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마법의 빨간 립스틱 (도서/문학)

'어른이 되고 싶어'
글 입력 2022.02.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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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생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나도 어릴 때 길고 날씬한 가수들이 티비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걸 보며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다고 느껴질 때, 또는 부모님의 간섭이 싫을 때 등등, 어른이 되기를 항상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몸도 커지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책임져야 하는 일도 많아졌다. 부모님의 간섭도 많이 줄었다. 그런데 나는 ‘어른’인가? 생각해보면 어떠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어른’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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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마법은 빨간 립스틱> 라는 동화책이다. 2003년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영모가 사라졌다>로 국내 판타지 동화의 새로운 장을 연 공지희 작가의 초기작이다. 이 동화는 아이들이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만한 소망을 립스틱이란 경쾌한 소재로 재미나게 담아냈다.

 

나는 이 동화책을 초등학생 저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와 같은 소망이 동화 속에서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내용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에 와서 드라마를 기획할 소재를 찾다 이 책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중고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후, 어른이 된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과는 내용이 조금 달랐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주인공의 바램이 어느 날 주운 마법의 립스틱으로 이루어진다는 전개는 맞았으나, 나는 동화 속 주인공이 동생을 돌보기 싫은 마음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주인공은 동생에게 바쁜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주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그때 나는 그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철없는 마음으로 읽어서 내용이 그렇게 기억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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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야는 엄마가 백화점에 일하러 나가면 혼자서 동생을 돌봐야 한다. 동생 호야는 말을 듣지 않고, 항상 울면서 엄마를 찾아댄다. 물론 그럴 때마다 동생이 밉다고 말하며 가끔 동생을 쥐어박긴 하지만, 미야는 그럴 때 자신이 엄마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미야는 길에서 립스틱 하나를 줍게 되는데, 그 립스틱은 바르는 순간 어른이 되는 마법의 립스틱이었다. 립스틱을 바른 미야는 엄마와 똑 닮은 어른으로 변신하게 되는데, 엄마의 모습을 한 미야는 동생을 그동안 누나랑 가기 싫어했던 병원에 데려가 주고, 동생을 위해 엄마가 오지 못했던 발표회에도 나간다.

 

나도 어릴 때 부모님께서 바쁘셨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마중 나와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물론 좋았지만, 가끔 엄마가 서 있을 땐 정말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참관 수업에도 엄마가 혹시나 있을지 항상 뒤돌아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친구, 또는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동화는 미야가 몸은 어른이 됐다 하라도, 행동과 말투는 모두 어린아이 그대로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의 모습으로 미야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다 립스틱이 지워질 뻔하기도 한다.

 

나는 한 해, 한 해 지나 나이를 먹을 때마다, 나이는 점점 많아져 가지만 가진 생각은 그대로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몸만, 나이만 커져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몸은 이제 어른의 모습일지 몰라도 아직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보면 어린 아이 같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언제쯤 진정한 어른이 될까?

 

 

“어른이 되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난 언제 어른이 되지? 하고 백번쯤 묻다가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단다”


 

작 중 담임 선생님이 “어른이 되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난 언제 어른이 되지? 하고 백번쯤 묻다가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단다” 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 말이 와닿아, 이 책을 모티브로 기획서를 작성할 때 대사로 인용했었다. 정말 나도 어른, 또는 그냥 성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다 벌써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릴 땐 이 문장이 그토록 와닿진 않았겠지.

 

어른들이 학창시절 우리가 화장한 모습을 보고 자주 이런 말을 하셨다. “그런 거 바르는 것보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제일 예뻐.” 그때 나는 그냥 잔소리로만 들렸었는데, 가끔 버스를 타고 가다 교복입은 학생들을 보면 정말 수수한 그대로의 모습이 예뻐 보이고, 부러웠다. 그래서 그때의 어른들 말씀이 점점 이해가 된다. 크면 꾸미고 싶지 않아도 꾸며야 할 때가 많으니까….

 


“이제 다 컸네”



동화 속 마법 같은 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짝꿍의 장난으로 립스틱은 한 번 바를 수 있는 정도의 양만 남게 된다. 미야는 매우 속상해한다.

 

비가 오는 날,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 엄마들이 우산을 가지고 오는 모습을 본 미야는 호야를 떠올린다. 결국, 미야는 비 오는 날에 엄마가 우산을 갖고 마중 나오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던 동생 호야를 위해 마지막 마법을 사용한다.

 

주인공은 립스틱을 사용하는 동안 동생을 위하고, 그러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분명 한층 더 어른스러워졌다.

 

어른이 되고 싶은 소중한 아이의 이야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동화에서는 밝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놓았다. 이 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를 둔 엄마, 그리고 나처럼 어른이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추천한다.

 

 

[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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