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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조선의 괴물, 그가 남긴 말 - 연극 ‘몬스터 허균’ [공연]

수레 뒤 먼지를 보며 절하지는 않으리.

by 이진 에디터
2026.10.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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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말이 많은 이들의 삶은 고달프다. 말이 많으면 자연스레 입방아에도 자주 오른다. 말이 말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행동력까지 있는 경우엔 위험한 상황에 말려들기도 쉽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글쓰기까지 즐긴다면 더하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이들은 대부분 말도 많다. 글과 말의 뿌리는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작가 혹은 비평가는 자신이 내뱉은 말로 인해 사랑과 미움을 함께 받는다. 그들의 말과 문장은 누군가에겐 꿀보다도 달콤하지만, 누군가에겐 앙심을 품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요사하고도 음란한데 단지 글재주가 있어 진신의 반열에 끼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 기록된 허균에 대한 평가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문장가, 비평가이기도 했던 교산(蛟山) 허균은 ‘천지간의 한 괴물’이라 불렸다. 시인 허난설헌(허초희)의 친동생인 허균은 허구의 이야기를 꾸미는 것, 즉 창작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홍길동전>의 저자로도 알려진 그는 가족들과 함께 ‘허씨 5문장’으로서 작가적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살았다.


      사대부 집안의 자제로 과거에도 급제했고, 문장가의 능력을 타고났으며, 자유롭고 적극적인 성격과 행동력 덕에 많은 이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그는 역모죄로 사형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언은 ‘아직 할 말이 있다’였다.


      연극 <몬스터 허균>은 자유와 혁명을 꿈꾼 조선의 괴물 허균의 생 마지막 밤을 그려낸 작품이다. 2022년 공주 고마나루 국제연극제 대상을 받았던 <몬스터 허균>은 <허길동전>이란 이름으로 몇 차례 공연된 바 있다. 10월 8일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에서 개막해 11월 1일에 막을 내리는 작품은 박일석과 이금구가 극을 쓰고 김관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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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터 허균>은 사형 전날 밤, 허균과 광해군이 만나 술자리를 한다는 역사적 상상에서 탄생한 극이다. 허균과 광해군의 만남은 하룻밤이지만, 작품은 허균 삶 전체를 다룬다. 광해군, 충신 이이첨, 허균과 예술적 교감을 나눈 예인이자 기생 매창(이매창), 허균이 창조한 인물이지만 그를 꾸짖고 일깨우는 내면의 거울 홍길동까지. 여러 인물이 등장하며 허균의 인생과 그들이 살았던 당시 조선을 이야기한다.


      연출 또한 다채롭다. <몬스터 허균>은 노래의 비중이 큰 음악극이다. 작품은 해학과 풍자를 극대화한 현대판 마당극이자 퓨전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술 마시기 좋은 때’란 노래는 오프닝부터 커튼콜까지 반복된다. 꼭두각시놀음(덜미)을 활용한 인형극 또한 볼거리 중 하나다.


      작품에서 가장 날카로운 풍자를 담당하는 분위기 메이커 홍길동은 악사이기도 하다. 꼭두각시놀음에서 극을 이끌고 관객과 소통하는 ‘산받이’에서 비롯된 산이와 받이는 이 작품에서도 놀이꾼 역할에 충실하다. 그들 또한 악사로서 장구를 두드리며 풍성한 소리를 만들고, 의미심장한 말들로 풍자와 해학의 기능을 더해준다. 매창은 노래뿐만 아니라 처연한 춤과 몸짓으로 극의 쓸쓸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무대 스크린을 활용한 자막 연출, 허균과 이이첨의 사상 대립을 시각화한 쇠사슬 연출, 자신의 과오를 지우듯 수시로 물로 얼굴을 씻어 내리는 인물들까지. <몬스터 허균>은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다채롭고 풍성한 무대 연출을 지향한다. 작품 대부분이 허균과 광해군, 이이첨의 마지막 술자리 장면으로 전개되기에 극이 지루해지거나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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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던 허균의 삶처럼 <몬스터 허균> 또한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고 싶은 게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메시지는 비교적 뚜렷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실존 인물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몬스터 허균>도 허균의 모든 면을 극화하지 않았다. 작품 기획 의도에 맞는 인물 특성을 선택하고 장점을 극대화해 ‘캐릭터’를 만들었다. 김관 연출은 “시대의 창이자 거울인 연극을 통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 이상사회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라는 기획 의도를 밝혔다.


      재능이 뛰어난 문장가인 것은 분명했지만, 정쟁에 휘말려 역모죄로 처형당한 허균은 조선시대 내내 명예가 복권되지 않았다. 현대 대한민국에 와서야 재평가받기 시작했지만, 허균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의견이 오가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오늘날의 기준에선 허균이 주창하는 사상(서얼 철폐·계급제도 타파)은 옳지만, 조선에 살던 그는 사회의 뜻을 거스르는 괴물이었다. 허균은 관료로 살아가기엔 이단아였고 힘없는 자들의 편이라기엔 기득권이었다.


      작품은 분신 홍길동과 허균이 만나는 장면, 율도국의 왕이 된 홍길동의 모습을 통해 허균과 조선 사회를 꼬집는다. 서얼 제도와 신분제 타파를 외쳤지만 결국 사대부 가문의 자제였던 허균은 홍길동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판타지적 설정일 수도, 허균 내면 목소리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것일 수도 있는 해당 장면은 상상력에서 비롯됐지만 주제 의식은 선명하다. <몬스터 허균>은 이처럼 판타지적 장면도 존재하지만, 결말은 판타지가 아니다. <홍길동전>에 담긴 뜻을 꺾으면 살려주겠단 광해군의 제안을 거절한 허균은 죄인으로 처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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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 먹음은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호민론>에서 허균이 남긴 말이다. 그는 이처럼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사상을 거침없이 주창했고, 그를 글로 남겨 자신을 위험에 빠트렸다. 오늘날까지도 행보와 사상에 여러 이견이 오가지만, 허균 같은 사람은 어느 사회에서나 꼭 필요하다.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것, 권력 유지를 위해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을 짚으며 미움받기를 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을 안 하고 사는 게 편하다. 그럼에도 허균은 ‘할 말’을 꺼내며 자신의 삶을 불편한 길로 인도했다. <몬스터 허균>은 조선의 괴물, 허균의 공(功)에 초점을 맞춰 오늘날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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