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간은 곧 그가 먹은 것과 같다 - 철학자의 뱃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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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구원이란,
이 문제와 오래 씨름해 온 신학자의
빛바랜 능숙함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중에서
『철학자의 뱃속』
_미셸 옹프레
[PRESS]
인간은 곧 그가 먹은 것과 같다
이 문장을 쓰며 다 식어버린 탓에 뽀얀 크레마마저 완전히 사라진 새까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메리카노. 과거 에스프레소가 쓰다며 뜨거운 물을 섞어 마시는 미국인들을 이탈리아인들이 조롱한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한 이 커피는 오늘날 한국에 정착해 종종 ‘피로회복제’ 정도로 비유되는 현대인 필수품이 된다.
왜 인간은 커피를 선택해서 마시기 시작한 걸까? 왜 이토록 오늘날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아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는 주인공이자 ‘피로회복제’같은 것이 된 걸까? 나는 왜 습관처럼 커피를 찾아 나서게 된 걸까? 한 잔의 무엇인가는 그것을 무심코 소비하는 개인과 세상의 한 단면을 성찰하고 새롭게 이해하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한 잔’은 이미 누군가들과 어느 세상의 모습이나 상태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먹는다고 하더라’ 혹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식사를 하더라’라는 식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가령 ‘A라는 사람은 오전 11시나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시간이 없어서 원하는 만큼 바삭하게 굽지 못한 식빵 두 쪽을 겨우 흡입하고 밖을 나서더라’라고 한다면 이 문장은 A라는 사람의 일상이나 생각을 얼마나 드러내고 있는 걸까. 조금 더 흥미로운 질문으로 바꿔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A라는 사람의 식생활은 그 사람의 정신적 세계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그리고 호기심의 대상인 ‘A라는 사람’에 철학자를 주인공으로 둔 책을 오늘 리뷰하려 한다. 바로 철학자들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식생활을 탐구하는 도서 『철학자의 뱃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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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곧 그가 먹은 것과 같다”
-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철학적 선언』
식생활은 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기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방식, 더 나은 몸을 갈망하는 방식, 미래를 꿈꾸고, 장래에도 음식과 현실을 조화시키려는 방식이다. 순수한 의미의 식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는다는 것은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먹는다는 것은 삶, 사유, 체계, 등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의 원형적 범주를 알려준다.
- 01. 철학자의 식생활 중에서
『철학자의 뱃속』은 철학자들 삶에 걸쳐진 식생활을 통해 그들의 사유를 살펴본다. 표현 그대로, 철학자의 ‘뱃속’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정신적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펼쳐내는 것이다. 저자 미셸 옹프레는 기록으로 남겨진 철학자들의 식생활과 그들이 쓴 철학적 사유 사이를 오가며 이 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도서는 철학자들의 ‘식생활’ 이야기를 단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사 정도로 다루지 않는다. 설명 대신 개인적인 감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철학자들이 개인이 경험하는 식생활과 사회에 존재하는 음식과 식사에 관해 이토록 진지하게 천착해왔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놓인 음식의 역할과 그것의 영향력을 중요한 화두로 다루고 있었다. 그들에게 음식은 이론으로 구축할 수 있는 대상이고, 일상적 삶에서의 실천이고, 사회와 문명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도구 중 하나였다.
몸에 좋지 않은 맛이란 꾸며진 맛, 인위적인 맛이다. 이 철학자의 눈에는 음식이 지닌 자연적인 형태 그대로를 사용하지 않은 모든 것이 꾸며진 것이다. 와인은 물론 발효된 술 모두가 문명의 산물이다. 발효, 증류, 습도조절 모두 인공적이다. 요리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 너무나 많은 작업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음주는 문명화된 행동이지 온전히 자기 행복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다.
- 03. 빵과 우유의 나날들_루소 중에서
‘음식학’, ‘혁명의 도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한편, 철학자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과 몸 상태에 따른 식생활 경험이 이들의 주장에 개입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식생활에 대한 성찰과 당대 사회에 대한 성찰이 결합되어 탄생한 철학자들의 음식 사유를 보고 있노라면, 철학이 단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론을 실천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다소 기이한 식생활을 실천하고, 심지어는 요리까지 개발하고 실험하는 철학자들을 보면서는 이것이야말로 당장 일상 속 인간 피부에 와닿는 철학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고한 자세로 사유하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흐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뱃속’ 사정은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책 속 철학자들의 식생활에 있어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써낸 철학만큼이나 음식의 선택이나 식생활 방식에 있어서도 꽤나 엄격한 취향과 태도를 지니고 또 지켜내려 했었다는 것이다.
