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풍성한 봄의 향연: 제17회 앙상블오푸스 정기연주회

글 입력 2021.04.1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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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 지나고 봄이 성큼 다가온 4월 초, 봄이 오는 소리를 기다리는 한 무대가 있었다. 바로 4월 9일 금요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앙상블오푸스의 정기연주회 '봄이 오는 소리'였다. 벚꽃이 예년보다 훨씬 이르게 핀 올해였지만, 겨울이 유독 길게 느껴졌던 탓인지 벚꽃이 이미 진 지금도 봄의 한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도심 곳곳에서 아직도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봄꽃과 새싹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을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뭔가 더 가볍고 활기찼던 것 같다.

 

작년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전 세계가 아직까지도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이보다도 더 귀하게 느낄 수 있는 봄이 근래에 없었다고 할 정도로 이번 봄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앙상블오푸스는 이번 무대에서 그런 봄을 다양한 방식으로 느껴볼 수 있도록 작품을 선곡했다. 프랑스 인상주의를 이어받은 플로랑 슈미트의 '로카이유 풍의 모음곡', 아놀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그리고 류재준의 신작, '봄이 오는 소리' 이렇게 세 작품으로 무대를 선보였다.

 

 


 

PROGRAM


플로랑 슈미트 Florent Schmitt

로카이유 풍의 모음곡 Suite en rocaille


류재준 Jeajoon Ryu

플루트 사중주 ‘봄이 오는 소리’ (세계초연) Flute Quartet ‘The Sound of Spring’ (World premiere)


아르놀트 쇤베르크 Arnold Schönberg

정화의 밤 Verklärte Nacht (Transfigured Night), Op. 4

 


 

 

첫 곡인 플로랑 슈미트의 '로카이유 풍의 모음곡'은 플루티스트 조성현,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최경은 그리고 하피스트 김지인의 연주로 무대가 꾸며졌다. 이번 공연을 가기에 앞서 프로그램들을 미리 들어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곡이었는데, 이 작품은 첫 소절을 듣자마자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엇다.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이 굉장히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다. 몽환적이고 화사한 분위기로 봄의 생동감을 덧그리며 듣기에 좋을 듯하여 기대감이 컸다.

 

실제로 들으니 관악기 중에서도 섬세한 소리를 내는 플루트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하프의 앙상블은 아주 청아하고 꿈결 같은 소리를 전해주었다. IBK챔버홀에서 들은 '로카이유 풍의 모음곡'은 특히 하프의 아름다운 소리가 더욱 극대화되었다. 하프를 이용해서 이 몽환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이 정말 프랑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 북을 보니 플로랑 슈미트 음악의 핵심 요소로 '매혹 화음(Seductive harmony)'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음악적인 깊은 이해가 없더라도 참 절묘한 명칭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4악장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풍부한 색채감은 정말 매혹적인 봄의 향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또 매력적인 작품 그리고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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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곡이 끝난 후 커튼콜

 

 

이어지는 1부의 두 번째 작품은, 이번에 세계 초연된 류재준의 신작 '봄이 오는 소리(The Sound of Spring coming)'였다. 이번 무대에서 세계 초연되는 곡이다보니 레퍼런스가 없어 무대 전까지 가장 궁금한 작품이기도 했다. 봄이 오는 소리라는 제목에 맞게 봄을 그리겠지만, 류재준의 이전 작품들을 고려했을 때 절대로 흔하게 느끼는 봄이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1악장 '봄이 오는 소리'는 이름과 다르게 굉장히 색다르게 들렸다. 플루트의 부점 리듬으로 시작해서 점차 현악기들의 화음이 섞여 들어갔다. 그런데 그 음악의 진행 속에서 장조와 단조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오묘한 소리들로 가득했다. 다만 여기서 분명했던 것은 단조적인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면서도 그보다는 장조의 따뜻한 소리가 전반적으로 더 느껴지는 듯했다는 점이다. 이 오묘하고 예측 불가했던 1악장의 절정은 마치 카덴차와도 같았던 플루트 독주 대목이었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을 위해 이 작품이 작곡되었다는 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절정의 순간에 화려하게 피어난 플루트 독주 이후, 점차 전체적인 소리가 데크레센도 되면서 1악장이 점멸하듯 끝났다.

 

이어진 2악장 '봄바람'은 바이올린의 집요한 셋잇단음표 리듬을 시작으로 모든 악기들이 질주하듯 달려갔다. 생동감 있는 봄바람 같으면서도 다소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중간에 주드럽게 전환되는 순간이 있었지만 마치 삼한사온의 봄 모습처럼, 곡은 다시금 새침한 봄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스케르초적인 면이 드러난 재미있는 악장이었다.

