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모든 길잃은 짐승들을 위하여 - 스트레이 [게임]

치고야 잘 지내지?
글 입력 2024.02.1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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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

 

우리가 그 치즈 고양이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어느 비오는 날 엄마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아파트 쓰레기장에 갔다가 미약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고, 아직 아기인 녀석을 발견했다. 그냥 두고 가기 안쓰러웠던 엄마는 동네 마트에서 파는 고양이용 간식을 사다 주었고, 그 일을 인연으로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은 아침마다 그 고양이의 밥을 챙겨 주며, '치고'라는 이름 아닌 이름을 붙여주었다.

 

간간히 이 '치즈 고양이'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나는 한 게임을 떠올렸다. 바로 <스트레이>다.


<스트레이>는 2022년 7월 블루 트웰브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3인칭 어드벤처 게임이다. 가족을 잃어버린 고양이가 로봇들의 도시를 모험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이버펑크 스타일의 도시를 배경으로 직접 고양이가 되어 여러 퍼즐을 풀고, 로봇들과 우정을 나누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갉아 먹는 벌레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치즈 고양이'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스트레이>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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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치즈 길냥이'에게도 동료가 생겼다


 

<스트레이>는 주인공인 '치즈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 가족들과 함께 뛰어놀며 은신처를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가파른 절벽, 버려진 타워 크레인과 노후화된 공사장을 위험천만하게 넘나든다. 이 모험 과정에서 주인공 '치즈 고양이'는 성기게 연결된 녹슨 파이프를 타고 오르다가 떨어져 무리에서 낙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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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치즈 고양이'는 한 지하도시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길을 잃어버린 B-12 드론을 만난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채워줄 수 있는 존재였다. 드론은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지만 물리적으로 물건을 쥐거나 사용하진 못했고, 치즈 고양이는 드론만큼 똑똑하진 못해도 행동이 재빠르고 앞 발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치즈 고양이는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해, 드론은 자신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이 도시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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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주기 시작한 후 오래 홀로 생활하던 현실 속의 '치고'에게도 새로운 가족이 하나 생겼다. 사람들이 치고에게 준 밥을 훔쳐먹던 아기 고양이다. 


당시 이 아기 고양이는 사람 주먹만큼 작았기 때문에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아도 어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워했다. 아기 고양이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풀 속 벌레를 사냥하거나 나무에 오르거나 돌멩이를 발로 차며 잘 놀았고, '똥꼬 발랄'하다는 뜻의 '랄라'라는 별명이 생겼다. 소심하지만 조심성이 많은 '치고'와 겁이 없고 언제나 밝고 명랑한 '랄라'는 모든 게 여의치 못한 길 생활에도 불구하고 매일 함께 술래잡기도 하고 낮잠도 자며 하루를 보냈다.


 


Chapter 2. 'Stray' 상태에 빠진 세 종족들


 

그러나 '랄라'와 '치고'의 평화로운 나날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두 길고양이 남매는 하루에도 자동차가 수십대씩 지나는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또 하루는 동네에 태풍으로 인한 엄청난 국지성 호우가 쏟아졌다. 살면서 한 번도 태풍을 처음 겪어본 고양이들은 아파트의 화단 한구석에서 서로 껴안고 몸을 떨 수밖에 없었고, 이튿날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듯 더욱 안전한 곳을 찾아나섰다.


몸도 마음도 다친 고양이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고 보살펴 준 것은 근처 상가의 이웃들이었다. 치고는 종종 고양이들에게 닭가슴살을 삶아주던 김밥집 아주머니를 잘 따랐고 아주머니는 가게 앞에 치고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랄라는 김밥집 근처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마음씨 좋은 편의점 아저씨 아주머니가 있어 매일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기 좋았다. 편의점 아저씨는 종종 편의점 비품을 이용해 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이>는 어땠을까. 인간이 없는 세상의 '치즈 고양이'는 어떤 위험을 겪고 누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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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의 배경이 되는 지하도시는 '저크'라는 벌레들이 점령했다. 이 벌레들은 살아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먹어버린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도시에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멸종되어 버렸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 청소 로봇인 '컴패니언'들 만이 오래토록 지키고 있었다.

