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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la Marcel’ 로고가 박힌 재킷을 입은 긴 머리의 남성이 뒤돌아보며 소리 지르자,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이는 그의 모습에 놀라 울음을 터트린다. 이윽고 폴은 악몽에서 깨어난다.

 

무의식에 숨어버린 기억을 쓴 차와 달콤한 마들렌으로 떠올리게 하는, 현재가 힘들고 우울한 사람들을 달래 줄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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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ust)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아 오마주한 영화로 특정 감각 자극이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프루스트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폴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고지식한 이모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무언증 청년이다. 그의 집은 음악가들의 사진이 걸린 벽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가 창을 막고 있는 고풍스러운 곳이다. 폴은 이모들을 따라 피아노를 치고, 댄스 강습소에서 연주하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폴의 삶은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은 같은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풍성한 식물과 창가로 들어오는 따스한 빛을 가득 머금은 공간이다. 그녀는 탁자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와 마들렌을 내어주고 찾아오는 손님들의 무의식 속 갇힌 기억들을 통해 현재를 치유해 준다. 기억 속 폭력적인 아빠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으로 악몽을 꾸던 폴은 기억 속 다정한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는 그녀의 제안에 무의식을 여행하며 그리운 엄마와 마주하게 된다. 이후에도 폴은 종종 이모들 몰래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어쩌면 고통스럽고 또 행복한 기억들을 일깨우며 치유하고 성장한다.

 

마침내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자취를 감추며 마지막으로 남겨 준 음반 ‘Attila Marcel’, 차와 마들렌을 통해 기억 속 폭력적이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레슬링 선수였으며, 그의 엄마와 본인을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 이후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감정을 담아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콩쿠르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게 된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영화의 서두처럼 기억은 양면적이다. 기억은 행복과 불행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억은 일종의 숙성 과정을 통해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트라우마로 기억 속에 갇힌 폴이 콩쿠르에서 수상 후 마주한 새로운 기억은 위층에서 이모들이 연주하던 피아노가 행복하게 춤 추던 부모의 위로 추락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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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la Marcel: 파괴자이자 해방자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원제는 ‘Attila Marcel’이다.

 

Attila Marcel은 폴의 예명이자, 그의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되는 음악이다. 그리고 이 이름은 5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흉노족의 왕, 아틸라(Attila the Hun)를 연상시킨다. 역사 속 아틸라는 야만적이고, 공포스러운 정복자로 인식되는 동시에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등장은 기존 체제의 붕괴, 억압의 종말,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상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Attilal는 단순히 이름을 넘어 폴의 이중적 자아를 상징한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폴의 감정, 분노, 창의성은 억압 속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기억을 회복하며 폴은 억눌린 감정과 정체성을 폭발시키듯 꺼내기 시작한다. 마치 내면의 아틸라는 깨우는 과정처럼.

 

흥미로운 점은 Marcel이 프랑스어권에서 온화하고 예술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기억과 감정의 서정적인 세계와 연결된다. 따라서 전체 이름인 Attila Marcel은 파괴(Attila)와 창조(Marcel)의 이중성, 야만성과 예술성, 억눌린 본능과 회복된 감성의 통합체인 동시에 폴 그 자체이다.

 

 

 

청각적 감정 회복의 서사


 

초록빛이 가득한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 정서적 안전지대를 형성해주는 마담 프루스트. 아름다운 색채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보다 음악으로 마음의 회복을 시도한다.

 

영화에서 청각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심리적 전화 도구로 작용한다. 피아노 소리, 어린 시절의 목소리, 감정이 실린 멜로디, 음반 Attila Marcel 등은 폴의 깊숙한 무의식을 두드리고 억압된 기억 속에 직접 닿으며 회복의 통로를 연다. 프루스트의 정원에 울려 퍼지는 폴의 과거 속 모빌과 개구리 밴드의 음악은 꿈을 꾸는 상태에서 억압된 기억을 우회적으로 환기하고 자아가 자기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즉, 폴은 눈으로 과거를 보기보다는 소리로 자기 자신을 다시 듣는 과정을 통해 잊혔던 자아를 회복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나쁜 기억은 행복의 홍수 밑으로 보내버려.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야.”

 

추억은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 실패나 상실 따위도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고 클래식한 추억으로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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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 ta Vie (너 자신으로 살아)


 

나는 나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나’라는 사람은 일인칭이기도 하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듯하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개개인의 능력인지, 개인 그 자체인지 모호해진다. 그러나 영화는 ‘나’라는 사람이 특별한 능력이 아닌 행복한 기억과 슬픈 기억 모두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극 중 프루스트는 “죽음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야. 쳇바퀴 도는 삶이 문제지.”라고 말하며 기꺼이 폴의 안식처가 된다. 그녀의 말처럼 중요한 감정과 기억을 억압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서 고통스럽고 슬픈 기억들을 마주하여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고통스러운 기억도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Attila Marcel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자아를 재동일화(re-identification)하면서 기억을 추억으로 보낼 수 있었던 폴은 프루스트가 생전에 즐겨 연주하던 우쿨렐레를 품에 안고,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

 

폴의 이야기는 Attila Marcel를 듣는, 결국 자신을 듣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리와 음악, 그리고 기억 속의 감정들이 어우러져 그가 과거를 떠나 현재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청각적으로 들을 때,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더는 과거에 갇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님과의 기억 속 그랜드 캐니언에서 자신의 아이를 돌아보며, 다정하게 ‘아빠’라고 말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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