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또렷이 그려낸 Square [공연]

글 입력 2023.05.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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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포스터를 붙이다


 

순간의 감상이나 기억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흩어지고 또 왜곡되어 버리기 일쑤라는 걸 이제는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중한 것들엔 각자의 방식으로 물성을 부여해주려고 한다. 어떤 것은 글로, 어떤 것은 사진으로, 그 방법은 다양하지만 특히 내 방 벽 한 면에는 이미지화된 기억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좋아하는 영화의 각본집 부록으로 들어있던 엽서, 마음에 들었던 사진전에서 손수 골라서 사온 기념 엽서, 여행을 갔을 때 친구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것. 각기 다른 순간들로 다채롭게 빼곡해진 벽면을 보면 눈으로 기억을 훑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며칠 전 이 소중한 공간에 새로운 포스터 하나를 붙였다.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에 걸쳐 개최되었던 백예린 단독 공연 'Sqaure'를 다녀오면서 사온 MD 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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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 눈과 귀에 모든 것을 담아가보려고 해도 막이 내리고 나면 어딘가 허한 마음이 든다. 그건 어떤 공연을 다녀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남은 한 톨까지 몰입해서 그 순간을 즐겼다가, 공연이 끝나고 기진맥진 한 채로 집에 돌아가면서는 그 모든 것이 꿈결 같다. 그래서 내가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가장 눈길이 잘 닿는 벽면 한 가운데에 이번 공연의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포스터를 붙이는 행위의 연장선이다. 느꼈던 그대로의 순간을 여기 남겨보려 한다.  

 

 

 

I'll be yours for sure!


 

최근 팬데믹으로 몇 년 동안 일상에 제약이 생기면서, 빨리 예전처럼 즐기고픈 것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내가 특히 그리워했던 건 바로 오프라인 공연이었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경험이 빚어내는 생동감은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오프라인 공연이 갖는 특유의 현장감은 어떤 방식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온라인 콘서트 라이브를 보고, 좋은 화질과 음질로 제공되는 영상들을 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건 공연을 관람한다는 행위가 단순히 공연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공연자를 쳐다보는 것으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총체적인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공연을 보러가는 과정이 짧은 여행을 떠나는 일과도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여행 전 짐을 싸듯 공연을 볼 때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분위기에 맞는 옷을 고른다. 여권을 내밀듯 티켓을 내밀고 자리에 착석하면, 몇 시간 동안 나는 일상을 떠나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 된다. 짧은 여정이 끝나는 아쉬움을 안은 채 사람들과 함께 앵콜을 외치고, 막이 내리면 꿈 같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이후에도 열광했던 순간의 기억은 종종 튀어나와 삶의 활력이 되어주곤 한다. 떠나기 전의 설렘과 다녀온 후의 추억을 여행의 일부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모든 연속적인 과정마저 공연의 즐거움에 포함되는 것이라 오프라인 공연이 정말 그리웠다.

 

이번 콘서트가 밀집 제한이 해제 후 처음 보게 된 공연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당연히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 체감하고 나니 마음가짐이 한결 달라진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팬데믹 이후 무려 3년 만의 백예린 단독 공연이었다. 그동안 하나의 정규 앨범과 두 개의 싱글 앨범, 커버곡 앨범까지 여러 신보가 발매되었지만 그에 비해 공연에서 직접 곡들을 접할 기회는 적었던지라 더욱 기대감이 컸다.

 