반문명적 태도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든 논리를 반대한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는 ‘음식 허무주의’를 내세우며 문명의 상징인 불을 거부하고, 식습관에 관한 제1원칙으로서 날 것 상태의 음식만을 먹었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성을 찬양한 루소는 문화의 반대라고 본 농경과 자연을 추구하며 ‘뭘 먹을 줄 모르는 프랑스인’들의 기교가 들어간 음식이 아닌 단순하고 소박한 식사를 좋다 여기며 음식을 통해 드러나는 과도한 욕구를 경계했다. 다른 감각에 비해 객관적이지 못한 미각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던 칸트는 늘 술에 취해 있으며 ‘만취상태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고 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만취란 ‘경험이 따르는 법칙들에 의해 감각적 표상에 질서를 부여하지 못하는 상태, 즉 본성에 반하는 상태’이다. 또한 만취란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증폭시키는 신체적 방법이기도 하다. “발효주, 포도주, 맥주 또는 거기서 추출한 주정, 증류주... 죄다 자연에 반하는 인공적인 물질들”이야말로 신적인 연금술의 도구들이다. 칸트는 자기를 잊게 해주는 이 기술이 우리를 거친 세상으로부터 잠시 도피시켜준다는 점은 인정했다.
- 04. 취하라, 늘 취해있어야 한다_칸트 중에서
자신의 공상 속에서 ‘조화국’을 세세하게 구성하던 푸리에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미식에 대한 열정에 대처하고 조직적으로 탐식을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일명 모든 이들이 참여하고 토론하는 ‘음식 전쟁’을 통해 최고의 음식을 가려내는 사회를 꿈꾸었다. 니체는 인류의 구원이 다른 것이 아닌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관념과 순수지성에서 소외되던 식생활을 삶의 기술이자 실존철학으로 만들어낸다.
미래주의자 마리네티는 과거의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파스타를 증오하며 기존의 음식에 대한 관념을 철저히 거부하는 기이한 음식 조합과 식사 문화를 실험하고 실천했다. 성기과 입을 등가로 이해했던 사르트르는 굳이 도구까지 활용하며 껍데기 안에 있는 살을 ‘적출’해야 하는 갑각류 음식을 혐오했으며, 음식을 비롯해 신체 요구에 일일이 따라야 하는 것에 혐오를 느끼며 어느 면에서도 의도나 정성이나 관심 하나 느껴지지 않는 식생활을 했다.
마리네티는 모든 사람이 식사시간에 예술작품을 먹는다는 인상을 갖길 꿈꿨다. 이를 위해 그는 식사에 따른 관례를 체계적으로 정비했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모든 요소들은 상호 조화를 이뤄야 한다. (...) 그리고 모든 감각들이 식탁 위의 조화를 만들어가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
“식사를 하는 사람의 오른편에는 검은 올리브, 회향 열매 그리고 금귤이 담긴 접시를 놓는다. 그리고 왼편에는 사포와 장미색 비단, 그리고 검은 벨벳으로 만든 작은 면을 둔다.” 이런식으로 구성된 감각적 예술을 ‘공중요리’로 특화 시킨다.
- 07. 파스타를 증오한 남자_마리네티 중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거나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일 따위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빵으로 배를 채우건 빵 없이 샐러드로 한 끼를 때우건, 아니면 하루 이틀 밥을 굶건 나에겐 하등 상관이 없다.”
- 08. 돌아온 바닷가재의 복수_사르트르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술에 관한 칸트의 여러 주장을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마 칸트의 사유를 이해하고 만나보려 했던 수많은 크고 작은 시도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나치게 충성스럽고 세심한 ‘ 전기 작가들을 통해 남겨진 세세한 칸트의 식생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가 주장한 철학 이론과 그것의 성격이 그려지기도 했다. 저자의 재치있는 논평도 여전히 기억난다. "특히 죽기 얼마 전에는 광적으로 먹었다. 입맛이 변하고 식욕도 사라졌을 테지만, 자기 접시에 음식들이 똑바로 썰려 있지 않으면 그는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 모양으로, 정확히 그 모양에 맞춰서...'"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음식학은 그 자신이 꿈꾸었듯 가히 ‘예술’이라 할 만큼 과거의 관념을 거부하고 창조적이었다. 꽤 자세하게 묘사된 마리네티의 미래 식사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그 장면과 감각을 상상해 보았는데, 너무도 많은 일이 일어나는 탓에(?) 어떤 미각이 떠오르다 못해 무감각해지는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한편으론 (다소 난해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지만) 음식을 먹는 순간을 모든 감각을 동원한 경험의 순간으로 끌어올리려던 마리네티의 시도가, 먹는 것이 그저 당연시되고 자극적인 일이 된 것 같은 오늘날의 음식 문화를 생각해 보게 했다.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던 철학자들의 적극적인 주장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 다양한 식생활들은 ’음식을 입에 넣는 일’이 얼마나 많은 맥락과 상황이 얽혀 있는 일인지, 그리고 이 자체로 얼마나 많은 것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하는지 깨닫게 했다.
