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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아, 저희도 함께하는 거예요? [공연/방탈출]

기꺼이 믿고 싶게 만드는 환상, 이머시브 방탈출의 방향에 대해.

by 장은선 에디터
2026.10.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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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 이머시브 방탈출 내부 연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검열하려 노력했으나, 테마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열람에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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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탈출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돈을 주고 일정 시간 동안 밀폐된 공간에 갇혀 문제를 풀고 자물쇠를 열어내는 일. 누군가에게는 머리를 쓰는 제법 흥미로운 유희로, 또 누군가에겐 돈까지 내고 갇혀 있어야 하는 영 이해 못할 취미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방탈출이라는 이름이 주는 인상은 꽤 직관적이다. 방에 갇히고, 탈출한다. 그게 전부다. 적어도 이름만 놓고 본다면.


      그러나 오늘날의 방탈출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기상천외한 문제와 정교하게 짜인 서샤,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장치와 연출이 어우러져 이제는 하나의 독립된 작품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테마들은 저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나아가 그 세계관을 사랑하는 팬덤까지 거느린다. 이쯤 되면 방탈출이라는 이름은 조금 억울할 지경이다. 정작 탈출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방을 빠져나오기 위해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공들여 빚어진 가상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들여, 주어진 시간 동안 그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 중에서도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방탈출, 바로 ‘이머시브(Immersive)’장르이다. 몰입을 뜻하는 이름 그대로, 소비자가 작품의 세계에 직접 발을 들이고, 그 일부가 되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방식이다. 물론 기존의 방탈출도 참가자가 이야기 속 인물이 된다는 점에선 이머시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다만, 이머시브 방탈출에는 조금 특별한 존재가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사람’인데, 단순히 입 퇴장을 돕는 직원이 아니라, 작품 속 인물로서 우리와 말을 주고 받고 행동하며 때로는 이야기의 방향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배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분명 방탈출을 하러 왔는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건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하고, 그의 이야기 속 등장 인물이 되어서 그가 내민 손을 잡거나 그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그에게 배신당하기도 한다. 그 순간의 나는 더는 문제를 푸는 참가자가 아니다. 나 또한 한 명의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탈출인가. 혹은 연극인가.

       

       

       

      태초에 공포 테마가 있었다


       

      방탈출에 입문한 지 아주 오래된 사람은 아닌지라 그 역사를 처음부터 지켜보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 태초에 ‘직원 연출’이라는 것이 등장한 까닭은 공포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직원 연출이란 테마 내부에서 장치가 아닌 사람이 직접 등장하여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대사를 치는 등, 말 그대로 사람의 몸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연출들을 뜻하는 말로, 지금도 직원 연출은 공포 테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아무래도 사물이 주는 공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살인마가 쫓아온다든지,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와 간담을 서늘히 만든다든지 하는 일은 실제 사람이 등장할 때 한층 실감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꼭 소리를 지르고 쫓아오기만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처음에는 주로 행동 위주 연출에 의존하던 것이 점차 그 범위를 넓혀, 간단한 대사를 주고 받거나 참가자의 행동에 반응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정해진 순간에 나타나 놀래키는 것만을 넘어,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직원 연출은 더 이상 움직이는 공포 장치에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머시브 장르의 테마들 역시 대부분이 공포를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꼽자면, 아무래도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홍대의 ‘이머시브 스튜디오’를 빼놓을 수 없겠다. 이곳의 대표적인 테마로는 ‘당신 없이는’과 신테마인 ‘블랙 뮤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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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없이는’은 중국의 원작을 가져와 각색한 작품으로, 태국의 한인 마을에 초대받은 여덟 명의 사람이 되어 플레이하는 테마다. 이 테마의 가장 큰 특징은, 8인의 플레이어 모두에게 각자 고유한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 무작위로 배정받은 롤에 따라 각자가 마주하는 사건과 경험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인물의 이야기를 경험해보기 위해 여러 번 방문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마치 연극, 뮤지컬 문화의 n차 관람객들을 뜻하는 회전문 관객 같은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스토리에 대해 논하자면, 한마디로 어느 한인 가족에게 찾아온 하나의 커다란 비극이라 말할 수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에는 명백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비극이 있을 뿐, 오직 누군가를 해치겠다는 악의만으로 움직이는 인물은 없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서움 뿐만 아니라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특히 실제 연극을 방불케 하는 조명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인상적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저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직접 들어가는 감각. 말 그대로 코앞에서 펼쳐지는, 내가 그 일부가 되는 연극이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공포도 자체만으로도 악명이 자자한 테마이지만, 이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단연 공포 때문만은 아니라고 장담한다. 사람들은 무서움보다도 더 오래 남을 무언가를 안고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공포 밖으로 걸어 나온 배우들


       

      물론 여전히 직원 연출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장르는 공포와 스릴러이다. 다만, 이제는 직원 연출이 비단 공포에만 국한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꼽자면,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매장인 ‘메모리 컴퍼니’가 있겠다. 강남에 위치한 메모리 컴퍼니 매장은 동명의 가상 기업을 배경으로 한 세 개의 테마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직원의 역할이 유독 크게 작용하는데, 그것이 곧 테마를 즐기는 주요한 재미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방탈출이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래도 경험이라 답하고 싶다. 정해진 시간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때론 현실에는 없는 장소에 들어가 보고, 내 삶엔 좀처럼 일어날 리 없는 사건에 휘말려 보는 일. 우리는 어쩌면 그런 경험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메모리 컴퍼니에서 직원들과 주고받는 대화와 행동은 그 경험을 한층 특별하게 만든다. 눈 앞의 연출자인 직원과 농담을 주고 받고 능청스런 연기를 하며 티키타카하는 순간, 이곳은 단순히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공간이 아니게 된다.


