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 그리고 그후 -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4.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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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이장욱 작가의 소설집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의 표제작인 단편 소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이다.

 

이장욱 작가의 작품은 일상적인 디테일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일상 이상의 것들을 얘기해 주는 것 같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감정들이 우리의 현실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법은 흥미롭다. 무료한 일상이 반복된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 익숙하다는 이유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감정들을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장욱의 소설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독자로 하여금 다시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장편소설 『천국보다 낯선』, 단편소설 「유명한 정희」와 「트로츠키와 야생란」, 「잠수종과 독」 등, 그의 작품들은 일상, 혹은 일상과 벗어난 지점에서 낯선 감각과 감정을 독자에게 소개해 왔다.

 

그 중에서도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은 이장욱의 작품들 중에서 사랑에 대해 아주 유의미한 지점을 짚고 있는 소설이다. 사랑은 인류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만연한 감정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이에 대해 너무 당연시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점들도 있을 것이다. 이장욱 작가는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랑의 중요한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부분에 다가가기 위해 문제적인 상황을 도입하고 이 속에서 이장욱 특유의 문체로 사랑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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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침의 허무이며 저녁의 음악, 그리고 밤의 불꽃인 그녀에 관해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는 명망가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지만 적어도 나와 나의 시에 대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명성과 세상의 모든 권력을 합해놓은 것을 초과하는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내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블로그에 업로드한 게시물 가운데 나의 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그것이 나와 그녀의 첫 만남이었으며 내가 그녀를 ‘발견’한 최초의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p.47)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은 갓 등단한 젊은 시인 김강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준은 등단은 했지만 아직 대중적인 인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아직 첫 시집도 내지 못한 작가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자신의 시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한 여성을 알게 된다. 뉴욕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영어 학원 강사와 교회 중등부 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클럽에서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한 여성. 블로그를 통해 옆모습과 뒷모습을 보았을 뿐, 단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는 사람이지만, 강준은 자신의 시를 읽고 여러 감상을 공유해주는 이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블로그의 게시물들을 샅샅이 훑어보고, 또 이따금씩 올려주는 자신의 시에 대한 감상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녀가 올린 강준의 시는 어미나 조사가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아예 시어들이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더 지나서는 강준의 시 한 단락이 통째로 바뀌어서 업로드되기도 한다. 강준은 이를 알아차리고 당혹스러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수정으로 인해서 더 좋은 시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심지어 강준이 발표한 적 없는 시를 강준의 이름으로 블로그에 게재하기도 하는데, 강준은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쓴 시를 문예지에 발표하여 문단의 기대주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날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그녀는 배필을 찾게 되어 블로그 활동을 중단한다는 말을 남기고 잠적한다. 강준은 혼란에 빠지고 스스로의 앞날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낀다.

 

이장욱 작가는 하나하나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잘 전개하여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독자들을 소설에 한껏 몰입시킨다. 주인공 강준은 연속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다. 문단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작품을 한 블로거가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취미와 취향이 자신과 너무나도 잘 일치한다는 점은 사랑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강준은 그녀가 자신을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서로의 글을 통해 상대를 인식할 수 있었던 것과 반대로 둘 사이의 물리적인 만남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사랑은 비대칭적이다. 이성적, 예술적 사유물은 주고받지만, 정작 물리적, 감각적인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불균형적 사랑의 구조 속에서 사랑은 점점 커져가고, 그녀가 쓴 작품들을 강준이 발표하면서 강준은 자신의 내면에 낯선 존재를 품게 된다.

 

이 소설의 자못 문제적인 사랑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보편적인 사랑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나는 두 부분을 다뤄보고 싶다. 우선 첫 번째로 사랑의 과정에서 강준이 겪는 그로테스크한 상황들이 그렇다. 낭만적인 사랑의 과정에서 상호 소통은 사랑의 감정보다 항상 늦게 이루어진다. 흔히 관계 초반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개인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상대로부터 수용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좋아”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이 상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어쩌면 구체적인 소통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준의 사랑 역시 그렇다. 강준은 블로그 속 여러 단서들을 근거로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만난 적도 없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장시켜 간다.

 

소설의 독자들은 이러한 소설의 설정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역시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는 점에서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극적인 구조, 소설적 장치를 조금만 일반화 시켜서 생각해본다면, 현실의 사랑은 결국 소설 속 강준의 모습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장욱 작가 특유의 서술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로테스크하거나, 더 나아가 자칫 불쾌할 수도 있는 장면을 통해서 결국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소설의 마지막에 남은 강준의 모습이다. 소설의 시작에서 강준은 혼자였고 소설의 끝에서도 혼자 남는다. 무명의 시인으로 소설에 등장하는데, 소설이 진행되며 블로그 덕분에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을 뿐 결국 소설의 마지막도 능력이 없는 시인으로 남는다. 소설이 진행되며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근본적으로 소설의 제일 시작과 끝에서 강준은 겉보기에 동일한 인물로 남는다. 아마 현실의 사랑 역시 이러한 모양일 것이다. 별 내세울 것 없는 홀몸이 사랑을 통해 다양한 감각적 정신적 경험을 겪지만, 결국 이별 후에는 다시 홀몸이 되는 것이다. (사랑뿐 아니라 삶도 그러한 것인가?) 하지만 다시 홀몸으로 남는다고 해도 사랑 이전과 같은 사람이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의 끝에 홀로 남은 강준의 모습을 보라. 끝의 강준은 처음의 강준과 어떻게 달라졌는가. 고요한 일상이 폐허가 되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공허한 일상이 감성적으로 풍부해 진 것인가. 그것은 독자의 마음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여튼 강준이 새로운 일상을 직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일상은 반복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장욱 작가는 삶의 필연적인 불확실성을 주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장욱 소설가에 대한 소개가 부족했던 것 같은데,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이전에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글을 통해서 그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길 바란다. ([Opinion] 가장 인간적인 - 잠수종과 독 [도서/문학][Opinion] 시베리아의 한기 속으로 - 트로츠키와 야생란 [문학])

 

시인인 강준이든 시인이 아닌 일반적인 우리 독자들이든, 우리는 현재를, 그리고 앞으로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속에서 휘몰아치는 일련은 사건들은 강준과 독자들에게 각자의 의미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 짧은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사랑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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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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