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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너무 아픈 사랑들의 천국 [도서/문학]

류근 시에 나타난 사랑의 양상 및 최승자 시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by 허윤 에디터
2026.10.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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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의 시에서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류근 시 속의 화자는 체질적으로 상처받고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결코 혼자만의 것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있는데/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사랑한다고,/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적 체질』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류근의 사랑은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고 완성되지 않을 때 아프다.

       

      그는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대표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1991)에서 이를 ‘사랑이 아니’라고 규정한 채로 술잔을 기울인다. 그러나 노래의 바깥을 사는 사람들은 시인이 등단 18년 만에 첫 시집을 낼 때까지도 여전히 너무 아픈 사랑을 겪는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짤막한 구절 속에 담긴 의미를 파헤치면 너의 모든 것이 나의 몸 구석구석에 새겨지고 있다는 것, 너의 상처가 나의 상처가 되고 너라는 존재로 인해 내가 고통스러워진다는 것, 고로 사랑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롤랑 바르트의 이러한 견해에 기반하여 류근 시에서의 사랑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1991)과 「너무 아픈 사랑」(2010」의 비교를 중심으로 알아보고 이를 최승자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랑의 형태와 연결해 횡단비평하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너무 아픈 사랑」 간의 상호 텍스트성

       

      1.1 분석과 비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류근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기 못다 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199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중얼거린다. 이 가사는 시인이 20대 당시 학비를 벌기 위해 가사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나온 것으로, 가난하고 불운했던 자신의 청춘을 담은 것이다. 노래는 발매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까지도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사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화자는 어째서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사랑과 고통 간의 정신분석학적 연결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가사 속 화자가 이별의 고통에 젖어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라캉의 환타즘(fantasme) 이론과 관련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리는 때에 환타즘은 기둥이 무너지는 건물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붕괴된다. 그리고 그 때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으면서 그는 자신의 삶이자 우리의 삶에 힘을 주었던 욕망의 힘의 근원을 상실한다. 또한 그는 그의 영상을 반추했던 그 자신의 내부 거울을 지탱하고 받쳐주던 사랑하는 대상의 그 영상, 그 실루엣을 상실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으면서 또한 그는 욕망의 실재적 힘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던 리듬을 상실하고, 리듬을 잃는다는 것은 무의식을 일관성 있게 제어하던 그 경계, 그 절제, 상징적 타자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상상적 투사대상을 잃으며, 공통적 욕망의 리듬을 상실하고 우리 인생의 심적 구조에 없어서는 안 될 환타즘의 짜임과 그 일관성을 상실하여 혼란과 혼돈, 좌절과 공허, 허무, 무기력, 자책 등 심연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즉 화자가 자신이 겪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전까지의 환타즘이 붕괴되면서 집약적으로 느끼는 고통에의 충격을 느끼고, 동시에 그러한 고통을 선사한 과거에 대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부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년이 지난 이후, 류근의 첫 번째 시집 『상처적 체질』에서 그가 말하는 사랑은 변모한다.

       

      *

        

      너무 아픈 사랑 / 류근


      동백장 모텔을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은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시집 ‘상처적 체질’ 중, 2010)

       

      ‘그대 떠나보내고 눈물짓던‘화자는 이제 모텔 앞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아마 ’그대‘가 되지 못할 이를 담담히 보내는 것도 모자라 택시비까지 받아 집으로 돌아간다.’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던 그가 2연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세상에는 없고/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여자가 아닌 19년 전 자신을 향한 발화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 유행가 가사’는 다른 어떤 이도 아닌, 그 자신이 ‘먼 전생에 쓴 유서’다. 생을 반복하며 쌓은 카르마는 「너무 아픈 사랑」의 생을 사는 화자를 ‘사랑을 살아’낼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었지만 너무 아픈 사랑에 앓고 앓다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꾹꾹 눌러 쓴 가사는 여전히 사랑을 앓는 이들의 성경이 된다. 그러나 ‘너무 아픈 사랑은 세상에는 없고’, 세상에 없는 것을 믿는 자에게도 천국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발화자가 믿지 않는 말을 믿고서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여자의 애인이 그녀가 믿는 말의 발화자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이런 아이러니 또한 체질적인 것인 양『상처적 체질』의 시 기저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유부남」의 화자는 그런 아이러니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직관적인 제목에서 알아볼 수 있듯이 기혼임에도 ‘당신이 결혼 따위 생각하지 않는 여자’이기를 바라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라고 말했음에도 자신의 편의와 기호에 맞추어진 요구사항만을 늘어놓는다. 그러고서 사랑을 말한다.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며 쓸쓸히 고개 숙이던 류근 시 속의 화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법한 변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변화가 아니라‘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라며 눈물지었을 화자의 결심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병리학적 증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1.2 류근 시에서의 사랑

       

      a. 상처적 체질

       

      논의를 시작하기 전 류근 시에서 나타나는 남성 화자를 전부 동일인으로 전제함을 알린다.『상처적 체질』전반에서 류근 시의 남성 화자는 일관된 가벼움과 냉소로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그는「너무 아픈 사랑」에서처럼 동백장 모텔을 드나들고「쉽고 깊은」에서처럼 ‘술집에서 계단에서 여관에서 길에서/다른 여자와 쉽게 키스’하는 등 끊임없이 외도하고 「위독한 사랑의 찬가」에서 옛 연인을 생각하다 검은 커튼 아래에 놓인다. 이런 화자의 상태는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사랑의 병리현상 가운데 사랑의 일대일 관계가 파괴되는 현상의 질병, 즉 애정의 삼각관계(혹은 다각관계)의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프롬에 따르면 이와 같은 병리현상은 애정의 분산, 분열로 이어져 애정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복잡한 애정관계가 형성되어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존의 애정관계는 시간이 가면서 파괴되고 이별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 번 마주하는 아이러니는 이 병리학 이론의 파괴에 있다. 이는 「가족의 힘」(p131)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의 힘 /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우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 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까지 봐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온 가족이 모여 화자를 위로하고 심지어는 아내가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얘기하며 화자가 새로운 연애를 할 수 있도록 희망을 고무시키는 이 가정은 아이러니를 넘어 기이해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아내의 태도는 「아슬아슬한 내부」(『어떻게든 이별』,2016)에서 묘사되는 아내의 내면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아내는 그동안 내 연애를 눈치채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중략)/아내에게도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자존심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으리라고’하는 화자의 짐작대로 아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화자와의 사랑이 아닌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가정이다.

