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착했던 놈, 나빴던 놈, 이상한 놈 [영화]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글 입력 2018.10.21 06: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혁신적인 또라이다!"부터 시작해서 "형, 나 경찰이야."까지, 수많은 짤방과 명대사를 남겼다. 설경구의 놀라운 변신과 임시완의 재발견을 대대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심지어 뒤늦게 빠진 관객에게는 '불한당 후회공(어떠한 것의 좋은 점을 뒤늦게 깨달아,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람)'이라는 별칭까지 붙는, '불한당원'이라는 막대한 팬덤을 구축한 영화이기도 하다. 바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movie_image (13).jpg
 


착했던 놈, 조현수 "형, 아직도 나 의심하는 거예요?"


<신세계>에서 극대화된 누아르 장르의 재미는 '조직의 배신자가 누구인가'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서사를 끌고 가는 긴장감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이 바로, 조직의 수장이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신세계>에서는 이자성(이정재)이 정 청(황정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머리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관객을 극도로 긴장하게 함과 동시에 <신세계>를 결말로 치닫게 하는 주요한 플롯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불한당>은 좀 다르다. 영화가 중반에 다다르기도 전에 관객은 조현수(임시완)가 경찰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초반에 경찰임을 명시하는 천 팀장(전혜진)과 대척되는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한재호(설경구) 조직에 심어놓은 첩자였던 것이다. '깡다구 있는 활약'으로 감옥에서 한재호의 시선을 끌게 된 조현수는, 그의 신뢰를 얻어 조직에 발을 들이는 데 성공하고, 천 팀장의 주문대로 조직을 옭아매기 위한 덫으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movie_image (1).jpg


<불한당>은 감옥에 있는 한재호와 조현수의 과거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경찰의 수사를 피하고 한재호의 윗대가리(?)인 고병철 회장(이경영)을 고꾸라뜨리는 현재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순차적인 흐름이 아니므로 다소 정신 사나울 수 있지만, 관객이 서사를 따라가기에는무리가 없다. 헷갈리지 않도록 감독이 장면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티가 난다.

초반부에 <불한당>이 인생작이라는 예감을 받고, 더더욱 몰입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러한 구성이 무척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적 서사 구조는 순차적인 서사 구조보다 지루함이 적고, 두 사람의 관계에 몰입하고 싶은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조현수가 경찰이며 한재호를 배신하기 위해 감옥에 '취직'했다는 설정은, <불한당> 서사 중 초중반에 해당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멘탈이 완전히 갈린 조현수가 자신을 위로하는 한재호에게 마음을 열어버리기 때문이다. 한재호는 자기 어머니의 부재를 말하면서, '사람보다 상황을 믿으라'는 충고를 한다. 조현수는 그를 속인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 유명한 명대사 "형, 나 경찰이야."를 내뱉고, 본격적인 중후반 전개가 시작된다.


movie_image (3).jpg


조현수는 경찰과 한재호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해낸다. 그러나 천 팀장이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고 믿는 그는, 한재호에게 인생을 배팅하는 수준의 믿음을 보여주는데, 이때 등장하는 씬이 경찰의 납치 씬이다. 천 팀장 일행은 번번이 무산되는 마약 조직(한재호 조직) 사건 때문에 조현수를 의심하고, 일언반구 없이 그를 납치하여 협박하는 듯한(너를 불로 태워버리겠다) 모션을 취한다. 거기서 조현수는 경찰들이 허탈해할 정도로 끝까지 오리발을 내민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현수는 한재호를 완벽하게 믿은 것이다.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일명 '입학'과 '취직')을 결심한 조현수는, 예상치 못한 당신의 죽음에 완전히 평정을 잃는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미는 한재호에게 '감겨버린' 조현수는 누가 봐도 착한 놈이었다.

