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는 왜 생기는 걸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금기라고 불리는 것들이 존재한다. 개미나 강아지의 세계에도 인간 사회와 같은 의미의 금기가 있을까. 인간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서로 다른 사상과 신념이 부딪히면서 어떤 주제는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이 되고, 어느새 사회가 건드리지 않으려는 영역으로 남는다. 금기가 생겼다는 것은 그 주제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동원 PD의 <나쁜 질문: 선을 넘어야 비로소 열리는 것들>을 읽으며 목차 ‘금기’에 눈길이 머물렀다.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사형제도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됐지만 현재는 사형 집행이 중단된 상태다.
생명을 빼앗는 형벌을 국가가 집행할 수 있는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생명권을 인정해야 하는가.
사형제도는 정의와 응보, 인권과 국가의 책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이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치밀한 기획이 필요하다. 책에 담긴 기획 의도를 따라가다 보면 교정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사형제도의 현실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눈에 들어온다. 사형수와 매일 마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동시에 사형이라는 제도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P.26‘날카로운 기획을 찾고 있다면, 각자의 분야에서 금기시되어 온 것들을 한번 들여다보길 권한다. 뻔한 편견과 일상적 우려로 갇혀있던 울타리를 넘어서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기획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
금기시되는 내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왜 그 주제가 금기시되었는지, 무엇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한다.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감추면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논의할 기회마저 잃게 된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외면하는 문제를 드러내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주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일이다. 교정 공무원의 직업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장치인 동시에, 사형제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바라보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평소 감춰두었던 생각을 흔드는 질문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물론 자극적인 질문 자체가 좋은 질문은 아니다. 상대를 몰아붙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온 생각을 다시 살펴보고, 말하기 어려웠던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질문해야 한다. 불편함을 피하는 것보다 그 불편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금기 뒤에는 대개 누군가의 상처와 책임이 놓여 있다. 사형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유가족의 고통이 있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국가의 권한이 있으며,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어느 한쪽의 입장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나는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안긴 범죄자에게 주어지는 처우를 생각하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사형을 선고받을 만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교도소의 따뜻한 식사와 생활 공간이 과연 마땅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면 교도관이 수용자들과 매일 생활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정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에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오랜 시간 마주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범죄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삶을 무너뜨린 사람에게 어떤 처벌이 정당한지, 국가가 어디까지 형벌을 집행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토론에서 양쪽이 치열하게 맞서는 이유도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응보와 정의를 강조하는 입장, 생명권과 오판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 모두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금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용기
금기를 건드리는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오랫동안 말하지 않기로 합의한 듯한 주제를 꺼내면 비판과 반발이 뒤따를 수 있다. 기존의 질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비난받거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동원 PD가 보여주는 기획과 끈질김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쉽게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방송으로 만들고, 금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과 다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뿐 아니라 왜 보여줘야 하는지, 어떤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지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기는 덮어둬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열어보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동안 유지해 온 생각이 흔들리거나,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직시해야 할 수도 있다. 금기를 드러내는 일에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따른다. 그렇다고 아무도 상자를 열지 않는다면 무엇이 그 안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문제를 감추는 동안에는 조용할 수 있지만, 조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계속 고통받고 있을 수 있고, 사회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면서도 그 원인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할 수 있다.
열릴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을 던지고, 반발을 견디고, 감춰진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도가 언제나 옳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편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돌아보고,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은 중요하다.
책을 읽으며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좋은 질문은 그저 금기를 깨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왜 이 문제가 금기되었는지 파고들고, 그 뒤에 놓인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책임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때로는 내가 믿어온 생각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많다. 그렇다고 질문을 멈출 이유는 없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덮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치는 과정을 견디며,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친 것을 발견하는 일. 나는 그런 질문과 도전이 쌓일수록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기를 두드리는 사람들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문을 두드렸기에 우리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바라보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때로는 선을 넘는 질문 하나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P.27‘금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금기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며, 그 파편 속에 우리가 찾는 진실의 조각이 박혀 있다.
또, 명심하라. 조금이라도 대충하다간, 금기의 칼날이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하게 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