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의 시선과 미술의 시선이 맞닿는 그 지점에서 - 빛이 매혹이 될 때 [도서]

글 입력 2022.03.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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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매혹이될때-표1.jpg

 

 

Prologue.


 

빛의 존재를 평소에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밤에 잠들기 위해 불을 끄고 누울 때에나, 아침에 눈을 뜨고 지난 밤 모습을 감췄던 햇빛이 반가울 때에나 그제야 빛이 존재하고 있음을 종종 알아차린다. 빛이 없다면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너무나 당연히 머물러주기에 딱히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빛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들 덕에 우리의 주변은 많이 변화해왔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화법의 그림을 만나게 되었으며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 법칙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빛에 대해 진심이었던 한 물리학자는 빛을 깊이 좇아, 광학과 미술을 연결해 이야기를 엮어내었다.

 

*

 

물리학과 미술 '빛'으로 만나다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빛!


빛은 우리가 삶과 자연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무수한 순간들마다 언제나 함께한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새파란 가을 하늘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노을, 비 온 뒤 물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무지개… 우리는 빛이 부리는 마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한다. 이러한 빛의 존재를 밝혀내고자 오랜 시간 집요한 탐구와 해석을 시도했던 이들이 바로 과학자와 예술가들이다. 《빛이 매혹이 될 때》는 물리학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빛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속 광학 연구자이자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인 서민아 교수는 빛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견들과 빛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자 했던 미술가들의 작품을 찾아보며, 빛의 본질을 이해하고 ‘빛의 물리학’이 어떻게 예술과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켰는지를 살펴본다.

 

빛의 본질에 더욱 깊숙이 다가가기 위한 이 특별한 여정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프리즘을 통해 분광에 성공한 뉴턴이 만든 최초의 색상환을 괴테가 심리적 해석을 더해 확장시켰을 때, 형태에 비해 부수적 존재였던 색채는 감정을 드러내는 낭만주의 예술의 중요 도구로 부상했다(44쪽). 또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는 언제나 같다는 사실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밝히자, 예술가들의 뛰어난 상상력은 여러 시점이 중첩되어 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나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과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258쪽). 그 밖에도 양자역학으로부터 직접적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표현한 앤서니 곰리, 빛마저 흡수하는 블랙홀의 검정을 재현한 아니쉬 카푸어 같은 동시대 화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본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빛에 대한 탐구


 

본다는 행위로부터 빛에 대한 탐구는 시작된다. 눈을 떠서 앞을 보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사실 본다는 행위는 일련의 과학적 현상들이 동반되는 복잡다단한 인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서 반사된 빛이 눈에 도달하고 망막에 닿는 물리적 현상을 거치면 망막 내의 시각세포는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신호를 생성하고, 세포들은 서로 연결되어 신호를 해석하는 인지적 심리적 반응을 한다.

 

빛의 신호를 수용하고 신호의 재배치를 통해 사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눈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모두 거치는 것이다. 색채도 이 과정에서 망막의 원추세포에 의해 판별된다. 빛이 사물에 비치고 사물에서 다시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올 때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에 반응하는 세 세포가 다양하게 조합되며 색채를 인지한다.

 

화가는 이를 정교하고 때로는 새로운 색의 조합으로 풀어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마 이 과정에서 빛을 어떻게 이용하여 작품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 숱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고흐는 다른 빛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빛을 좇으며 끓어오르는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쩌면 빛과 색채의 비밀을 풀어내려는 물리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이 없었다면 고흐가 즐겨 사용한 강렬한 색의 대비와 점묘법은 탄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뉴턴에게 ‘본다는 것’이 하나의 자연현상이라면, 괴테에게는 인간의 심리적 작용이 더해진 인식 활동이었다. 고흐와 같은 미술가들은 그 영역을 더 확장해 우주와 인간 내면의 탐구를 더하고 재해석해 다시 우리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광학이 밝혀낸 시각 작용과 색채 원리에 화가들의 집요하리만큼 열정적인 탐구심이 더해져 탄생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분명 빛에서 출발하지만 빛이 닿지 못하는 인간 심연의 어떤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p.66-68

 

 

취미로 미술학원에 잠깐 다녔던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빛 없이는 그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소묘와 수채화의 특성일 수도 있겠으나, 빛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대상의 질감이나 양감을 표현할 수 없었다. 평면적인 형태만 그릴 것이 아니라면, 눈에 보이는 것을 종이에 옮겨 담을 때에 빛의 역할은 생각보다 절대적이었다. 색을 표현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칠할 때 같은 색에서 뻗어나가는 색채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었고, 우리의 눈이 밝음과 어둠을 색채와 함께 복합적으로 인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빛을 통해 본다는 행위와 그리는 행위는 반드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들 또한 그 오랜 시간 동안 빛을 탐구하고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연구하며 인상주의니, 극사실주의니 하는 사조들을 만들어냈으리라.

 

 


뉴턴과 피카소의 상관 관계


 

그러나 빛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인상주의였다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현대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도 이후 미술 사조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상대성 이론으로 새롭게 눈뜨게 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개념은 과학 분야에서만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갖고 현상을 바라보게 했다.

 

양자역학은 빛이 파동인지 입자인지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하여, 결정론적 세계관을 비틀며 미래는 확실하게 예측하기 어렵고 오직 확률에 그 결과를 의존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금의 현실이 언제까지나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20세기로 전환되던 당시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겠으나, 이러한 과학적 변혁도 맞물리면서 화가들은 이제까지의 색채나 형태를 부정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작품들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라는 사조로 발전되며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게 되었다.


빛은 끊임없이 흐른다. 우리의 눈은 그 빛을 좇아 사물과 현상을 마음에 담는다. 과학과 미술을 아우르며 오랜 세월 탐구의 대상이 되어온 빛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감동을 예술로써 전달하는 방법도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빛을 탐구하는 과학의 시선과 미술의 시선이 맞닿는 그 지점에서 우리가 보는 세계가 조금 더 확장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던 소개말에 깊이 공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두 분야를 오가며 어느새 빛의 존재를 의식하고 음미하게 되었다. 세상을 보게 하고, 어둠을 밝히며 사고의 방식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빛이라니. 그런 빛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좀 더 충만하게 느껴진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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