한재호가 어머니를 죽이라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혹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면, 조현수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그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현수는 한재호가 자신을 회유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이는 수를 썼음을 알게 되었고, 그는 한재호를 믿으면서 점차 나쁜 놈으로 각성하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한재호든 천 팀장이든 전부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누아르 주인공답게, <불한당>은 조현수가 원하는 대로 결말을 맺는다.



나빴던 놈, 한재호 "내가 뭐에 씌였었나 보다."


한재호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었던' 놈이었다. 싸움과 공갈, 협박에 유달리 특출 난 재능을 보였으니,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마약 조직의 이사 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행운이 아니라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인생을 살았던 한재호가 '사람보다 상황을 믿는' 나쁜 놈이라는 건, 그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숙명이었다.

조현수는 그런 한재호가 만난 두 번째 길의 인간화였다. 그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였고, 한재호는 고병갑(김희원)에 의해 조현수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그를 죽이는 대신 '감는다'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movie_image (5).jpg


나쁜 놈들 천지인 감옥에서, 그리고 어쩌면 감옥 같은 인생을 살았던 한재호에게 착한 놈 조현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어머니 얘기만 하면 멀겋게 웃는(여기에는 임시완의 마스크가 아주 큰 개연성을 띠었다) 조현수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쁜 놈이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놈을 볼 때 느껴지는 묘한 죄책감처럼.

싸대기 대회, 담배 밀입, 그리고 감옥에서의 대선(일명 '짱' 자리를 차지하는 일)을 혁신적으로 도왔던 조현수에게 한재호는 홀리고 만다. 이 착한 놈을 잘 쓰면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던 걸 수도 있다. 이는 관객으로서 나름의 추측이지만(사실 감독의 오피셜한 선언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재호는 조현수를 짝사랑하듯 '감았다'.

영화 내내 한재호의 시선은 조현수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스크린 밖으로 조현수가 빠져나가도, 한재호의 시선은 계속 그의 뒤를 쫓는다(이게 짝사랑이 아니면 뭐냔 말이다). 앞서 말했던 그 죄책감이 사랑의 얼굴을 할 때도 있고, 의리의 얼굴을 할 때도 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진정으로 죄책감의 얼굴을 한다.
 
"자기는 멍도 예쁘게 드네."라는 말에서 시작한 한재호의 얼굴은 "내가 뭐에 씌였었나 보다."라고, 상황 대신 사람을 믿어버린 실수에 대한 후회로 끝을 맺는다. "너는 나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 한재호는 결국 나쁜 놈이 되어버린 조현수에게 목숨을 잃는다.

조현수는 천 팀장을 깔끔하게 일곱 발로 쏴 죽이면서, 한재호는 직접 목을 졸라 죽이는데, 그때 어머니가 죽은 다음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린다. 이게 임시완 배우가 의도하지 않은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각 캐릭터에 얼마나 깊게 몰입을 했는지 알 수 있었던 장면.


movie_image (6).jpg


관객이 두 사람의 결말을 어렴풋이 예감할 때, 고병갑과 함께 세 사람이 바닷가에 가서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현수는 아직 한재호의 살해 사주를 몰랐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살고 싶었느냐' 묻는다. 한재호는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이렇게 사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조현수는 별 의미 없는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웃고 말지만, 그게 더 이상 상황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믿어버린 한재호를 암시한 대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사실 이런 놈이라 그래.'를 에둘러 말한 것처럼, 조현수에게 대놓고 사실을 고백할 용기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알아달라는 무의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둘을 지켜보는 관객은 끔찍한 '찌통'을 예감하게 된다.



이상한 놈, 고병갑 "난 생선 안 먹어. 생선은 죽어서도 눈 뜨고 있잖아."


