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 오는 날 듣는 이별 노래 [음악]

가볍지 않은 이별 노래
글 입력 2020.07.0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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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생명력 느껴지는 봄과 여름 사이, 잠시 맛보는 서늘함이다. 날이 더워지면 무거운 노래를 리스트에서 빼고, 밝고 경쾌한 노래를 채워 넣곤 하는데, 장마철이 되면 날씨와 안 맞아서 잠시 멀어져있던 노래를 다시 가져와 듣고 한다.

 

최근에 다시 꽂힌 건 이별노래다. 예전에 듣던 노래를 찾아 지금 쓰는 핸드폰에 넣었는데, 그 당시 나는 이별노래를 참 많이도 좋아했었다. 타이밍 좋게 장마가 시작되어서 서늘한 날씨에 서늘한 감정을 담아 듣고 있다.

 

화창해지면 더는 못 들을 가볍지 않은 이별 노래들.

 





캐스커(Casker)

♩꼭 이만큼만

 

 

 

 

꼭 이만큼 이만큼만 너도 날 미워하기를

나처럼 나처럼만 너도 날 미워하기를


천천히 터벅터벅 사랑은 끝을 향해 가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가네

서슴없이 성큼성큼 사랑은 끝을 향해 가네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이제 뒷모습도 내게는 보이지 않네

 

 

차가운 공기가 한 번 훑고 지나간 느낌이다. 감정적인데 서늘하다. 꼭 이만큼만 너도 날 미워하기를 바란다고 시작해서는 사랑의 끝의 끝까지 보여준다. 사랑은 천천히 끝을 향하다가 성큼성큼 빠르게 끝나버린다.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데 주저 없이 올곧게 이별로 향한다.

 

사랑을 잊으려면 상대를 미워해야 하는데, 미워하는 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너무 미운데 미워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제대로 미워하지도 못하는데 이별은 야속하게 끝의 끝으로 서슴없이 성큼성큼.


 


 


보드카 레인(Vodka Rain)

♩보고싶어

 

 

 

 

보고싶어 너의 눈물을

죽을 만큼 슬픈 너를

보고싶어 나 없이는 

그저 그런 사람인 널


사랑했던 너였지만

 

 

사랑이 과거형이 되었다. 현재진행형처럼 세상 온갖 좋은 것들을 빌어줄 수 없다. 나에게 너무 미운 너라서, 울었으면, 슬펐으면, 나를 잃고 많은 의미를 잃었으면. 참 외로운 마음이다. 혼자가 되어서 상대가 아프고 슬프기를 바란다. 마치 그래야 내가 괜찮아질 것처럼. 정작 부품 하나 빠진 듯 일상이 허전하고 허술해져버린 건 나인데.

 

나만 이럴 수 없으니 너는 슬프고 아프고 힘들었으면. 그랬으면. 그리고 나에게 돌아왔으면.

 

노래에는 이별에서 갓 건져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윤종신 feat.정준일

♩말꼬리

 

 

 

 

우리의 사랑 바닥 보일 때까지

우리의 사랑 메말라 갈라질 때까지 다 쓰고 가

남은 사랑처럼 쓸모 없는 건 만들지 마요 

손톱만큼의 작은 사랑도 내게 다 주고 가요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를 붙잡기 위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에 반박한다. 나는 덜 사랑해서 헤어지지 못하겠다며, 떠날 거면 손톱만한 사랑 한조각도 남기지 말고 다 쓰고 가라고 한다. 이별을 부정하는 마음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주인을 잃고 남은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랑은 한쪽만 남으면 너덜거리다 떨어져나간다. 혼자서 붙들어봤자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형태를 잃은 사랑은 너무 아프다.

 

그래서 노래를 들으면서 차라리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덜 아프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랑이 메말라서 헤어진다면 남은 사랑을 부여잡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나윤권

♩뒷모습

 

 

 

 

한 번쯤은 마주칠 것 같아서

그렇게도 사랑했던 우리라서

그리움이 버거울 때 쯤

서롤 찾을 것 같았어

 

 

정말 이유를 모르겠지만, 헤어지고도 우연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당연히 어디선가 한 번 마주치지 않을까. 서로 수많은 곳을 같이 갔는데 의미 있는 장소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처럼 그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우연은 찾아오지 않고, 막연한 기대는 기대로만 머무르자, 그때 붙잡았을 걸 후회한다. 다시 올 기회 같은 건 없고 이별만이 선명하게 남아서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달랐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10cm(십센치)

♩그게 아니고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털레털레 오르다

지나가는 네 생각에 내가 눈물이 난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털레털레 오르다

지나가는 네 생각에 우네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일상에 묻어있는 너의 흔적을 발견하고 우는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운다.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오르는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을 하다가도 네가 생각나서 운다. 밤에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다가 울었다. 그리워서, 걱정돼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

 

양말 한 짝, 네가 먹던 감기약, 선물 받은 목도리. 생활감 묻어나는 키워드 때문일까, 이 노래는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이미지화가 잘된다. 춥고 허전하고 지나치게 메마른 일상에서 오는 외로움이 느껴진다. 헤어지고도 끝나지 않은 나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은 너의 작은 흔적도 너무 짙고 크다.

 

 


 

 

언니네 이발관

♩애도

 

 

 

 

우후 이대로 잊을 수 없네 

예예 연락을 건네보지만 

우후 그만큼 더 멀어지네 

원래 넌 그런 사람이지만 


아물어 내 상처 아물어 이젠 

그 어떤 날도 기억나지 않게 

시간은 내편이 아냐 

그대도 내편은 아냐 

추억만이 나를 고문하고 있네 

 

 

담담하고 담백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별을 얘기한다. 되돌리려고 연락을 했지만 오히려 더 멀어지기만 하고, 시간도 사랑했던 그대도 내 편이 아니고, 같이 만든 추억은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한다.

 

 

“날씨가 좋구나 너를 잊으러 가야지 

너를 잊으러 가는 이 길이 아직 슬퍼”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니 차분하게 우울하고 괴로운 마음이 든다. 헛웃음 나오는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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