 

이를 뒤이은 3악장 '피어나는 아침'은 노래 악장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비올라와 첼로의 깊고 울림이 큰 소리에서부터 선율이 피어났다. 1, 2악장에 비해 누구에게나 익숙한 코랄 풍의 선율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현대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온전히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악장이었다. 무엇보다도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희망과 낙관, 긍정의 모든 음악적 표현이 녹아있는 악장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내내 겨울과도 같은 인생의 시기를 보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악장. 동 터오는 여명 속에서 느끼는 그 따스한 선율 한 줄기는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감동적인 3악장에 이어, 마지막 4악장 '새싹'은 피날레다웠다. 2악장과는 또 다른 생동감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다시금 반음계적인 선율들이 나오는데, 제시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다양하게 주제가 변주되었다. 그 변주의 모든 동력이 새싹의 생동감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생명력과 활기가 충만한 '봄이 오는 소리'가 끝났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작품이었고, 이를 신선하고 아름답게 전해준 연주였다. 객석의 환호에 작곡가 류재준 역시 무대 위로 나가 플루티스트 조성현,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비올리스트 김상진 그리고 첼리스트 김민지와 함께 인사했다. 인상적인 작품과 뛰어난 연주자들이 만나 정말 완벽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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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곡이 끝난 후 커튼콜

 

 

2부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으로만 무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표제 음악이고, 모티브가 된 리하르트 데멜의 시가 있어서인지, 2부에서는 스크린을 내려 해당 시를 함께 보면서 연주를 감상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악장 사이에 휴지기가 별도로 없어 악장 구분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음악만 들으면 몇 악장인지, 시의 어느 부분을 묘사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앙상블오푸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멜의 시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곡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고자 한 듯했다.

 

'정화된 밤'의 초반부는 시의 내용에 맞춰 두껍고 무거운 소리들로 가득하다. 시작은 비올리스트 이한나의 섬약하고 가는 소리에서부터였다. 여기에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첼리스트 김민지가 조심스러운 선율로 가세했다. 이어 앙상블 전체가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소리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 소리는 점차 두껍게 덧칠된 유화처럼, 수많은 감정들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 차가운 숲 속, 그 속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여인의 심정이 강렬한 선율을 타고 홀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점차, 약음기를 낀 부드러운 소리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로서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여인의 마음을 노래할 때 잠시금 피어났던 긍정과 희락의 소리는, 남자를 만나 삶이 자신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것을 읊조리는 여인의 서글픈 심경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전환된다. 그러나 이러한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복잡한 심경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남자의 사랑 고백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다시금 환기된다. 쇤베르크가 사랑에 빠진 대상이었던 마틸데를 위해 이 작품을 3주만에 완성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원작 시의 남성에게 쇤베르크가 이입하여 여인, 그러나 정확히는 시 속의 여인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게 되어 훗날 아내로 맞이했던 마틸데에 대한 그 사모의 감정을 아주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현장에서 들으니 더욱 생생하게, 그 감정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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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이 끝난 후 커튼콜

 

 

아름다운 앙상블을 보여준 현악6중주 멤버로, 앙상블오푸스는 앵콜 무대를 연이어 꾸몄다. 바로 브람스 현악6중주 1번의 3악장을 앵콜곡으로 연주했다. 서로의 선율을 모방하면서 쫓아가 상승하는 듯한 흐름을 만들며 전해주었던 리듬감과 생동감은, 봄이 오는 소리를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이번 공연의 타이틀을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환상적인 앙상블이었다.

 

*

 

이번 앙상블오푸스의 제17회 정기연주회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풍성한 무대였다. 먼저 류재준의 신작을 바로 들을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정말 인상적이어서 앨범으로 나와 원할 때 언제든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명 '봄이 오는 소리'를 이번 무대의 주제로 삼아 주제와 잘 어우러지는 신선한 작품들을 선곡하여 전체 공연으로 녹아낸 것까지 인상적이었다. 이를 절감할 수 있게 전달해 준 뛰어난 연주까지 완벽했다.

 

익숙한 곡들도 좋지만, 관객들에게 늘 새로운 것들을 들려주고자 노력하는 앙상블오푸스의 환상적인 무대였다. 그들이 보여줄 다음 무대는, 이보다 더 놀랍고 아름다운 무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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