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개츠비의 저택이다. 첨탑이 솟은 성, 환하게 물을 뿜는 분수, 창마다 켜진 불빛. 분명 화려한데 이상하게 편안하지가 않았다. 눈앞의 풍경은 근사한데 왜 자꾸 위화감이 드는 걸까.
그 불편함의 정체를 따라가 보니, 집이 아닌 집주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드머니 vs 뉴머니
영화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채의 저택이 나온다. 하나는 톰과 데이지 부부의 뷰캐넌 저택, 다른 하나는 개츠비의 저택이다. 원작에서 두 집이 서 있는 동네는 흔히 오래된 부자의 땅 이스트 에그, 갓 부자가 된 사람들의 땅 웨스트 에그로 읽힌다. 그런데 두 집은 놀랄 만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U.S, Canada, Bahamas & Bermuda
뷰캐넌 저택은 클래식하다. 붉은 벽돌 벽에 흰 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현관 위에는 삼각형 지붕 장식이 얹혀 있다. 창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놓였고 입구는 정중앙, 좌우는 거울처럼 균형을 이룬다. 대칭과 균형이 특징인 조지안 양식으로, 원작 소설에서도 이 집을 조지안 양식으로 그린다. 화려해서 눈에 띄는 집이 아니라 오래 거기 있어서 자연스러운 집이다.

©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U.S, Canada, Bahamas & Bermuda
개츠비의 저택은 정반대다. 원작 소설에서 이 집은 노르망디의 시청사를 그대로 본뜬 모조품으로 나온다. 막 지은 새 건물에 덜 자란 담쟁이가 수염처럼 돋아 있다는 묘사도 있다. 영화는 여기에 높은 첨탑과 분수를 더해 동화 속 성을 만들었다. 밤마다 창이란 창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춤을 춘다. 닉의 말처럼 마치 테마파크 같다.
열등감이 만들어낸 과잉

©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U.S, Canada, Bahamas & Bermuda
집 안으로 들어가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뷰캐넌 저택의 거실에는 크림색 소파와 금장 테이블, 붉은 무늬 카펫이 어우러져 있다. 영화의 미술을 맡은 캐서린 마틴은 이 집을 여러 시대의 가구를 섞어 대대로 물려받은 집처럼 보이게 꾸몄다고 한다. 새것만 모은 방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채워진 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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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개츠비의 홀은 어떨까. 곡선을 그리며 오르는 계단, 벽에 걸린 대형 태피스트리, 바닥을 채운 커다란 원형 문양, 길게 늘어선 촛대와 꽃. 사치스러운 샹들리에와 높은 층고, 현란한 장식 곳곳에서 그의 부가 느껴진다. 캐서린 마틴은 맞춤 제작한 오르간부터 천장까지 모든 것에 금박을 입혔다고 설명했다. 호화로운 파티가 열리는 날에는 어느 곳보다 에너지가 넘치지만, 파티가 끝나면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든다. 빠진 것이 없는데 오히려 비어 보이는 집이다.
원작에는 마리 앙투아네트풍 음악실이나 왕정복고기풍 살롱 같은 방이 줄줄이 나온다. 유럽 귀족의 시간을 방마다 사들인 셈이다. 나는 여기서 개츠비의 열등감이 보였다. 가문과 역사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방법을 택했다. 시간을 살 수 없으니 장식으로 채운 것이다. 오래된 집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첨탑을 올리고 방마다 금을 입혔다.
그 집은 사는 곳이라기보다 무대에 가까웠다. 손님이 수백 명이어도 개츠비가 기다린 사람은 바다 건너 집에 사는 단 한 사람, 데이지였다. 모두에게 보여주는 집이면서 한 사람에게만 보이고 싶은 집, 허영과 간절함이 한데 섞인 공간이다. 하지만 집은 아무리 잘 흉내 내도 새것이다. 모든 것이 반짝일수록, 아직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집이라는 사실이 더 또렷해진다. 뷰캐넌의 집이 말없이 보여주는 것을 개츠비의 집은 온 힘을 다해 연기해야 한다.
오래된 척하는 새것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포스터. © Warner Bros. Pictures
<위대한 개츠비>는 흔히 아르데코의 영화로 불린다. 아르데코는 오래된 것을 흉내 내지 않는 양식이다. 크롬과 유리, 금속 같은 새 소재, 기계가 만들어 낸 직선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드러냈다. 말하자면 ‘새것’을 당당하게 내세운 양식이다. 그런데 개츠비의 집은 겉으로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 새것을 오래된 것처럼 꾸민다.

©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U.S, Canada, Bahamas & Bermuda
영화 속에서 아르데코의 강렬함은 건물의 겉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 파티장을 가득 채우는 반짝이는 장식 커튼, 기하학적으로 반복되는 문양, 몸을 따라 흔들리는 드레스. 캐서린 마틴은 카펫과 직물의 문양을 아르데코에서 가져왔고, 개츠비 저택의 내부는 아르데코 시대의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겉은 오래된 성인데 속은 당대에 가장 새로운 유행인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파티의 화려함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파티가 끝난 뒤의 텅 빈 저택이 오래 남았다. 첨탑이 높아질수록 개츠비는 작아 보였다. 그가 장식으로 보여주려던 건 가진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집일수록 그 안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보인다. 다음에 이 영화를 본다면 파티 말고 집을 먼저 봐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