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공연을 알게 된 건 학교와 연계된 교외근로처의 처장님 덕분이었다. 2학년 때 여름방학에 한 달간 교외 근로로 혜화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때 근무했던 곳이 연극인 복지 단체였다. 아무래도 연극인을 위한 단체다 보니 많은 연극인 분들을 뵐 수 있었고, 때때로 연극 공연을 무료로 볼 수도 있었다. 직원들끼리 점심을 같이 먹을 때면 근래에 봤던 연극 얘기가 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공연 중 하나가 바로 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백상예술대상에서 젊은 연극상을 받았던 작품이라며, 관련 전공인 나에게 좋은 작품일 거라는 말이 이어졌다. 궁금해져 예매처에 들어가보니 타이밍 맞게 재연하고 있었다.
해당 공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자 청소년’ 주인공 ‘은빈’은 재수생이지만 알바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언젠가 지방에 있는 치대에 합격해 모은 돈을 갖고 집을 떠나기만을 고대한다. 남편과 사별한 후 자식에게 집착하는 엄마 ‘미희’와, 매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차별하는 할머니 ‘복자’가 있는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떠나기 위해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은빈은 친오빠 ‘규빈’이 트랜스잰더임을 깨닫는다. 은빈은 오빠 때문에 집안에 불화가 생기면 자신의 목표에 차질이 생길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오빠의 비밀을 최대한 숨겨보려 하는데, 와중에 오빠의 요상한 바람은 점점 많아진다. 은빈의 화장품으로 화장만 하는 게 아니라, 화장한 상태로 공원에 나가보고 싶기도 하고, 헌팅하러 다가온 남자들과 여장을 한 채도 술도 마셔보고 싶단다. 이러한 복잡다난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지긋지긋한 이 낡은 빌라 안에서, 은빈은 자신의 목표를 맘속에 꼬옥 안은 채 꿋꿋이 살아간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제목에서부터 성별에 관한 상징이 드러난다. ‘고추’는 남성을, ‘복숭아’는 여성을. 결국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청(소)년 ‘은빈’이 기성의 관습 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상처와, 그 틈에서 분란하게 피어오르는 퀴어에 대한 얘기를 보여준다. 기성세대 때부터 어쩌면 현재까지, 고스란히 박혀있는 여성에게 강압적인 유교 문화와, 그 안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 그리고 퀴어로서 받는 고통을 연극은 잘 보여준다. 이 연극에서는 고통을 공유하고 있는 여성과 퀴어가 힘을 모은다. 집안에 일어날 분란을 막기 위해서도 있지만, 은빈은 자신의 친오빠이자 친‘언니’인 규빈을 위한 진심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오빠이지만 또 언니로도 인정 받은 규빈도 동생을 위해 소심한 도움을 더한다.
두 인물이 서로에게 힘을 보태면서 가족의 억압 안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필사적으로 연대하려는 모습이 마음을 울렸다. 동시에, 마냥 나쁘게만 바라볼 수 없는 미희와 복자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두 인물 또한 결국, 그간의 사회 구조에 의한 피해자니까. 어쩌면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면서 가해하는 광경이, 너무나도 과거부터 여전하게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따끔하게도 보여주고 있는 듯 하여 씁쓸해지기도 했다.
깊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연출 방식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많았다. 극 안에서는 네 명의 배우가 배역을 마구잡이로 체인지 한다. 그 말은 즉, 배역의 성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네 배우들이 옷(배역마다 정해진 옷)을 퀵체인지 하면서 바꿔 연기한다. 배우가 바뀔 때마다 은빈이는 여동생이면서도 남자가 연기하는 여동생이 된다. 남자가 여자를 연기하기도 하는데. 여자이기에 받는 억압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남자 배우가 내보이는 것에서 심정이 묘해졌다. 그리고 또, 트렌스잰더인 규빈이가 단순히 남자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게 아닌, 여성의 모습으로서도 존재하는 걸 보면서 참 인상 깊었다. 네 배우가 ‘트랜스’해가며 보여준 덕에, 같은 인물에게도 다른 시선과 감정으로 이입할 수 있었다.
텍스트만 생각했을 때도 정말 완성도 높은 작품인데, 이렇게 네 명의 배우들이 모든 역할을 트랜스해가며 소화하는 것이 그 높은 완성도를 더욱 높이 끌어 올린다. 좋은 이야기에 좋은 형식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이야기는 ‘가족의 억압’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걸 보여주는 형식 또한 훌륭했다. 이야기의 공간은 위 이미지와 같이, 좁디좁은 마킹 안에서 이루어진다. 마킹들과 정 중앙에 놓여있는 덧마루에서 진행되는데, 이 공간 안에서 네 배우는 까치발을 들고 이동하기도 하고, 한 명이 빠지고 다른 한 명이 들어가기도 한다. 아니면 네 명이어서 아주 비좁게 붙어 있기도 한다. 이런 공간의 활용과 형식 또한, 답답하기 그지없는 ‘가족의 억압’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연극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성이라는 존재로서 살아왔던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 그리고 내가 아닌 여성이라는 주체들이 겪었을 무수히 많은 것들. 머릿속이 복잡다단해졌다. 도중에는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는 것에서도 그러했다. 나는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입장이고, 어쩌면 일반에 속하는 처지라 그들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어쩌면 공감하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상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이해되는 것들이 있었다. 정말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이 밝혀지지 않으면 좋겠으면서도, 정말 언젠가 발가벗겨지듯 밝혀지기를 바라는 것. 그렇게 속 시원하게도 밝혀지는 것. 완전히 공감이 가지는 않더라도, 감히 내가 공감할 수 없더라도. 그나마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좋은 연극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복잡하면서도 슬프고, 기쁘기도 한 생각이 머릿속을 오갈 때, 비로소 나는 “아, 내가 정말 좋은 연극을 봤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좋은 청(소)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