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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침묵하는 자도 암살자가 되는가 [영화]

영화 <암살자(들)>이 묻는 기자의 소명과 진실의 무게

by 강효정 에디터
2026.10.1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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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두고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도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영화를 안 보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객석에는 평소 영화관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중장년층 관객이 많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극장을 찾아오게 만든 작품이라니, 더욱 궁금해졌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바탕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의 이면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영화는 범인을 단정하기보다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발 벗고 나선 기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독립운동가를 떠올리게 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침묵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에, 그들은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진실을 향해 펜을 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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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막바지, 박해일이 연기한 기자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읊는 장면에서 울컥했다. 마치 독립선언서를 읽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진실을 말할 자유를 빼앗으려는 권력 앞에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 장면을 보며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앞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자와 책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단 1초라도 더 버티려 했던 사람들. 눈앞의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국민들의 용기가 생각났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들의 용기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영화 속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구두발에 짓밟히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폭력을 당했다. 누군가는 장애를 얻었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극심한 검열과 감시 속에서도 그들은 펜을 들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에 맞서, 신문에 진실을 담으려 했다.


      ‘미쳐서 기자가 되었다’는 극중 대사처럼 그들은 어쩌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선택하기 어려운 길을 걸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보다 진실을 알리는 일을 우선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자라는 직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언제 독립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진실을 감추려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 언론인의 소명을 다했던 기자들. 시대와 방식은 달랐지만,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눈과 귀가 가려진 사회에서


       

      권력이 진실을 통제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힘없는 국민이다. 눈과 귀가 가려지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할 정보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군가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만 믿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욱 잔인한 것은 거짓 정보를 퍼뜨려 국민끼리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하게 만드는 일이다. 진실을 밝혀야 할 자리에 거짓이 들어서고, 서로를 향해야 할 시선이 서로를 공격하는 데 쓰인다.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리는 일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과 계략 속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비인간적이고 끔찍하다.


      영화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며 과거의 폭력이 지금의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일상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저항 위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걸고 진실을 외쳤고, 누군가는 그 대가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았다. 그 과정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지금 누리는 자유와 안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잊게 될 것이다.


      특히 영화 속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여학생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친구들과 공연을 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을 평범한 학생. 그저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나에게 총부리를 겨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물적 증거는 사라지고 정황만 남을 수도 있다. 사건을 직접 기억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유가족의 고통은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함께 허공을 향해 진실을 묻는 시간을 평생 견뎌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과거의 사건을 정리하는 것만이 아니다. 희생자의 삶을 기억하고 남겨진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제목에 괄호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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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제목은 <암살자(들)>이다. 왜 ‘암살자’가 아니라 ‘암살자들’일까.


      나는 이 제목이 직접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은 사람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감추고 사건을 덮으려는 사람, 부당한 일을 알고도 침묵하는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사람까지 질문의 대상이 된다.


      물론 침묵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폭력과 위협 앞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나 역시 두려움 앞에서 얼마나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권력을 가진 사람과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는 사람의 침묵은 무겁게 바라봐야 한다.


      특히 기자에게 침묵은 어떤 의미일까. 기자는 누군가가 감추려는 사실을 확인하고 권력이 외면하는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다. 물론 모든 기자가 언제나 진실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언론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영화 속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은 단지 신문에 실릴 한 편의 기사가 아니었다. 국민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권력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한 사람의 삶을 짓밟은 사건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묻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오늘의 기자들에게도 돌려주고 싶다.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외면한다면, 권력의 압박에 굴복해 사실을 감춘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은폐와 침묵이 반복될수록 진실은 멀어지고, 그 사이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힘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이 언제나 중립적인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는 침묵은 때로 부당한 현실을 유지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두려움은 잠시, 진실은 영원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 문장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두려움은 잠시, 진실은 영원하다.’


      영화 속 동성일보 벽에 걸려 있던 문구로 기억한다. 정확한 문구와 출처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이 문장이 내게 남긴 울림만큼은 분명하다. 두려움은 당장 눈앞에 닥친 위협이지만 진실을 감추기 위해 벌어진 일과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삶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2026년을 살아가는 지금, 이 영화는 기자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진실을 알리는 일은 단지 직업적 의무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하고, 권력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둘러싼 의문 역시 감정이나 추측만으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의문이 있다면 기록과 증거를 토대로 확인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고,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 검증하며 필요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특정한 결론을 먼저 정해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나는 그 시대에 살았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눈앞에서 누군가가 끌려가고 부당한 폭력이 벌어지고 진실이 감춰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마주했다.


      그렇기에 진실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을 더욱 존경하게 된다. 그들의 용기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기억하고 싶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누군가의 용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실을 전하는 사람,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 외면하지 않고 질문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침묵이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고통 속에 남겨두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영화의 제목에 괄호를 열고 ‘들’을 덧붙인 이유를 생각한다. 암살자는 한 명으로 끝나는가. 진실을 감추고 희생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사람들까지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의 용기를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기억하는 일도 중요하다.


      두려움은 잠시일지 모른다. 그러나 침묵 속에 묻힌 진실과 그 진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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