어머니가 보낸 소포가 도착하자 니체는 ‘만져보면 부드러운’ 소시지들을 가는 끈으로 엮어 벽에 걸어 두었다. 묵주처럼 걸려있는 소시지 아래 앉아 <안티 크리스트>를 쓰고 있는 철학자를 상상해보라...
- 06. 반기독교적 소시지_니체 중에서
그리고 철학자의 뱃속에 얽힌 사연과 함께 그들의 철학을 살펴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 둘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과 생각으로 이어졌다. 음식을 향한 태도와 자신의 논리적인 사유를 향해 드러내는 태도, 이것은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걸까? 비단 철학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누군가들과 사회의 어느 단상을 성찰할 수 있는 여러 질문 중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너무도 현실적인 식생활과 추상적인 정신적 세계를 엮어내는 질문을 하게 됨과 동시에, 다시금 철학이 말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 얼마든지 삶의 문제에 깊이 관여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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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셸 옹프레는 여러 기록들을 묘사하고 논평하며 철학자의 식생활과 그들의 사유 체계 사이를 엮어나간다. 만약 책 속 철학자들의 철학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철학자의 뱃속』이 재미있는 독서 시간을 선물해 줄 것이라 생각된다. 철학을 이해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모두에게 현실적인 화두인 식생활로 다가가 탐구하는 것은 적어도 그들의 사유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반대로 철학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철학에 접근하고 살펴보는 방식 자체가 새롭고 흥미롭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철학에 대한 이해나 관심 정도에 상관없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다양한 깊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소개하고 싶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선택은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실존의 선택이다. 실생활은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방식, 더 나은 몸을 갈망하는 방식, 미래를 꿈꾸고 장래에도 음식과 현실을 조화시키려는 방식이다. 먹는다는 것은 존재하고자 하는 의미,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 미셸 옹프레
『철학자의 뱃속』을 읽으며 나의 식생활과 오늘날 만연해 있는 식사 문화에 대해 질문하게 됐다. 그리고 식생활이야말로 생존, 문명, 혁명, 삶의 의지, 경험 등 인간을 이루고 정의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맥락이 걸쳐져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화두가 아닌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책의 끝에는 미셸 옹프레의 식생활, 삶 속의 음식 연대기가 에세이처럼 쓰여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오늘날의 나는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감각을 그리게 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 끝에 놓인 저자의 음식 연대기는 자연스레 나의 음식 연대기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먹은 음식에 얽혀있을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것, 어느 사회와 환경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했다.
새삼 내가 뭘 먹고살고 있나 돌아본다. 그리고 이토록 식생활과 음식 문화가 사람과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먹는 것이 단지 개인의 기쁨과 생존의 문제인 것을 넘어서 이제는 내가 먹는 장면을 전시하고 남이 먹는 장면을 보고 즐기며 소비하는 오늘날의 사회는 무어라 이해할 수 있을까”와 같이 음식에 얽혀 있을 다양한 질문이 떠오른다.
아마 거창한 기교를 부린 음식이 아닌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식사를 추구했던 루소가 이 장면을 본다면 매우 한탄했을 것이다. 잠시 루소의 주장에 기반해 나름대로의 내 생각을 남긴다면, 지나치게 ‘음식’에만 무작정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붓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의 의미나 방향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함께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런 문화는 우리를 무엇을 어떻게 먹게 하고 있고, 우리 정신과 삶에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점심을 굶은 오늘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준비해서 저녁 식사를 할까 고민된다. 거친(?) 1인 생활을 하는 나에겐 꽤나 거창한 질문인 것 같은데('식사'라는 말도 왠지 어색하다) 식생활 얘기를 한 만큼 괜히 생각해 본다. 아, 어쩌면 이 질문조차 나의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급하게 떠오른다. 정말 우리의 식생활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서 정보]
"먹는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몸, 삶의 방식,
그 사람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준다"
철학자들이 즐겨 먹던 음식을 통해
그 철학자들의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자의 뱃속』
Le ventre des philosophes
저자
미셸 옹프레
옮긴이
이아름
분야
인문 - 에세이
쪽 수
248p
가격
14,800원
발행일
2020년 12월 11일
출판사
불란서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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