영화는 고병갑과 정승필(김성오)의 대화로 시작한다. 사람 죽이는 누아르래서 영화를 봤더니, 영 쌩뚱맞은 생선 얘기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고병갑이 생선 회에는 손도 대지 않으면서, 자기는 미안해서 생선을 못 먹겠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정승필이 미친 놈 보듯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불쑥 다가온 한 외국인이 그를 쏴 죽인다. 고병갑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면서 생선 눈을 깻잎으로 가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무언가를 죽이는 데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작하는 누아르다.


movie_image (11).jpg
 

고병갑은 특이한 캐릭터다. 생선에 비유해서 개중에는 유약한 성정의 조폭이라는 말을 하지 않나, 갓 들어온 신입 조현수에게 쪽팔림을 당했다고 차 안에서 혼자 엉엉 울지 않나. '간지'와 '멋'이 최고인 누아르에서는 없어 보이게 나대다가 죽기 십상인 캐릭터다. 그런데 그는 오래 간다. 무려 후반까지 살아 있다!

그는 한재호에게 조현수의 정체를 알아다 주고, '경찰을 어떻게 감느냐'고 한탄하듯 묻지만, 한재호의 선택을 믿는다. 심지어 한재호의 반란을 위해 삼촌인 고병철의 살인을 돕기까지 한다. 그에게 있어 한재호란 따르고 싶은 인생의 롤모델과 비슷한 존재였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나도 좀 봐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짝사랑 상대였던 것 같기도 하다(이 역시 감독 피셜로는, 고병갑이 한재호를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고병갑은 이상한 놈이다. 야망도 있지만, 요상하게도 야망을 넘어 인류애를 바라는 놈인 것처럼 보인다. 한재호와 조현수의 관계를 질투하지만, 그렇다고 조현수를 제거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한재호가 잘 되기를,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자신도 잘 되기를 바라는 해바라기다. 어쩌면 이 중에서 제일 순수하고 착한 놈인 듯.

그러나 고병갑 개인의 입장에서,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다. 고병갑을 귀엽다고 여겼던 관객들에게도 충격적인 결말이었을 것이다. 한재호는 자신과 조현수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꺼내든 사람(조현수의 어머니를 죽이라고 사주한 것을 조현수에게 알려준 사람)이 누구일까 찾던 중에, 그게 두 사람의 전말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고병갑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실제로는 천 팀장이다. 그녀는 영화 중반에 이미 범인을 알고 있었다. 다만 조현수의 멘탈이 무너질까 뒤늦게 알린 듯싶다).


movie_image (12).jpg
 

결국 고병갑은 '너 지금 뭔가에 씌인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한재호의 명패(그 명패 맞다. 이름 적힌 검은색 각목 같은 것)에 의해 두개골이 뭉개지며 즉사한다. 총으로 쏴 죽이는 것보다 더럽고 비참하고 끔찍한 살인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죽고 나서, 한재호는 자신이 상황을 믿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람을 믿었음을 깨닫는다. 조현수에 대한 신뢰감, 그리고 그를 잃을 수 없다는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것 같다. 고병갑이 죽고, 조현수에게 천 팀장이 본격적으로 한재호에 대한 복수를 권유하기 시작하면서(그의 조직뿐만 아니라 한재호를 잡아 넣자는 게 그녀의 임무다) 한재호와 조현수는 완벽히 파국으로 치닫는다. 흔히들 모든 누와르 장르의 영화가 그랬듯이.



누아르 로맨스의 지평을 연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수많은 불한당원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열광했던 이유는 남성 간의 의리와 액션을 강조하는, 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누아르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것, 그 해석이 로맨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조현수와 한재호의 관계성을 포함한 주조연들의 케미가 끝없이 파내진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중간중간에 강조되는 푸르고 벌겋고 노란 색감을 촌스럽지 않게 잘 사용했고, 설경구와 임시완의 시각적 외양을 패션과 함께 잘 살려냈다. 한재호로 시작해서 조현수로 끝나는 수미상관의 오프닝/클로징 시퀀스도 좋았다. 사실 이 영화를 '덕질하고 싶은 마음이 든' 사람이면, 아마 러닝타임의 모든 1분 1초를 분석하는 게 아깝지 않을 것이다.


[권령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