 사업을 하지만 송년 어워드 같은 연말에 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그런 사업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1년간 우리만의 성장에 관련된 농사를 다 마쳤다고 봤을 때, 서로에게 해주는 말이 있고 서로에게 해주는 선물이 있고, 그런 격려와 칭찬의 메시지들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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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을 보면 항상 애틋하고, 짠하고 ‘아 올해도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막 물건을 팔고, 뭔가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올해 뭘 했지? 뭔가 보이는 게 없네’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근데 그런 의미들이 항상 청소년들에게서 나와요. ‘감사합니다’라는 말 자체. ‘고마워’라는 말 자체도 감동적이고. ‘그 이야기를 매년 나눌 수 있는 직업을 하고 있다’라는 게 행복하죠.

 

 

이 직업만이 가진 장점이 있을까요?

 

장점. 이것 또 한숨 두 번째네.(웃음)

 

어쨌든 이 직업의 강점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를 구현할 수 있다”라는 거죠. 청소년들과 함께. 그러니까 ‘청소년 사업’이라고 해요. 사업을 진행할 때 청소년들의 욕구(needs) 그리고 아까 말했던 법령, 청지사의 의무자 능력, 그리고 지역사회 자원 그리고 예산 유무 이 5가지가 확보가 돼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거든요.

 

진짜 인피니트예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거만 맞춰 떨어지면. 우리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있고, 권리와 함께 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청소년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그려낼 수 있어요. 바로 이게 이 직업만이 가진 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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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지도사의 역량 3가지 말씀해 주세요.

 

첫 번째는 ‘현재 청소년에 따른 이해’예요. 그 이해가 없이 청소년 지도사의 주관만으로 사업을 만들거나, 청소년에게 모든 걸 제공할 수가 없어요. 현재 청소년의 상태가 어떤지.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사회는 어떠한지. 그런 현재를 파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기획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내가 생각했던 원인을 파악하고 분석을 해서 기획할 수 있는 능력. 기획을 해서 눈앞에 보이게끔 청소년들에게 제공을 해야겠죠.

 

그리고 기획만큼 중요한 건 사실 ‘평가 능력’. 청소년과 관계 형성을 하고 소통해서 이 사업이 잘 됐는지 파악하는 거죠. 청소년들한테 활동 배경을 만들어주고 다음 활동까지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지, 그 평가 도구가 나한테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그래서 사업을 하나 진행하기 전에 배경을 확보하고, 만드는 기획, 그리고 평가하는 소통 능력. 이런 것들이 계속 사이클로 이루어져야 청소년에게 제공할 수 있는 ‘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청소년 지도사가 되고 싶은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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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 해야 되나.(웃음)

 

청소년지도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졌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까 나는 사실 방황하고 노느라 청소년지도사에 대한 경험들을 잘 쌓지 못한 거에 비해서, 요즘 이것을 준비하는 미래 예비 청소년 지도사들은 굉장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보고 굉장히 놀라웠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되게 위기의식도 느꼈어요. 왜냐하면 같은 일을 하는 입장에서,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는 또 경쟁자가 될 수도 있거든요. 사실 그런 모습을 보면 좀 놀라우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그만큼 예비 청소년 지도사는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렇고 본인은 이 말에 공감을 하지 못하겠지만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청소년 지도자들 2명이 결혼하면 기초수급자가 된다. 옛날에 진짜로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어요. ‘급여가 높지 않다’라는 거죠. 그 말인즉슨, 돈 때문에 청소년 지도사가 꺼려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물론 카카오나 삼성같은 대기업처럼 높은 임금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이 보통 이상은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연봉 때문에 걱정된다면 그 걱정을 잠시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고. 지금 열심히 하던 대로, 일단은 청소년 지도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가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지도사, 음악, 인간 김현민의 못다한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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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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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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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을 참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것 같아요! 멋있습니다. 청소년지도사로서의 김현민도, 배우로서의 김광대도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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