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서 오트 쿠튀르를, 그중에서도 영국 왕실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한다는 것은 모든 패션 디자이너들의 영광이자 미학적 도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27분간 착용될 영국 공주의 웨딩드레스를 위해 전 세계 수십 명의 장인들이 9,057시간 동안 피땀을 쏟는 것이 얼마든지 괜찮은 일일까. 그 시간 뒤에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 안다면 고개를 바로 끄덕일 수 없다. 연극의 제목인 '라크리마'는 눈물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움 뒤 숨겨진 것들을 다룬다.
가상의 왕실 웨딩드레스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된 파리의 '메종 벨리아나'. 드레스 작업은 셋으로 나뉜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전체 디자인 및 재단의 총괄을, 프랑스 알랑송 공방에서는 여성 장인 6명이 100년 된 레이스 베일을 복원하는 작업을 맡는다. 뭄바이에서는 오직 1명의 장인, 압둘 가니가 드레스 뒷자락의 진주 25만 개를 홀로 수놓게 된다.
연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비디오 화면 연출이다. 마치 OTT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하는 연출은 공연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무대는 영상 연출을 이용해, 세 공간에서의 사건들을 교차해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파리 하우스의 수석 재봉사 마리온이 가장 비중이 크다. 그녀는 과중한 업무 압박 속에서 집안이 무너져가는 비극을 겪는다. 정신질환을 앓는 딸, 그리고 정서적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 남편 사이에서 그녀의 일상은 위태롭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의 시선은 또 다른 인물에게로 향하게 된다. 바로 뭄바이 자수 작업실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을 홀로, 말없이 수행하고 있는 압둘 가니다.
압둘의 침묵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가슴을 울린다. 딸의 음성 메시지에 답하지 못하고 몇 달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면서도 담담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먹먹해진다. 특히 화면에 잡히는 압둘의 손과 얼굴 클로즈업을 보고 있으면 연출된 극이 아닌, 실제 장인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또한 타밀어 사용자였던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화가 프랑스어와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배제된다. 표면적으로는 마리온이 서사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압둘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것은 의도된 연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이 진짜 직시해야 하는 비극은, 언어조차 갖지 못하고 마리온의 고통 뒤에 가려져 있는 압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크리마 속 찬란함의 대가는 천문학적 비용 그 이상이다. 옷을 만드는 장인의 무너져내리는 삶과 가정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파리의 아틀리에 직원들, 알랑송의 레이스 장인들, 뭄바이의 자수 장인(들)은 누군가의 협박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술에 대한 자부심, 역사적 순간에 함께한다는 명예, 오트 쿠튀르의 미학에 진심으로 임한다. 이러한 자부심과 생존의 압박이 뒤엉키면서 노동자는 특정 질서에 저항하기 어려워진다. 이 질서란, 강제력 없이도 피지배층의 동의를 얻어내어 시스템을 유지하는 '헤게모니'의 섬뜩한 작동 방식이다. 특히 이 모든 비극의 꼭대기에 있는 영국 공주는 무대 위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브랜드가 제공하는 '안전 지침'은 위선적이다. 법적 책임을 면제받기 위한 자본주의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현지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규정은 압둘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를 '윤리적으로' 절단해 낸다.
연극 <라크리마>를 보며 가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무리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퍼붓는 공주, 그리고 어떻게든 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디자이너의 난처한 얼굴을 볼 때다.
연출가 캐롤린 기엘라 응우옌은 "모두가 이 공주가 누구인지에 대해 저마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나도 누군가를 떠올리며 감상했는데, 한 번이라도 워커홀릭이 되어보았던 사람은 극중 인물들이 왜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일터에서 마주쳤던 '고객', '성과 지표', '완벽주의'로 끝없이 야근을 이어가고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경험 말이다. 연극은 단순히 노동의 불평등을 넘어서, 노동 자체의 본질을 묻는 데에 이른다.
<라크리마>는 중간에 단 3분간의 휴식만 허용되며 그마저도 관객의 퇴장을 금지하는 3시간짜리 공연이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자리에서 의상을 제작하는 치열함과 압박감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연출 중 하나로 보인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과정이다. 그리고 관객은 극이 끝난 후 제시되는 자막 한 줄에서 깊은 허망함을 마주한다.
"총 9,057시간 동안 완성된 이 드레스를 공주는 단 27분 동안 착용했다."
화려하게 빛나야 할 웨딩드레스가 무대 위에서 그저 덤덤한 옷 한 벌로 남겨져 있는 걸 바라보며 관객은 할 말을 잃는다. 27분이라는 순간의 미학을 위해 바쳐진 타인의 삶은 어떤 것으로도 재단이 어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