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은 어디에 있나 - 노매드랜드 [영화]

글 입력 2021.10.1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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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영화 <노매드랜드>를 봤다.

 

워낙 많은 찬사를 전해들어 고민 없이 골랐지만 줄거리에 대한 배경 지식은 전혀 없었다. 다만 제목을 보며 ‘아마 집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나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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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펀은 자신의 차에서 먹고 자며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함께 살던 남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마을의 경제를 책임지던 석고 회사가 경제 위기 때문에 망하며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 집도, 그 집에서 함께 살던 사람도, 집을 나서면 향하던 장소와 사람들도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떠났다.

 

펀은 가족의 집으로 가거나 무리해서 구해야 하는 다른 주택을 구하는 대신, 차에서 생활하길 선택한다. 차를 타고 떠난 길에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다. 서로 차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기도 한다. 헤어질 때면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며 다른 길로 향하다가, 서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실로 다시 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시간이 쌓일수록 차 안에는 펀의 자취가 쌓여간다. 컵을 놓는 위치, 요리할 때 쓸 휴대용 버너를 보관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이 궁리 끝에 모양을 갖추고, 펀의 생활은 차 안에 크고 작게 담겨있다. 그렇게 펀에게 차는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 이상이 된다.

 

차 안에 구석구석에 담긴 고민과 선택, 차에서 사는 생활 덕분에 속하게 된 연결망은 그것을 집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 부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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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그는 자신을 ‘houseless’이지만, ‘homeless’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이 불쌍한 패배자의 자기 위로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가 그의 집에 고민과 선택을 거쳐 도착했기 때문이다.

 

펀에겐 보다 편리한 주택에서 살 기회도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 중 하나인 데릭은 길 생활을 그만두고 아들 부부와 함께 정착하기로 결정한 후, 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는 자신과 함께 이곳에 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펀은 새벽에 일어나 전날 데릭의 가족과 모여 앉아 떠들고 식사를 했던 식탁에 홀로 가만히 앉아보았다가, 다시 일어나 의자를 밀어 넣고는 조용히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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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그는 이전에 살던 집에 관한 기억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길에서 만난 청년에게 자신의 결혼식에서 낭송한 시를 읊어주는 장면은 그의 과거가 오래도록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든 밥 웰스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자신이 기억에 지나치게 매여 있음을 고백한다.


내내 과거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는 영화의 말미에 과거의 집을 다시 찾아간다. 처음엔 등 떠밀려 떠났던 그곳을 천천히 바라보고, 밟아본 후, 이번엔 자신의 발로 걸어 나온다.

 

처음 길로 흘러들어왔을 때의 펀은 뒤에 두고 온 집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앞에 놓인 모든 선택지들을 매일 빛에 비추어도 보고, 만져도 보고, 물에 씻어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를 골라 쥐었다.

 

과거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기억하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펀의 선택의 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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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houseless'이지만 'homeless'는 아니라고 말하는 펀을 보며 나는 나의 집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이들 대부분은 아마 일과를 끝내면 돌아가 씻고 누워 잠들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끝에 찾는 'house'가 모두에게 'home'일지는 알 수 없다.

 

집을 집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다. 멀쩡한 벽 바닥 천장을 모두 가진 곳도 어쩔 땐 집이 될 수 없고, 펀에겐 집이 된 차도 모두에게 집이 될 수는 없다.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생을 자라온 곳이 태어나 단 한 번도 집이 아니었을 수도 있으며, 원래는 집이었던 곳이 시간이 흐르며 어째서인지 문득, 집이 아니게 변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무엇이든 그것을 들여다보고, 굴려도 보다가, 끝내 자신의 집을 찾은 펀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의 집은 어디였나. 과연 앞으로의 집은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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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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