      공포가 아닌 이머시브 테마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아무래도 홍대에 위치한 레다스퀘어 매장의 ‘아득히 바라던 타오름에 대하여’(통칭 ‘아바타’)가 있겠다. 공포 이머시브가 판치는 세상에서, 드라마 장르로 전문 배우를 기용한 아주 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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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심부름센터의 일원이 되어 누군가의 의뢰를 돕기 위해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테마는, 배우를 활용한 여러 가지 기발한 연출을 선보인다. 연출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니 지나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말을 아껴야겠지만, 배우의 즉각적인 감정 표현과 연기력이 특히나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일행들과 서로의 진땀 빼는 모습을 구경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코믹한 요소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게 웃고 떠들며 배우와 말을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뜻밖의 위로나 감동을 얻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눈 앞의 직원이 실제로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그 심부름 센터가 현실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꺼이 속아 넘어간다. 아니, 어쩌면 속아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그 세계가 진짜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방탈출인가, 연극인가?


       

      이머시브 방탈출은 방탈출계에선 일종의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이것을 기존 방탈출의 연장선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연극에 가까운 아예 새로운 장르로 분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 양측의 의견이 쟁쟁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보자면야 방탈출에 가까운 것도 같다. 무대가 아닌, 기존 방탈출 테마처럼 정교하게 꾸며진 밀폐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 참가자들이 직접 공간을 누비며 사건에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간단하게나마 문제와 퍼즐을 풀기도 한다는 것. 분명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탈출의 형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방향에서 들어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소비자의 입장을 살펴 보자. 이머시브 방탈출의 가격은 적게는 인당 5만원대에서 많게는 10만원 가까이로 올라간다. 일반적인 방탈출과 비교하자면 제법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것을 일종의 프라이빗 연극이라 생각하면? 충분하다 못해 조금은 저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엔 생산자인 제작자의 입장에서 한 번 살펴 보겠다. 기존 방탈출처럼 단순히 운영을 담당할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문 배우나 그에 준하는 연기 전공자를 기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연히 공연 예술과 유사한 인건비가 발생하고, 여기에 공간 조성 및 연출 장치 유지 비용이 더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 의문이 생긴다. 애초에 연극이란 꼭 무대 위에 있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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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립 노 모어’라는 공연이 있다. 유명하기에 아마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가 제작한 작품으로, 호텔처럼 꾸며진 공간을 관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객석이나, 무대는 없다. 관객은 자의적으로 원하는 배우나 특정 공간을 취사선택한다. 같은 공연을 관람하고도 각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해온 연극의 형태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엄연히 연극이라 불리운다.


      영국의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은 저서 <빈 공간>에서 연극을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조건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누군가가 가로질러 걷고, 또 다른 누군가 지켜보는 상황만으로도 연극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러니 반드시 연극이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나 가지런한 객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머시브 방탈출에서는 연극을 둘러싼 세 가지 경계가 흐려진다.


      먼저 공간의 해체, 무대와 객석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배우가 연기하는 곳과 참가자가 발을 딛고 선 곳 모두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다음은 관객의 해체. 참가자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배우를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대본의 해체가 일어난다. 물론 이머시브 방탈출에도 정해진 흐름과 그를 위한 대본은 존재한다. 그러나 참가자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그 누구도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배우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반응에 대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같은 작품이라도 매번 조금씩 다른 장면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이머시브 방탈출을 방탈출과 연극 중 무언가로 구분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방탈출이라는 형식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하나, 연극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그 과정에서 두 장르 모두의 익숙한 틀을 조금씩 허물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둘 중 하나로의 규정을 하는 일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경계가 흐려지는 만큼, 결국 우리가 경험 가능한 세계의 폭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메시지에 열광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머시브 방탈출은 방탈출과 연극,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진 못하는 회색의 장르이기는 하나, 어쨌든 우리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해준단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단순히 어떤 일을 겪고 마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테마가 끝나고, 제한 시간이 종료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그 안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곱씹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넘어,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어떤 메시지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그 메시지가 눈 앞에 존재하는 사람을 통해 전달될 때, 그것이 갖는 힘은 더욱 커진다.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그 에너지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대사 그 이상의 감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방탈출을 하러 왔다가 연극을 보고, 연극을 보러 갔다가 어느새 그 일부가 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는 배우와 관객이 어우러진 하나의 경험이 남는다. 그리고 그 경험은, 때로 완벽하게 잘 짜인 어떤 대본보다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아, 저희도 함께하는 거예요?

       

      그렇다. 이번에도 우리는 함께다.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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