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적인 골계미를 다룬 새로운 뮤지컬,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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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창업>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시기를 그린 퓨전 사극 작품이다. 쉽게 말하면,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다루는 시기가 겹친다.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이방원, 신덕왕후, 원천석(한 때 이방원의 스승)/해설자, 조영규, 이방석이 등장한다. 이 소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루어졌다. 그렇다면, 그것들과 차별화되는 뮤지컬 <창업>만의 강점을 무엇일까?
1. 노골적인 감정 표현을 통한 골계미
본 극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감정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작가가 인간이 동물과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이러한 면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통해 우리는 극의 인물에게 더욱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들이 결국은 비범한 인물로 생각되던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이방원 또한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이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쇼케이스 사진 (두 남자)
이 극에서 이런 면이 가장 잘 드러난 넘버는 <두 남자>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넘버를 접했을 때는 지금까지는 다른 표현에 퍽 놀랐다. 이 넘버는 이성계가 낙마한 틈을 타 정몽주가 정도전을 필두로 한 이성계 세력을 감옥에 잡아넣고 나서 정몽주가 정도전을 보러 감옥에 왔을 때 부르는 노래이다. 이 넘버를 통해 두 사람이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처음 이 넘버는 정몽주와 정도전의 대화로 시작하는 데 “나 유배 보내서 죽일 거냐?” “봐서” “아, 죽이는 거 맞네” “역적이니까”로 이어진다. 그 후 노래 속에서 “변절자” “고집불통”과 같은 단어가 나오며 정도전은 정몽주에게 “귀족들 따까리”, 정몽주는 정도전에게 “이성계 따까리”라고 하며 갈등은 고조된다.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달리 우회적인 표현이 아닌,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서로를 묘사하는데 거침이 없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역겨워서 토 나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한 직접적인 감정 표현은 이 넘버 외에도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하늘 같은 선생님을 뵙습니다”라고 말하자, 정몽주는 그에게 “뭐야? 어디 아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라 이방원이 정몽주를 통해 쫓기던 순간 그의 무사 조영규에게 “나 죽으면 같이 죽을 거지”라고 묻자 조영규는 지금까지 묘사되었던 무사와는 달리 “영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무사보다는 한 인간의 자기 본능 욕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쇼케이스 사진 (나의 선택)
이러한 직설적인 감정 표현이 극 전체에 내재해 있지만, 이것이 응집되는 등장인물은 이방원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책 없이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은 그의 지략과 의도를 기반으로 행해진 것이다. 그의 직접적인 감정 표현이 피의 숙청을 한 잔인무도한 태종의 모습으로서가 아닌,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아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적을 제거하고 외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이 그 또한 우리가 선택의 길 앞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가며 그 과정 속에서 좌절하고 극복해나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하여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 나의 선택 (이방원)
나의 선택, 나의 운명 나의 시간 나의 길 무얼 위해 가고 있나
내가 향하는 그곳,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 길을 헤매고 있네
저 바람은 알고 있나 내가 가야 하는 이 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내가 원하는 세상을 향해 오늘도 걷고 있네 길을 만들어 가네
길을 잃은 아이처럼 헤매며 홀로 걷고 있네 알 수 있나
이 길의 끝에서 사라질지라도 멈출 수 없어
나의 선택 나의 운명 나의 시간 나의 길 멈출 수 없어 돌이킬 수 없어
나아가야 해 끝이라 해도 내가 바라는 그 세상을 위해 나의 운명
2. 현 사회를 반영한 골계미
퓨전 사극 뮤지컬인 만큼 현대어, 현실 반영 등과 같은 현대적인 면이 많이 섞여 있다. 등장인물들은 상투를 틀거나 가발을 쓰지 않고 현대의 두발을 하고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다. 또한 “슈퍼맨”, “아이큐”, “공무원 시험”, “국무총리”, “행정고시” “아킬레스건” 등 다양한 일상용어들을 사용한다. 한자어보다 일상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더욱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품 또한 사용하고 있다. 낙마한 이성계가 보행기를 집고 목 깁스를 하고 “인생무상, 안전제일”이라고 말하며 등장하는 장면은 큰 웃음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 특히 신덕왕후의 대사와 노래를 통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신덕왕후의 랩으로 구성된 넘버 <정치>의 넘버의 한 대복이다.
정치? 잘 모르는데 / 모르는면 안 되는게 / 그런 게 정치인데 / 겉으로만 정치라 해
모르면 개돼지 취급받는 게 너네 정치 / 그래 허세 정치
물론 그런 개돼지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사는 건데
쇼케이스 사진 (정치)
그리고 명나라를 언급하면서 “참 이상해. 이것들이 우리가 지들 부하인 줄 아나. 맨날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달라는 게 뭐가 그렇게 많아. 아주 이러다가 나중에 한복 내놔라, 김치 내놔라 난리가 나겠네. 아 짜증나”라는 대사를 한다. 현재 중국과의 문화전쟁을 극 속에 포함시켰다. 또 그녀는 “요즘 정치가 상징이야. 다들 이미지 갖고 난리 치는데”라고 몇 차례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현대 정치의 시뮬라시옹을 강조한다. 그 외에 날씨에 대해 묻는 정도전의 물음에 정몽주가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라고 답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일상의 반영을 통한 해학적인 모습을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과 현대적인 표현은 기존의 수동적이었던 뮤지컬 관객을 능동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또한, 해설자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창업된 조선은 이성계의 나라였을까요?” 등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짐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반성적, 비판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측면과 타 뮤지컬에 비해 대사량이 많다는 점에서 본 뮤지컬은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으며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르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창작 사극 뮤지컬인 <해를 품은 달>, <서편제>, <피맛골 연가> 등과 달리, 음악적인 면뿐만 아니라 극의 형식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양의 공연양식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통 한국 공연이 추구한 “골계미”가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창작 뮤지컬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 극에도 분명 아쉬운 점은 있다. 킬링 넘버의 부재, 드라마와 무대장치 부족, 다소 강렬함이 부족한 결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극은 오프-오프-브로드웨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정과 발전, 그리고 무대 변경을 통해 충분히 이러한 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명의 뮤지컬 팬으로서 기존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이 뮤지컬이 더욱 발전해 나가, 언젠가는 대극장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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