저녁 8시 공연을 보기 위해 3시 반에 집을 나섰다. 백팩 하나를 메고 서울에 올라와서, 다시 터미널에서 공연장까지. 짧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올림픽공원 역에 곧 도착한다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들을 때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굳이 이 시간에, 이 역에 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나와 같은 대상을 좋아하고 같은 행선지를 가진 사람들이겠지. 일상 속에서 마주쳤다면 그저 스쳐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했을 이 무표정한 사람들이, 나와 같은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보이며 괜한 친근감이 들기 시작했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참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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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설렘과 기대의 공기가 가득찬 역사에서, 조금 걸어나와 공연장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봤던 광경은 아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했다. 콘서트를 위해 설치된 조형물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는데 약간 덥고 습해서 존재감이 묵직하던 공기와 사람들의 웃음이 한데 얽혀 마음 깊이 박혔다. 입장하면서는 응원봉 대신 사용할 흰색 장미 모양의 조화를 한 송이 받았는데, 오는 길에 마주쳤던 장미 덩쿨이 순간 생각났다. 쨍한 햇볕과 하늘 아래 장미가 다발로 피어있던 모습에 놀라 사진을 남겨두기도 했는데, 공연의 기억까지 더해져 나중에 장미가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이 날을 몇 번이고 떠올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미 착석한 사람들 틈에 내 자리를 찾고 앉아, 공연 시작까지의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초를 세는데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 첫 곡이었던 'I'm in love'를 들을 때까지도 약간은 얼떨떨해서 멍해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이름이자 백예린의 대표곡, 또 두 번째 오프닝 곡이기도 했던 'Square'를 들으면서 그 순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환하게 웃으며 양 팔을 활짝 벌리고 "I'll be yours for sure!(내가 너의 것이 되어줄게!)"라는 소절을 부르는 아티스트를 본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내 일상 속에 항상 함께하던 음악을 부른 가수를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일은 언제 겪어도 얼떨떨한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고, 또 그걸 듣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를 성립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하지만 그 당연한 전제를 실감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저 가사는 연인을 위한 사랑스러운 선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겐 '내가 당신을 위해 존재하겠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만은 나는 당신의 것이며 지금 나는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해 노래하려고 이 자리에 섰다'라는 아티스트의 선언처럼 들렸다. 나를 염려하는 가장 멀지만 가장 가까운 존재. 그런 존재와 마음의 실재를 확인하는 건 무엇보다 강력한 위로였다.

 

 

 

Square


 

사실 나에겐 습관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기억이 휘발되는 게 싫어서 무언가를 볼 때마다 중간중간 내용을 복기하고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관람을 하면서도 머리 한 쪽에서는 가열차게 사고 회로를 돌리고 있다보니, 사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고 하기엔 앞뒤가 안 맞는 감이 있다. 고백하자면 이번 콘서트를 보면서도 그런 강박을 완전히 버리진(이게 버려야 할 대상인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못했다. 하지만 이번 기록에서 남기고 싶은 것은 그냥 너무 좋았다, 라는 거대한 감정의 선명함인지라 세트 리스트에 있던 곡들 하나하나에 감상을 덧붙이며 강박적인 정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지 않고서도 공연 내내 직관적으로 느껴지던 바가 있어 덧붙여보려 한다. 그건 바로 공연의 타이틀과 곡 구성, 연출 등 공연의 모든 요소들이 세심한 의도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꽉 맞물려 있으면서 'Square'라는 공연이 가진 여러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공식 공연 소개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Square'에서

확장해 나갈 앞으로의 모습까지.

백예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음을 담았습니다.

 

 

'Square'가 이번 콘서트의 명칭이 된 것은 단지 이 곡이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예린의 곡을 즐겨듣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 곡에 대해 어떤 심경을 밝혔었는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다양한 음악적 세계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한 곡에 지나치게 이목이 집중되고 발매 요청이 빗발치면서 아티스트 본인은 오히려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번 콘서트의 엔딩 멘트에서, 백예린은 'Square'가 한때는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인 적도 있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자신의 발판이었지만 동시에 한계가 되기도 했던 'Square'를 백예린은 정면으로 마주했다. 상자에 갇혀있는 듯한 모습의 무대 장치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타난 아티스트가, 이후 그 상자를 깨고 나와 두 발로 무대를 딛고 관객과 가까운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연주하는 무대 연출은 음악적으로 한 층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이겠다는 백예린의 메세지를 또렷이 담아냈다.

 

세트 리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선보인 적이 없었던 댄스 무대로 2부를 열며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백예린만의 방식으로 가장 신날 수 있는 곡들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관객들이 함께 뛰며 공연의 생동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은 현장을 모두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Square에는 '광장'이라는 뜻도 있다)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가 재즈 버전으로 편곡된 'Square'와 원곡 버전의 'Square(2017)'였던 것이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모습의 'Square'를 오프닝에 배치한 것은 앞으로의 백예린은 이런 변주처럼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는 점을 자신있게 말해주는 듯했다. 동시에 원래의 'Square(2017)'로 공연을 닫으면서, 많은 사랑과 상처를 동시에 가져다 주며 지금의 백예린을 있게 한 곡이 바로 이 곡이라는 것을 기꺼이 긍정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수미상관적인 곡 배치로 백예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내고 있던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한때는 백예린의 음악을 가뒀던 상자이기도 하면서, 또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이들을 한 데 모으는 장이기도 한 Sqaure. 받았던 사랑과 상처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또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아왔음을 그 동안의 작업들을 통해 몸소 보여왔던 백예린이기에, 이번 공연이 그려내는 사각형은 더욱 뚜렷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려낸 사각형은 무엇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이 네모난 기억을 두고두고 돌려보며 즐겁게 그의 새로운 곡들을 기다리는 일 뿐일 터다.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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