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 미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확장하다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전시]

“선과 색으로 개념을 그리다”
글 입력 2022.04.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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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Craig-Martin_Photo by Caroline True, 2014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1941~)은 영국 개념미술의 1세대 작가로 시각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개념을 확장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한다. 1960년대 후반 런던에서 작업하며 순수하게 시각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미술에 반발한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작품을 보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행위가 아니라 관람객들의 인지적 과정을 거친 해석 행위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과 관람객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작품을 제작했다.


마틴의 초기작 <참나무>(An Oak Tree 1973)는 마르셀 뒤샹의 뒤를 이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반 위에 놓인 물컵을 참나무라고 명명한 이 작품은 대상 자체보다 작가의 의도가 중요함을 선언하며 개념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예술을 명명하는 일과 예술을 제작하는 일을 동일시하는 이 독창적인 접근은 런던 골드 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학생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젊은 아티스트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의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트레이시 에민 등을 양성한 스승이자 현대 미술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시는 6개의 테마로 구성되며 마틴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총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Exploration(탐구: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Language(언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Ordinariness(보통 :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Play(놀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유희), Fragment(경계: 축약으로 건네는 상상력의 확장), Combination(결합: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으로 마틴의 개념미술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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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간결한 라인, 평범하지 않은 컬러, 단순화되거나 확대되어 배치되는 흔한 일상의 오브제들은 팝아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기존 예술의 규범과 관습을 비판하며 반(反)예술의 정신을 이어간 마틴은 작품의 개념적 특성들로 인해 팝아트가 아닌 개념 미술가로 평가된다. 작가 자신도 팝아트가 아니라고 말하며 작가의 스타일보다 작품 속 작가의 철학과 의도를 강조한다. 그 때문에 과감한 색과 미니멀한 라인은 작품을 강조하는 시각적인 효과로 자리 잡는다.

 

 

 

언어 Language: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Non-narrative methods, le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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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마틴에게 알파벳은 언어가 아닌 오브제였다. 알파벳은 이미지를 쌓는 견고한 구조물로써 화면 위에 놓이고 사물은 그러한 글자 위에 있다. 작품 속 알파벳이 조합된 단어와 사물의 이미지는 연관성이 없다. 작품 속 이미지들은 단어에 내포된 사회적 정보를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작품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DESIRE’(욕망)의 의미와 물컵, 서랍, 신발, 캔 등의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단어의 지시 대상을 없애고 의미를 가지지 않은 오브제를 두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인 글자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해석은 관람자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작품 속 글자와 이미지는 서로 호응하지 않고 각각 관람자와 관계 맺고 있다. 제목 역시 해석을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무제>로 지었으며, 그 옆에 작품 속 알파벳의 조합을 전달하는 단어를 기입하여 언어의 의미와 이미지의 불일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단어의 의미와 오브제를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목이 마른 상태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으로 둘을 결합했다는 등- 그것은 작품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관람자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도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DESIRE’이라는 단어 자체가 ‘물컵’이라는 대상을 가리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틴의 작품은 언어의 자의성과 인식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합 Combination: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 The association of unfamiliar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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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평면적 화면에서 언어를 통해 가상의 공간을 형성하는 관람자를 생각할 수 있다. 화면의 깊이는 알파벳 배열에 따른 간격의 공간이 아닌 알파벳 간의 관계 속 공간으로 즉, 알파벳과 알파벳의 연결되는 관계만큼으로 보인다. 이는 마지막 챕터인 Combination(결합: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의 작품 속 구도와 이어지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마틴은 연관이 없는 일상의 오브제를 차용하여 작품 속 구도를 만든다. Untitled(with tennis ball), 2020에는 다양한 사물이 등장하는데 서로 겹치지 않게 자리한다. 원근법이 적용된 물건도 있고 비현실적인 크기로 키우거나 줄여서 표현한 물건도 있다. 일상 용품으로 사용되던 물건이 기존의 물질성에서 벗어나 평면적인 회화에 나타나면서 생겨나는 오브제 간의 공간은 관람자의 일상적 경험을 촉발하여 물체 간의 공감각으로 확장된다.


마틴은 각 사물에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작가는 오브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시키고 사물에 대한 관습적인 의미를 해체하지만, 관람객에 의해 인지되는 복합적인 경험은 관람객을 작품과 관계 맺게 한다. 고정 불변하지 않은 의미들의 생성은 새로운 시각장을 만든다. 따라서 마틴은 본인의 작업을 2차원의 조각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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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일상 용품을 차용한 오브제 작업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디지털 아트, 판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장르의 순수성을 벗어난 확장 과정을 보여준다. 장르 특정적이지 않은 작업은 작품과 관람자의 경계 해체하고 의미 구조를 열어놓아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현대미술사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념을 확장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는 4월 8일부터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세계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개념미술의 상징적인 작품인 <참나무>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어 기대감을 높인다. 특별히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되는 디지털 자화상, 스페셜 판화 및 로비를 가득 채우는 월 페인팅 작품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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