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랑스러운 확성기

180일동안 233건의 글을 쓰다
글 입력 2021.11.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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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의 고된 출근이 끝나고 주말에는 늦잠을 자볼까 싶어도 생체 리듬은 '7시 기상'이라는 코딩을 쉬지 않는다. 엎어져 잠을 자기보단 글 한 편이라도 쓰고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나는 신생 뷰티 브랜드의 컨텐츠 업무를 맡은 인턴으로서 평일에는 블로그 글을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업무 특성상 신제품의 특성과 장점을 널리 알리는 일을 맡았다. 그 때문에 '글' 또는 '컨텐츠'에 관한 모든 것이라면 오직 나의 손에 달려있다. 제품 상세페이지 제작부터 카카오톡 메세지 알림톡, 인스타그램 운영, 블로그 운영까지 모두 내 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내 업무는 끝이다.

 

적게는 하루 1건, 많게는 하루 4건까지 매일 블로그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에 4개씩 블로그 글을 찍어내려면 이미 내 손은 기계가 되어있어야 한다. 하루에 쓰는 글의 양이 고등학교 때 쓴 자소서 분량을 능가할 정도가 되면,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자리에 앉는 순간 이미 세팅된 시나리오(예컨대 전체 미팅때 팀원들과 주고 받은 이야기들)를 블로그 글에 와다다다 붓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대표님이 하시는 말씀, 팀원들의 사소한 아이디어, 경험담을 실시간으로 받아 적기에 나는 그걸 여과없이 브랜드 블로그에 드러낸다. 가끔은 내가 쓰는 글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를 때도 종종 있다. 어제는 환경이야기를 썼다가 오늘은 브랜드의 이야기를 하고, 내일은 화장품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워낙 '다작'을 요구받는 업무이다 보니. 일단 글을 '쓰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메세지를 알리기 위해서, 최대한 우리의 스토리와 진정성을 가감없이 내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냥 끄적이는 일기 형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담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탑승한 마냥 글을 '찍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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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화장품과 뷰티에 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하루하루 블로그 1개 쓰는 것도 고역이었다. 전공과도 도무지 연관성이 전혀 없는 뷰티 분야에서 매일 블로그를 쓴다? 휴학생인 나로선 휴학과 동시에 전과를 하는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보고 듣는 화장품 전성분의 이름, 약자, 특징들을 매일마다 공부하고 그걸 블로그 글로 보기좋게 담았다. 흩어져있는 정보들을 모으고 조합하여 한 편의 글로 완성하면 무언가 전문가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뷰티의 ㅂ자도 모르는 쌩초보 중의 초보였기에, 전문가가 된듯한 착각은 포스팅을 하면 할수록 와장창 깨졌다.

 

매일마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읽고 배워도 도무지 '마음'으로 소화가 안 되는 기분에 답답함만 가득했다. '진짜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휴학을 하고 나서 하는 일이 매일 블로그 쓰기라니. 내가 원한 나의 모습이 블로그 기계였던가?'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들로 인해 N사의 블로그 로고만 봐도 내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어차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블로그 창에 들어가 기계처럼 글을 쓰는 삶을 살텐데. 과연 여기서 새로움과 재미를 찾아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한번만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의 일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반복적인 노동에 고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각자만의 루틴 속에서 일의 무게를 감당해야하는 고충과 어려움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저 블로그 글을 많이 써서 힘든 것이 아니라, '왜 Why'라는 의미를 찾지 못해서 나의 일에 싫증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를 블로그를 쓰는 '기계'로 폄하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물론 지금은 맨 땅에 헤딩 수준으로 세상에 우리의 이야기를 퍼나르고 있는 인턴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신생 브랜드를 이 세계에 최초로 알리는 '확성기'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블로그를 성실히 쓰지 않았다면 우리 회사에 들어온 신입 인턴 동료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브랜드의 공식 사이트보다도 먼저, 내가 올린 블로그 글을 보고 우리 브랜드를 알게 됐으니까. 만약 내가 쓴 글이 없었다면 우리 브랜드의 가치와 목표를 증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성과 스토리를 담은 글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흔한 뷰티 브랜드로 남았을 테니까.

 

브랜드를 알리고 소개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 나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였다. 글을 쓰는 것이 쉬워지기 시작했다. 무거웠던 손은 가벼워지고, 타이핑을 치는 손의 리듬은 경쾌해졌다. 블로그 글에 댓글이 달리지 않아도, 공감수가 적어도 상관없어졌다. 어차피 결국 나의 글은 영원히 이 온라인 세계에 남을 것이고, 내가 남긴 열정과 성실의 흔적은 오래토록 나라는 사람, 우리 브랜드의 뜨거움을 증명해줄테니까.

 

'아, 나 글쓰기 좋아하는 애였지.' 블로그 글을 힘들지만 오래, 많이 쓸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애초에 180일밖에 안 되는 기간동안 블로그를 233건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흔한 일인가. 물론 건수를 채울 수는 있어도 광고나 마케팅 없이 하루 200명의 사람이 방문할 정도의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이 일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분야의 세계에 입문했고, 지금은 언제든 누가 찾아와도 자신있게 우리 브랜드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 머물러있던 좁은 세상을 뚫고 다른 세계로 여행을 하게 해 준 것이 바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였다. 일의 의미를 찾고 나라는 사람의 역할을 찾으니, 나는 어느덧 그냥 블로그 기계가 아닌 자랑스러운 확성기가 되어있었다.

 

한 분야에 오래 몸담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정보와 지식들을 수집하고, 끊임없이 이를 '의미화' 해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턴으로서 공부한 많은 지식들, 써나간 수많은 글들은 단순히 브랜드 론칭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삶 전반의 기초를 닦는 '주춧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고 느낀 것을 머리에 한 순간도 고이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 세계와 공유하고 나누는 일이란 얼마나 값지고 빛나는 일인지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도 글을 써나가는 자랑스러운 확성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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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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