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같은 일을 겪고도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 달랐다. 예전에 함께 갔던 여행지를 이야기할 때면 그 차이가 특히 선명했다. 아내는 그곳의 모습이나 당시 만났던 사람의 얼굴을 비교적 생생하게 떠올렸다. 나는 어디에 갔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했지만 그 장면이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나보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고, 나는 지나간 일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아판타시아와 하이퍼판타시아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장면을 거의 떠올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보는 것처럼 매우 선명하게 떠올린다는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런 차이에 이미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경험도, 아내에게 당연했던 경험도 모두에게 같은 것은 아니었다.
흥미가 생겨 아내와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몇몇 모습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때 그곳을 떠올려봐”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어느 정도 비유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장소에 관한 정보를 기억하고, 그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떠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 말은 훨씬 문자 그대로에 가까웠다. 그곳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다시 보는 경험이었다. 아내가 오래전 여행을 자세히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아내의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아내는 같은 일을 겪고도 내가 왜 그 장면을 잘 떠올리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같은 말, 다른 경험
그때부터 궁금해졌다. 이런 차이가 마음속 이미지를 떠올리는 방식에만 있는 것일까?
이 경험을 계기로, 인간과 AI에 관한 책을 쓰며 접했던 인간의 기억과 생각에 관한 자료들도 다시 떠올랐다. 사람마다 마음속에서 경험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생각할 때 머릿속으로 계속 말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내적 대화를 훨씬 적게 경험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평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말들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기억나?”
“생각해봤어?”
“한번 상상해봐.”
우리는 이런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상대가 “응”이라고 대답하면 서로 같은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 사람에게 ‘기억한다’는 말은 당시의 모습이나 느낌을 어느 정도 다시 불러오는 경험과 연결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생각했다’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머릿속에서 여러 문장을 주고받았다는 뜻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과정 없이 충분히 생각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까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무엇으로 상대를 이해해왔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른 질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려 할 때 자신의 경험을 꺼내 든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라면 저 일을 기억했을까?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고, 나 역시 그것을 이해의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대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경험할 것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생각의 내용이나 감정의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속에서 경험하는 방식부터 다를 수 있다면, ‘나라면’이라는 질문만으로는 닿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물론 내부 경험의 차이 하나로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모든 오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경험도 다르며, 관계와 상황 역시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이 차이를 알고 난 뒤 나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바라보는 기준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내 경험만으로 상대의 경험까지 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와 내가 기억하는 방식은 지금도 다르다. 달라진 것은 그 차이를 바라보는 내 해석이다. 이제 아내가 “그때 그곳을 떠올려봐”라고 말하면, 그 말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과 아내에게 의미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둔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의 자리에 나를 놓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나를 대입해보는 노력만큼, 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머릿속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래서 완전한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저 사람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