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채워질 수 없는 슬픔의 구멍을 수용하다, 드보르작 '스타바트 마테르' [공연]

인간애와 종교적 신앙이 결합되어 더 큰 감동을 준 드보르작의 '스타바트 마테르'
글 입력 2017.04.0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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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으며 거기에 묘사된 노트르담에 매료된 이후 나에게 있어 종교 하면 대성당이 떠오르곤 한다. 대성당의 높은 천장, 성당 안에 울려퍼지는 성가와 오르간 소리 등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압도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성당은 예배를 드린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성스럽고 엄숙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득 담아 만든 건물이기 때문에 웅장함마저 지니고 있다. 이 속성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성가(聖歌)일 것이다.

 풍부한 화음과 완결성을 띠는 곡의 진행을 느낄 때면 웅장한 대성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라토리움’이라고 하는, 종교음악의 한 장르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페르골레지의 음악으로 처음에 알고 있었는데, ‘신세계로부터’ 2악장을 듣고 마음에 쏙 들었던 드보르작 또한 [스타바트 마테르]를 만들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신세계로부터’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느끼진 못했기 때문이다.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로부터 인간애를 느꼈고, 엄숙한 종교음악의 이미지와는 매치가 어려웠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것에서 신성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말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의 인생 역시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신성했지 않은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드보르작의 특유의 서정성과 종교음악이라는 장르가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를 줄까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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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보르작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총 1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서울오라토리오의 공연에서는 무대 뒤편 위쪽에 대형스크린을 띄워 가사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가사가 상당히 짧아 놀라웠는데, 오히려 짧은 가사의 반복이 간절함과 기도문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 곡 ‘Stabat Mater Dolorasa’는 처음부터 종교음악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며 비장미 넘치는 분위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중에도 드보르작 특유의 서정적 느낌이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메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점점 커져가는 슬픔 그리고 폭발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렇게 폭풍전야의 긴장되면서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합창이 시작된다. 성모의 비통한 모습을 엄숙하면서도 장엄하게 표현해낸다. 긴장이 지속되다가 이완되는 부분을 집어넣으며 고통 중에도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20여분의 긴 곡으로, 남은 아홉 곡의 느낌을 잘 펼쳐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 번째 곡인 ‘Eja mater fons amoris’는 저음으로 중후한 멜로디로 시작하고, 합창단의 화음이 무겁게 얹힌다. “나에게도 슬픔 나눠 함께 울게 하소서”라는 가사에 맞게 슬픔이 폭발해 울부짖는 듯한 느낌의 합창 부분이 있었다. 이와 대비하여 다섯 번째 곡 ‘Tui nati vulnerati’와 여섯 번째 곡 ‘Fac me vere tecum flere’는 평화롭고 밝은 느낌의 멜로디가 펼쳐진다. 종교음악임에도 드보르작의 색채가 가장 강하게 묻은 곡이 이 두 곡이 아닐까 싶다. ‘신세계에서’에서 느꼈던 전원을 담은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Fac me vere tecum flere’에서 현악기를 튕기는 음과 테너의 목소리가 정감있게 맞아 떨어지면서도, 멜로디의 진행으로 신성함을 준 듯 했다. 곡의 진행이 이완되다가도 갑자기 반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슬픔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 같기도 하다.

  아홉 번째 곡인 ‘Inflammatus et accensus’은 처음 들었을 때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였는데, 힘있게 연주하면서 결의에 찬 듯한 느낌을 전하고자 한 것 같았다. 알토 솔리스트가 곡 전체를 이끌었는데, 중간에 템포가 느려지며 솔리스트의 역량이 돋보이는 구간이 있었다. 서정적인 선율 때문인지 홀로 앉아 단촐하면서도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 역시 드보르작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준 것 같다.

  마지막 곡, ‘Quando corpus morietur’에서는 첫 번째 곡과 거의 같은 주제가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결말, 그리고 극적 해소의 느낌을 이 곡에서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왠지 첫 번째 곡보다 더 풍부한 사운드로 고통이 승화되는 것에 대한 확신을 나타낸 것 같았다. “아멘”이 수십 번 반복되며 웅장함을 주고 청중을 압도하다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멈추고 오롯이 합창단의 목소리만 공연장에 울려퍼진다. 이후 상승의 분위기를 타다가 다시 가라앉고 고요한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이완되며 끝이 나는데, 이 구성이 쉼없이 달려온 듯한 느낌을 주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진이 빠지게 하며 마침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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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은 이 곡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3년의 시간동안 세 명의 자녀를 잃었다. 그래서 드보르작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여타 음악가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한 성모로서의 비통함, 그러나 다시 부활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잘 드러난 성모 애가, 스타바트 마테르. 바로 이것이 자식을 잃은 드보르작이 사무치는 슬픔을 수용하고 승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떠나간 연인의 빈자리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메꿀 수 있지만 부모나 자식이 떠난 빈 자리는 평생 메꿔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평생 안고가야 할 마음의 구멍이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는 존재하는 것이다. 최영철 감독과 서울 오라토리오의 공연은 드보르작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가진 이러한 공허함과 슬픔,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고 믿겠다는 의지를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었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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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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