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하는 친구가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일시가 목요일 밤 9시였다. 평일 밤 9시? 그것도 현대음악을? 장르와 시간이 썩 잘 맞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막상 공연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편하게 보러 올 수 있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벌써 시리즈의 다섯 번째인 이 공연에서는, 최수열 지휘자가 마치 사랑방 주인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곡해설을 하는 것이 포인트인 듯했다. 물론 객석에 오로지 교양만을 위해서 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현대음악이라도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긴장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기획의 훌륭한 점이었다.
현대 음악 공연, 또는 새로운 작곡가의 곡 발표를 보러 갈 때면 늘 하나의 실험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데에 대한 설렘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날도 역시나 그런 두근거림을 느끼며 공연장에 입장했다.
1. 피에르 조들로프스키, Time & Money part 1
첫 번째 곡은 피에르 조들로프스키의 'Time & Money'라는 곡이었다. 오프닝으로 선정하기에 아주 적합했는데, 무엇보다 매우 신기한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김은혜 연주자가 커다란 블록 모양의 책상 같은 악기 앞에 앉아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연주를 시작했고, 좌우 허공으로 손을 뻗을 때마다 전자 음향 효과가 나왔다. 어느 정도의 연기 실력도 요구되는 작품으로 보였다. 짧은 길이의 작품이어서 몰입해서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나 있었다.
현대음악 치고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나는 편이라고 느꼈다. 작곡가 피에르 조들로프스키는 의미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대해 중점을 두는 편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시간과 돈이라는 주제가 잘 드러났는데,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연주하는 것은 시간에 쫓기는 것, 손을 뻗을 때는 허공에 있는 돈을 잡으려는 손짓처럼 보였다. (손을 뻗을 때 동전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속 인간의 상품화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2. 이하느리, As if…….I (세계 초연)
이하느리 작곡의 'As if…….I'는 본 공연을 위해 위촉 초연되는, 말하자면 오늘의 주인공 격인 작품이었다. 10인의 앙상블과 타악기 연주자를 위한 협연 곡이며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선 곡의 영향인지, 들으면서 자꾸 의미에 집착하게 되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곡인가? 비현실적인 느낌? 제목도 As if이고 러닝타임은 9와 3/4 분. 후반부에 사용된 오르골에서는 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오는데.... 모든 요소에 의미를 다 부여하면, 꿈같은 느낌의 곡이 되는 건가? 등등 혼자 끝없이 망상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하느리 작곡가에 대해 잘 모르고 했던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곡에는 그저 아무 의미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팸플릿을 자세히 보면 As if… I had a plan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속은 셈이다. 제목은 직감적으로 알파벳 모양이 곡과 잘 맞아서 골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곡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해석한 것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다고 해도, 그가 구성한 음향이 나에게 닿아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는 것이니까. 눕힌 기타의 줄을 컵으로 눌러서 연주하거나, 하프시코드와 오르골, 음색을 미리 조절한 피아노를 포함시켰고, 다양한 타악기를 교차하여 사용하였다. 그 모든 음향적 구성이 전형적이거나 혹은 아예 범접 불가하게 난해한 느낌이 아니라,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최수열 지휘자는 요새 가장 촉망받는 이하느리 작곡가를 두고 좋은 재료를 모아서 곡을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서의 재료는 무엇일까? 음 진행? 악구나 악절? 혹은 새로운 주법? 이 재료들을 모으는 데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니 아마도 거기서 신선한 느낌이 나오는 것이리라. 비유하자면 마치 시골에서 재배해 싱싱한 재료들을 가지고 최고의 요리를 내는 것처럼.... 여전히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직감적으로 좋다는 인상을 받은 곡이었다.
3. 비토 주라이, Runaround (한국 초연)
마지막 곡, 비토 주라이의 Runaround는 정말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았으며 마치 음향의 실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운데에는 트럼펫 두 대와 트롬본, 호른의 금관 4중주를 두고 뒤에는 목관+현악기 페어 5쌍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는데, 이 구성이 특이하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더욱 실험 같다고 느낀 것이리라. 음악의 흐름은 가운데의 금관악기로 몰렸다가 페어로 분산되었다가 현악기, 목관악기에서 선율을 주고받으며 한 바퀴 돌기도 하였다. 베이스의 피치카토로 연주되는 음계에서는 재즈적인 요소가 들리는 등 공간뿐만 아니라 음악 안에서도 다른 장르가 파편화되어 들어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리로 시작해서 중간에는 점차 예측 불가능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악기가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마쳤다.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어려운 곡이었다.

나는 보통 어떤 작품이 좋았는지를 판단할 때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 효과적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현대 예술 작품에서는 이 기준이 참 모호해진다. 특히 음악에서 말이다. 어떤 작품은 말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감각을 담고 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내용을 배제한다. 이때에도 좋은 작품에 관한 판단은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판단의 이유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참 힘들다. 논리로 설득할 수 없다면, 내가 좋다고 느낀 작품이 어떻게 보편적으로도 좋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계속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서, 어떤 예술은 내용을 찾는 것이 참 무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현대음악 공연을 보게 된다면, 오로지 청각에만 의존해서 그 세계를 탐험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