 

'저크'에 대항하던 중 몇몇 컴패니언들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자신만의 개성으로 몸을 치장했으며, 가족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분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옥도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겠다고 결심한 컴패니언들은 일종의 비밀 결사대인 '아웃 사이더'를 결성한다. 아웃 사이더들은 다른 컴패니언들을 위해 연구를 거듭하여 여러 물자를 개발하고 보급하지만, 도시 경찰인 '센티넬'에 의해 반체제 단체로 낙인 찍혀 대부분이 지명 수배자로 등록되었다.


치즈 고양이와 드론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다름아닌 이 '아웃사이더'들이다. 

 

치즈 고양이와 드론은 도시를 빠져나갈 궁리를 하던 중 '아웃 사이더'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고, 몇몇 아웃사이더들을 만난다. 그들은 치즈 고양이를 '작은 아웃사이더'라고 부르면서 '저크를 사살하는 법', '밖으로 빠져나갈 통로를 찾는 법' 등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다. 심지어 몇몇은 센티넬에 의해 수감될 것을 감수하고 치즈 고양이가 도시를 탈출하는 것을 돕기 까지 한다.


이 지점에서 게임이 <스트레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재미있다. 영단어 stray에는 여러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길을 잃은'이라는 뜻이며, 두 번째는 '탈선한'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길고양이' 또한 이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곤 한다. 결국 <스트레이>의 주축이 되는 세 종족 '치즈 고양이', '드론', '아웃사이더들'은 모두 '스트레이'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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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 '스트레이'들의 여정에는 수많은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앞서 여러 차례 말한 '저크'들은 물론이고, 고양이와 드론이 '아웃사이더'와 손을 잡은 이상 둘은 '센티넬'에 의해 수배되고 이들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상은 비주류인 '아웃사이더'들에게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들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경로인 '지하철'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는 수도 없이 많은 이별을 겪는다. 우선, 주인공 고양이는 저크에 의해 공격받아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센티넬의 드론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거나 레이저 무기에 의해 살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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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제 1의 아웃사이더 컴패니언인 '발렌타인'은 고양이와 드론이 도시의 빈민가를 탈출하여 지하철로 향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자진해서 센티넬의 소굴로 향하고 체포당한다. 클레멘타인을 뒤로 하고 도착한 지하철에서는 '드론'이 자신을 희생하여 지하도로 가는 길을 열고, 도시의 천장을 열어 불을 밝힌다. 강한 빛에 약한 저크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치즈 고양이는 더이상 움직일 수 없이 망가져버린 드론 곁에서 게임이 시작하고 처음으로 긴 잠을 청한다. 창밖으로는 그동안 진짜 하늘을 가리던 돔의 천장이 열리고 따스한 햇살이 도시를 비춘다. 잠에서 깬 치즈 고양이는 별안간 뒤를 흘깃 본 후 터널 밖으로 발걸음을 올린다. 그리고 그 앞은 <스트레이>의 첫 장면에 나온 초록이 다시 한 번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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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예상했겠지만, 우리의 '치고'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다가 목숨을 잃었다. 얼마 후 줄곧 함께 놀던 초등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몇 시간 동안 방치되던 시신은 밥을 주던 편의점 아저씨에 의해 수습되었다. 랄라는 '치고'의 시신이 든 상자 곁을 한참을 지키다가 방황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며칠 후에나 알게 되었다. 엄마는 늘 '똥꼬 발랄' 했던 랄라가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고, 이웃들에게 묻고 물어 답을 들었다. 소식을 알게 된 당일 엄마는 내게 전화 한 통을 남긴 후 동생과 함께 어딘가에서 주워온 이동장을 이용해 랄라를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랄라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것처럼 자기 발로 이동장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치고'는 세상을 떠났지만 랄라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랄라에게 이따금씩 '너도 치고 오빠 기억나?'라고 묻곤 하지만 랄라는 늘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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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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