       

      「가족의 힘」에서는 화자가 반복된 외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리비도를 승화시키는 능력을 자아가 갖추지 못했을 때 외도를 한다고 한다. 외도는 리비도가 승화되지 못하고 실패한 결과이며, 인격의 수준이 남근기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미해결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외도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 사랑은 정숙한 부인과, 성관계는 다른 제3의 여성과 나눈다. 이런 남성들은 정숙한 아내가 성적인 제스처를 보이면 혐오감을 느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결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집착하면 안전하므로 아내는 어머니의 자리에 두고 성관계는 다른 여성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화자는 아내를 근친상간적 대상으로서의 배우자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 이 범주에서 배우자는 양육하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강력한 부모로 무의식적으로 경험된다.「가족의 힘」에서 화자가 아내를‘속 깊은 보호자’로 칭하는 것, 아내의 품속에 어린 아이처럼 안겨 우는 화자와 그의 등을 두들기며 그를 위로하는 아내의 이미지는 아내보다도 ‘어머니’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충분하다.

       

      화자가 미해결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1991년, 통속적인, 너무나 통속적인」(『어떻게든 이별』,2016) 속 ‘어머니’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매달려 사는/애인의 어머니는 내가 그 귀한 딸에게 매달/사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가끔씩 전화해서 기를 죽이곤 하는데’, ‘내가 일없이 취해서 날마다 취해서/숙취와 악취를 지병처럼 앓고 살 때/어머니는 햇살을 피해서 잠만 자꾸 주무시고‘계신다. 화자가 2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며 쓴 이 시의 구절들은 ‘애인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대조되며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상처적 체질’은 여기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b. 어떻게든 이별

       

      『상처적 체질』에서와는 달리『어떻게든 이별』에서 류근 시의 화자는 한층 성숙되고 안정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록된 여러 시들에서 볼 수 있듯이 상처로 점철된 과거를 마주하여 이를 일부 치유하고 ‘사랑의 병’의 상태도 호전된 모습이다. 그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전작들에서 볼 수 있던 가벼움과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가 「너무 아픈 사랑」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먼 전생의 유서로 묘사한 것처럼『어떻게든 이별』속 화자는『상처적 체질』속 화자의 먼 환생이고 『어떻게든 이별』은 그가 전생에 대해 회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환생의 화자는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사랑 아닌 것마저 부드럽게/감싸 안을 줄 아는 일’이라고 말하고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정서는 「나에게 주는 시」의 구절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

       

      나에게 주는 시 / 류근 (발췌)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등장하던 ‘가을 새’라는 상징물의 재등장으로 해당 가사와 「나에게 주는 시」사이의 직접적인 상관성을 느낄 수 있다. 동일한 화자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사랑 아닌 것으로/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을 ‘잊기로’한다. 이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상처적 체질』을 거쳐 임시적인 결말 형태로 도달한 그의 『어떻게든 이별』에서의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2. 류근 시에서의 사랑과 최승자 시에서의 사랑

       

      2.1 최승자 시에서의 사랑

       

      최승자의 시는 사랑에 대한 남다른 체험과 통찰을 내포한다. 이전의 시들에서 흔히 그려지던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인 사랑과 달리 육체적이고 절망적인 사랑 속에서 죽음을 노래하는 최승자의 시는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사랑을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최승자 시에 나타나는 여성 주체는 좌절된 사랑으로 상처받고 원망하고 죽음을 꿈꾸는 격렬한 자기부정의 양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최승자 시 속의 사랑은 절망과 상처로 귀결되는 고통스러운 관계로 드러난다.

       

      여자들과 사내들-김정숙에게 / 최승자 (발췌)


      사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끊겨지고

      갑작스런 배고픔으로

      찾아오는 이별.


      사내의 눈물 한 방울

      망막의 막막대해로 삼켜지고

      돌아서면 그뿐

      사내들은 물결처럼 흘러가지만,


      허연 외로움의 뇌수 흘리며

      잊으려고 잊으려고 여자들은

      바람을 향해 돌아서지만,


      땅거미질 무렵

      길고긴 울음 끝에

      공복의 술 몇 잔,

      불현듯 낄낄거리며 떠오르는 사랑,

      그리움의 아수라장.

       

      그럼에도 최승자 시의 화자는 멈추지 않고 사랑한다. 그는 실패한 사랑의 반복 속에서도 상대를 잊지 못하고 애착을 드러낸다. ‘그리움의 아수라장’속에서 이별을 견뎌내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 화자의 절박한 반응은 콜레트 솔레에 따르면 ‘여자에게 사랑의 상실은 곧 그녀 자신을 상실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여자는 자신에 대한 타자가 되고자 하고, 여자들은 타자에게 욕망당하는 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하기 때문에 멜랑콜리적인 모멸의 착란상태에 이를 지경에도 사랑의 지속을 갈구한다. 최승자 시 속의 여성 주체가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청파동을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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