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의 도시 스트라스부르에는 파리 외 지역에 자리한 유일한 프랑스 국립극장이 있다. 바로 그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이 제작한 연극 〈라크리마〉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단 이틀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이 진행됐다.
퇴근하자마자 부푼 마음을 안고 부리나케 성남으로 달려갔다. 좌석에 앉자 뒷자리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지난 2023년 겨울, 나도 스트라스부르에 다녀온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기 위해 독일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하는 거리에서 스트라스부르를 느낄 수 있다니. 무척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나라에서 건너온 작품이지만, 그 안에서 마주한 고통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야기는 영국 왕실의 드레스 제작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약혼을 발표한 영국의 공주는 파리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 '메종 벨리아나'에 웨딩드레스를 주문한다. 메종 벨리아나의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 수석 책임자 마리옹은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실제 드레스로 구현하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 알랑송에 위치한 레이스 공방에는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 테레즈가 있다. 인도 뭄바이에 거점을 둔 '메종 샤이나'는 뛰어난 자수 실력으로 알려져 있다. 디렉터 마노즈는 노동환경에 대한 엄격한 요구와 저렴한 가격, 빠른 납기라는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그의 곁에는 자수 장인 압둘이 있다.

무대 곳곳에는 카메라가 존재한다. 촬영된 장면은 무대 정면에 설치된 3분할 화면으로 송출된다. 파리, 알랑송, 뭄바이에 흩어져 있는 제작자들의 화상회의 화면이 되기도 하고, 정교한 바느질을 이어가는 장인들의 손을 비추기도 한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손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루의 어느 순간에도 누군가는 분주히 일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연극에 영화적 맛을 더한다. 연극의 매력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현장성에 있다면, 영화의 매력은 인물의 표정과 눈짓 하나까지 포착하는 정교함에 있다. 〈라크리마〉는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넓은 무대에는 메종 벨리아나의 작업실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고, 스크린에는 인물들의 불안하게 움직이는 눈동자까지 생생하게 담긴다.
그런데 카메라의 역할은 단순히 인물을 가까이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을지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무엇을 감출지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리옹은 책임자로서 영국 왕실 관계자, 디자이너와 화상회의에도 참여한다. 중요한 회의가 한창인 가운데, 카메라 뒤편에서는 마리옹의 딸이 소란을 피운다. 딸이 카메라 앞으로 뛰어들자 마리옹은 급히 동료에게 회의를 넘기고 화면 밖으로 나가 딸을 달랜다. 다른 동료는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카메라 가까이 다가가 화면을 가린다. 회의 상대방은 카메라에 담긴 모습만 보지만, 객석의 관객에게는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훤히 보인다. 마리옹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지, 그가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영화적 연출이 인물의 표정을 정교하게 포착한다면, 무대 연출은 그 표정 뒤에 숨겨진 상황을 드러낸다. 관객은 인물들이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화면과 그 바깥의 현실을 동시에 목격한다. 그렇게 무대는 한 벌의 드레스가 완성되는 과정을 넘어, 그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을 비춘다. 완성된 드레스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연극은 마리옹의 자살 시도로 시작된다. 의사와 통화하던 마리옹이 쓰러지고, 구급대원들이 출동한다. 그리고 시간은 약 8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관객은 마리옹이 어떤 비극에 이르게 될지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 그 지점에 도달했는지 뒤늦게 따라갈 뿐이다.
마리옹은 자신의 일에 사활을 건 사람이다. 꿈만 같았던 왕실의 웨딩드레스 제작은 무거운 책임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완성도는 최고 수준이어야 할 테다. 마리옹은 항상 가장 늦게까지 남아 고민하고, 손목이나 허리가 아파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말하면 의사가 일을 쉬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공예에 몰두하는 장인들을 진찰하는 의사는 무엇이 가장 어렵냐는 질문에 “이제 그만두셔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장인들에게 공예는 그 자체로 삶이다. 목과 등이 굽어도, 눈이 충혈돼도,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집중하는 대상이다.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의사와는 정반대로, 그들 자신의 건강이 어떻게 되든 일단 최고의 작품을 남기는 것이 목표다. 의사는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일을 멈추거나 그만두라고 말해야만 하는 셈이다.
미련할 정도로 진한 이런 진심은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느 직장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잠을 참아가며 공부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 출근도 야근도 싫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연장근무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지난 10월의 긴 연휴를 사람들은 황금처럼 반겼다. 일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연휴가 끝나면 모두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돈을 위해서든, 책임감이나 성취욕 때문이든, 혹은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든. 일이 자신에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만두지는 못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과 스스로 성취를 위해 몰두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이유들이 한 사람의 삶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에게 건강과 일,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선택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일에 대한 열정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스스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때로 노동자를 소모시키는 환경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된다. 몰입을 제한하는 것이 착취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수 있지만, 그 몰입은 정작 당사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일일까.
마리옹의 삶은 일터 밖에서도 위태롭다. 같은 공방에서 일하는 남편은 마리옹이 수석 책임자가 된 이후 질투와 열등감을 드러내고,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남편은 마리옹을 의심하고, 갈등은 결국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딸의 심리적 어려움 역시 마리옹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직업적 책임과 성취욕, 가족관계의 갈등과 폭력, 신체적 통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게 8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연극은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이제 관객은 그가 겪어온 삶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비극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을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끝내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삶의 모순을 끌어안고서
마리옹만이 드레스를 위해 삶의 일부를 내어준 것은 아니다. 뭄바이의 자수 장인 압둘은 모든 과정에서 선택권이 없다. 영국에서 요구해온 근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압둘은 건강검진을 받는데, 그 결과 그의 시신경이 크게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디렉터 마노즈와 영국 관리인의 치열한 논쟁 끝에 압둘은 작업에서 제외된다. 정작 당사자의 의견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알랑송의 레이스 장인 테레즈는 평생 이어온 전통을 지키는 한편, 오랫동안 외면해 온 가족의 고통을 마주하고 침묵을 끊어낸다. 세 사람은 같은 드레스를 만들지만, 각자가 겪는 고통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범위도 다르다.
인터미션도 없이 3시간을 달려온 수개월간의 여정은 영국 공주의 결혼식으로 마무리된다. 이날의 주인공이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된 웨딩드레스의 베일을 착용한 시간은 단 27분이다. 누군가는 건강을 해치고,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잃어가며 만들어낸 결과물. 그토록 많은 시간과 정성이 고작 27분을 위해 쓰였다. 허무한 일이다.
어쩌면 드레스를 붙잡고 있던 장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얼마나 오래 착용될지는 몰랐더라도, 드레스가 아주 잠깐의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마음은 아니었다. 우리도 자신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돌아올지는 언제나 알 수 없다. 해로울 것을 알면서도 몰두하고,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놓지 못한다.
하지만 그 열정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들이 감수한 고통까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인정신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건강과 삶을 희생시키는 노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일을 사랑할 자유만큼이나, 그 일을 어떤 조건에서 계속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에 쏟아부은 시간과 진심까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마리옹의 비극이 그가 일에 품었던 사랑을 지우지는 않고, 압둘이 드레스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기술과 자부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부조리한 환경과 장인 정신, 그리고 완성된 결과물. 어느 하나만으로 드레스를 둘러싼 모든 맥락을 다 표현하거나 평가할 수가 없다. 인생이 더없이 모순적이라는 생각만이 남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