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앨리스 달튼 브라운 전,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전시]

글 입력 2021.08.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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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눈물이 날 땐 / 내 손을 꽉 잡아 도망갈까

숨겨진 9와 4분의 3엔 / 함께여야 갈 수 있어

비비디 바비디 열차가 출발하네 (Oh, oh, oh)

비비디 바비디 우리의 매직 아일랜드 (Oh, oh, oh)

이 터널을 지나면 (hey) / 눈을 뜨고 나면 (hey) / 꿈속은 현실이 돼

 

-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장르를 불문하고 몰입도 높은 예술작품을 좋아한다. 작품을 평가할 때 무의식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항목 중 하나도 바로 몰입도다.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이나 문화 행사를 평가할 때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개연성, 구조와 이야기는 모두 몰입도를 높이는 장치다.

 

이때의 몰입도는 작품과 현실의 유사성과는 무관하게, 작품 안에서의 논리가 얼마만큼 설득력 있는가가 결정한다. 현실에는 마법도 초능력도 없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과몰입’을 부르는 이유는 그 안에서 인물의 행동이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꼭 판타지 장르가 아니어도 모든 예술작품이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과 같다고 생각한다. 배를 오랫동안 타던 선원이 땅에 내리면 땅 멀미를 하듯, 작가가 구현한 낯선 세계에 푹 빠져 넘실대던 관람객들은 다시 단조로운 현실로 돌아와 작품이 남긴 여운에 한동안 잠긴다.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너무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데도 반복하는 이유는 그 여운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중 하나여서다. 현실에서 땅 멀미를 하더라도 기꺼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자 한다.

 

 

alice dalton brown (2).jpg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는 이제껏 관람한 기획 전시 중 가장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느껴졌던 전시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사진이라고 착각할 만큼의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50여 년간 자연물과 인공물을 조화롭게 그려낸 화가다. ‘빛이 머무는 자리’라는 전시 제목이 붙은 이유는 그가 특히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표현에 평생을 몰두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활동을 총망라하는 최초의 회고전으로, 개인 수집가들의 소장품부터 최신작인 마이아트뮤지엄의 커미션 작품까지 총 80여 점에 이르는 회화를 만나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장르에 비해 상호작용이 어렵다 느껴지는 회화가 어떻게 작품 속 세계로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었는지 설명해보려 한다.

 

 

 

연습이 아닌 연구로 구현한 공간


 

전시에는 ‘습작(Study)’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습작은 큰 규모의 작품을 그리기 전 연습 삼아 그려 보는 그림이다.

 

하지만 앨리스 달튼 브라운에게 습작은 오히려 작품을 그린 후 다른 재료나 각도에서 대상을 그려내는, 실험이나 연구에 가까운 작업이다. 다른 제목이 붙여졌지만 같은 대상을 각도와 구도를 달리하여 집요하게 연구한 연작들도 있다. 전시의 친절한 배치 덕분에 관람객들은 연작과 습작을 쉽게 비교해볼 수 있다.

 

 

4) 봄의 첫 꽃나무, First Spring Tree.jpg

봄의 첫 꽃나무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그린 인공물과 자연물은 실재하는 것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일부 작품은 포토샵처럼 다른 두 공간을 조합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그려낸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봄의 첫 꽃나무 First Spring Tree>는 친구 ‘셰리’의 집과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나무를 조합한 것이다. 전시장에서 바로 옆에 배치된 <셰리의 현관 My Sherry’s Porch> 에는 같은 집이 배경만 달리하여 그려져 있다.

이렇게 전시장의 벽면을 둘러싼 연작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초현실적 공간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세밀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 구현한 독특한 공간감 때문이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창이 바로 그 공간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봄의 첫 꽃나무>에서 유리창에 비친 나무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프레임 안에 구현된 공간 외에도 창문 너머로 비치는 집 앞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관람객은 자연히 프레임 안의 공간에 서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바깥에서 안으로, 배경에서 전경으로


 

앞서 말했듯 이번 전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첫 회고전으로, 작품이 탄생한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관심사가 건물의 밖에서 안으로 점차 이동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첫 섹션에서는 붉은 벽의 창고를 멀리서 그린 연작을, 두 번째 섹션에서는 미국식 주택의 안도 밖도 아닌 현관을 그린 작품을, 세 번째 섹션에서는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그린 듯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풍경화가’라고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는 그가 그린 집들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인공물과 빛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서 자연의 풍경만을 담고 있는 풍경화와는 차이가 있다. 햇빛이 집의 외벽에 식물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노을빛은 반투명한 커튼을 통과해 번지면서 바닥에 다른 색의 그늘을 지게 한다.

 

 

10) 정적인 순간, In the Quiet Moment.jpg

정적인 순간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에서 그림자는 배경(background)이 아닌 전경(foreground)이다.

 

그의 그림에서 그림자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다양한 색채로 표현되어 있어, 그림자만 감상해도 재미있을 정도다. 올해 작업한 신작 <정적인 순간 In the Quiet Moment>를 보면 커튼이 겹쳐 빛이 적게 투과한 부분은 갈색, 커튼의 마감 부분과 하늘빛이 비친 부분은 하늘색, 커튼 뒤 식물이 비친 부분은 분홍색으로 그림자가 표현되어 있다.

 

<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에서는 벤치 부분을 별다른 경계 없이 그림자로 존재감을 부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그림자는 자연스러운 그림을 위해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부분 이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회전]KakaoTalk_20210809_232214503[크기변환].jpg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을 통해 집 안과 집 밖의 경계,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 등 내게 너무나 익숙했지만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소재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나니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무가 빨간 벽돌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처음으로 예쁘게 느껴져서 사진을 찍었다. 꼭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 익숙한 것들이 달리 보이는 것만 같았다.

 

 

7)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jpg

황혼에 물든 날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개인 소장 작품이라 볼 수 없었던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을 20여 년 만에 다시 보기 위해 내한한다고 전해졌다.

 

수집가의 손을 거친 후 작가보다도 먼저 이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든의 나이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그림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그림과 만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황홀함을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세계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요즘,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이 그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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