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위로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글 입력 2020.12.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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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학의 존재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선 언제나 소설이 시를 앞질렀다. 시를 곱씹고 이해하기에는 내 머리가 충분히 자라지 않았던 시기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이든 아니든 불친절한 것을 질색하는 나에게 시는 늘 불친절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한 번 나에게서 멀어진 시를 다시 가까이 끌어당기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교과서 속의 유명한 시들을 보아도 전혀 감흥이 일지 않았고, 사람들이 좋다던 시들을 읽어도 현학적으로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우연히 하나의 시를 만났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시인의 ‘봄’이었다. 본래 눈물이 많은 성격이기는 하다. 하지만 글자들이 눈에 들어와 박히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조차도 이름 붙이지 못한 나의 마음을, 얼굴도 모르는 이가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 순간,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해가며 공부했던 시간들이 전부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이해하려고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알아서 내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들을 나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시집을 넘기다 이 시를 마주쳤을 때, 나는 놀랐고, 반가웠고, 기뻤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은 지 몇 해는 지난 고향 친구를 길에서 만난 것처럼, 이제는 빛이 조금 바랬지만 여전히 생생한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태주 시인이 이 시를 두고 한 말처럼, ‘씩씩하고 시원시원하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무렵의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매우 지쳐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 그럼에도 저만치 앞서 나가는 내 또래들을 보며 끈적끈적한 무기력에 파묻히곤 했다. 그 때 이 시는 나를 단단한 손으로 일으켜 세워주었다. 먼데서 이기고 돌아왔을 그 봄이, 나에게도 오리라고 말하며 내 등을 토닥이는 구절들이 눈물나게 따스했다. 여러 번 읽었지만, 여전히 마지막 행을 보면 가슴이 벅찬다.

 

*

 

처음 시집을 열었을 때만 해도 조금은 불안했다. 시와 친하지 않은 내가 이걸 온전한 마음으로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차례대로 시들을 읽어가며 느낀 것은, 의외로 내가 아는 시가 많다는 것이었다. 거기 있다는 티도 내지 않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내 가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내가 책을 펼치는 순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읽었는지 같은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몇 가지의 시어만 남아 있어도, 여전히 그 자리를 그렇게 지키고 있었다.

 

시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단어 몇 개, 문장 한 줄만이 남더라도 깊고 진하게 흔적을 남긴다. 그러다 우리가 한없이 연약해질 때마다 슬그머니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냐고, 나 여기에 지금 있다고, 그렇게 말을 붙여오는 것이다.

 

내가 늘 시를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이유, 이상하게도 정을 붙이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과묵하고 말이 없는 시들이 그렇게 내 속에 남아있다가, 물러진 내 마음을 쿡쿡 찌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내 감정의 민낯을 제멋대로 들여다보는 것을 불친절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짜증 나는 간섭이나, 섣부른 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는 내가 직시하지 못한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위로를 건네준다.

 

시집을 덮으며 따듯한 차를 마신 듯 온몸이 기분 좋은 포근함으로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필요한 줄도 모르고 살았던 위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 적당한 어루만짐이 이제 나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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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 시는 찬란한 나의 편 -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한국시

규격
117*198㎜

쪽 수 : 260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927-96-3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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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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