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산 지 1년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날의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노을이 지는 길, 어디선가 번지던 금목서 향기, 그리고 낡은 목조 아파트의 현관에 열쇠를 꽂아 문을 열던 순간. 그때 나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일본어도 유창하지 않은 이방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돌아왔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스물 갓 넘은 나는 불안했고, 모든 게 서툴렀다. 낯선 땅도 몸이 먼저 익숙해지면 마음에 향수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마녀배달부 키키>를 다시 보면, 열세 살 소녀의 첫 방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낯선 도시에 홀로 떨어진 이 소녀는 어떻게 그곳을 자기만의 방으로 만들었을까.
고향의 방을 떠나 빵집 위 다락으로

© Studio Ghibli
키키는 마녀 수련을 떠나기 전,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아늑하고 예쁜 방을 가지고 있었다. 꽃무늬 벽지와 분홍색 커튼,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오랜 시간이 쌓여 익숙해진 방이다.
나 역시 엄마의 품 속 한국을 떠나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였을 때, 모든 것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가족, 친구, 말이 통하는 환경. 지팡이 하나를 쥐고 낯선 도시에 도착한 키키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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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키키가 얻은 방은 고향의 방과 정반대다. 빵집 위, 먼지가 가득 쌓인 작은 다락이다. 빵집 주인 오소노가 선뜻 내어준 이곳은 아래층이 일터이고 위층이 살림집인, 가게와 집이 한 건물에 붙은 구조다. 키키는 방만 얻은 게 아니라 배달 일을 시작할 자리도 함께 얻는다. 일과 삶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혼자이면서도 완전히 혼자는 아닌, 처음 독립하는 사람에게 꽤 좋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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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방을 쓸고 닦는 것이다. 아빠에게 받은 라디오를 켜 두고, 먼지 가득했던 바닥을 무릎을 꿇고 문지른다.
방이 내 것이 되는 순간

© Studio Ghibli
이제 키키는 혼자 살림을 꾸려야 한다. 장을 보며 프라이팬을 고르는 장면은 처음 독립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기억을 건드린다. 어떤 팬이 좋을지 이리저리 살피던 그 시간 말이다.
혼자 독립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사를 하고 정리를 한 뒤, 자장면을 시켜 먹든 라면을 끓여 먹든 일단 식사를 하고 나면, 그 공간은 나만의 공간으로 익숙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키키 역시 그랬다.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고, 지지를 닮은 머그컵을 두고, 침대 옆 작은 탁자의 유리병에 꽃 한 송이를 꽂아 두면서 방은 서서히 키키의 것이 되어 간다. 작은 창을 열면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풍요롭지 않아도 소박하고 아늑한 방이다.
쓸고, 먹고, 하나씩 물건을 두는 사소한 반복이 낯선 방을 내 방으로 바꾼다. 나는 낡은 목조 아파트에서 그걸 배웠다. 처음엔 남의 집 같던 곳이 어느 날 열쇠를 돌리는 순간 집이 되어 있었다.
방 안에서는 풀리지 않던 것

© Studio Ghibli
하지만 방이 생겼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영화 후반, 키키는 갑자기 하늘을 나는 힘을 잃는다. 또래의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위축되던 마음이 쌓인 끝에 찾아온 슬럼프다. 키키는 낙담한 채 시간을 보내지만 힘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실마리를 건넨 곳은 방 바깥에 있었다. 숲속 통나무 오두막에 사는 화가 우르술라다. 우르술라는 키키의 상태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화가의 슬럼프에 빗대며, 다시 날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해 준다.
방이 생겼다고 해서 마음까지 자리를 잡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장면은 담담하게 보여 준다. 빵집 위 다락은 키키가 지친 몸을 눕히고 돌아오는 곳이었지만,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그 방 바깥의 다른 사람의 공간이었다. 오소노가 방을 내어주고 우르술라가 문을 열어 준 것처럼, 키키의 독립은 혼자 이룬 게 아니었다. 혼자 사는 방이었지만, 혼자 버틴 방은 아니었다.
가끔 침울해지기도 하지만, 저는 잘 지내요.

© Studio Ghibli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키키는 부모님께 이렇게 편지를 쓴다.
おちこんだりもしたけれど、私はげんきです。
가끔 침울해지기도 하지만, 저는 잘 지내요.
이 문장은 영화 포스터에도 적혀 있다. 침울한 날에도 돌아와 불을 켜고 누울 방이 있어서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려서, 나는 이 말이 오래 남는다.
혼자 상경해 독립한 수많은 일본의 여성들은 <마녀배달부 키키>를 떠올리며 자기를 지켰다고 한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여성들이 이 영화에 마음을 내어 주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낯선 땅에 홀로 고군분투했던 그때의 나에게 잘했다고 머리를 톡톡 두들겨 주고 싶다. 물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이런 칭찬을 들어도 귀를 후비며 심드렁해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