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불시에 찾아든다. 만남에 있어서 우리는 결정권을 지니지 못한다. 마주침이든 교제든, 어떤 만남들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현듯 시작된다. 해준이 서래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일어난 사고 같은 마음처럼.
그러나 헤어짐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송서래와 장해준에게는 더더욱, 자연스러운 이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2022년 개봉작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전작 이후 6년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긴 공백 이후에 개봉한 작품인 만큼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멜로/로맨스, 드라마, 서스펜스’로 정리된 이 영화의 장르를 ‘로맨스릴러’ 같은 어줍잖은 신조어로 일축하고 싶지는 않다. 「헤어질 결심」은 철저히 ‘사랑’의 텍스트다. 범인이 누구인지, 왜 죽인 건지, 어떤 트릭이 있는 것인지… 「헤어질 결심」은 우리가 스릴러 영화를 보며 궁금해하는 것들과 전혀 다른 것을 알고 싶게 한다.
그럼에도 ‘수사’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서래는 단숨에 사건의 키를 알아낸다. 해준이 산오의 수많은 전애인들을 조사해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가인이 산오가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임을 대번에 알아차린다. 그건 송서래가 홍산오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서다. 산오의 생에서 가인은 지배적이다. 산오는 가인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만 사실 가인이 아니었으면 인생이 ‘공허’하다. 서래의 생 역시 공허로 차있다. 상실과 폭력에서 서래가 스스로를 구하는 방식은 해준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공허는 비로소 충만해진다. 공허를 메우는 일은 붕괴보다는 축조에 가깝다. 이들이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 공허의 깊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오가 감옥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기피하는 것처럼, 차근히 축조해온 것들의 붕괴와 공허로의 회귀는 죽음을 불사할 만한 것이다. 서래는 해준을 ‘붕괴 이전’으로 돌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자신 역시 누군가 단숨에 알아낼 수 있는 ‘사건의 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장해준은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의 삶에서 사랑은 자주 저울질되고 백분율화된다. 정안과 해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대개 예정되어 있고 거의 의무감에 차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 안전’한 ‘원전’과 같다. 지속적인 관리 속에서 ‘완전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 안전’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래는 그 '완전 안전’한 일상을 붕괴시킨다. 그녀가 애청하는 드라마 <적색비상>에서의 원전 폭발처럼.
스크린 밖의 관객들은 후미산의 절벽에서 그녀가 물려받은 뼛가루를 뿌린 해준의 뒤로 다가서는 서래를 보며 몇 초간 공포에 가까운 긴장을 느낀다. 그건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듣는 해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는 ‘죽음을 각오’한다. 찰나의 순간 해준은 어떤 남자와 비슷한 모양새로 추락하고 그건 어쩌면 육체적으로 ‘완전히 붕괴’된-무너지고 깨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해준이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 순간에 서래는 해준을 껴안고 말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가능할 리 없다.
서래는 해준을 완전히 붕괴시킨다. 해준의 사랑이 끝났을 때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고 서래의 사랑이 그녀 스스로를 끝냈을 때 해준의 사랑은 시작된다 어쩔 수 없이. 안개로 가득한 이포의 바닷가에서 추락하는 물방울들을 맞으며 서래의 신발끈을 묶던 해준은 상승하는 물 속으로 손을 넣어 자신의 신발끈을 묶는다. 서래의 신발끈을 묶던 해준은 계단 아래에서, 그러니까 서래보다 ‘낮은 곳’에서 그녀의 신발끈을 묶던 해준은 서래의 위에서 자신의 신발끈을 묶는 것이다. ‘사랑해요’라는 서래의 끝없는 고백을 들으면서…, ‘사랑 고백하듯’이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라고 되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준이 설명해 주었으므로 서래는 미결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해준이 보여준 행동들로, 서래는 해준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안다. 미결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해준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원인이다. 미결 사건들은 그의 집 한쪽 벽면에 빼곡하게 스크랩되어 영영 그의 뇌리에 남는다.
서래의 죽음은 서래의 사랑을 미결로 만든다. 서래는 해준의 벽 한 켠에 절대 떼어질 수 없는 이미지들을 붙이고 그가 그것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만든 채 ‘아무도 못 찾’을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사랑이란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가는 여정이고 그렇기에 사랑에 빠진 이들은 고소공포를 겪을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자의와는 무관하게 낮은 곳으로 보내진다. 첫 번째는 까마득한 절벽에서의 추락. 두 번째는 꽤 깊이 파진 수영장 속. 첫 번째가 땅이라면 두 번째는 지하이고, 세 번째는, 서래는 더 낮은 곳에서 자신만큼의 깊이에 묻힌다. 삽도 없이 파낸 구덩이에. 이보다 로맨틱하고 잔인한 죽음이 있을 수 있는가. 서래의 고백 같은 자살은 감독의 전작들에서 나타난 자살과 하강의 이미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올드보이(2003)>의 첫 장면, 개를 끌어안고 고층 빌딩에서 투신하는 자살남(오광록)이나 다리 위에서 우진의 손을 놓아버리는 수아의 자살은 하강의 이미지와 동시에 속도감을 동반한다. <헤어질 결심(2022)>에서도 산오의 자살은 투신의 이미지로 실현된다. 이 추락들은 다소 충동적으로 보일 만큼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서래의 죽음에서는 이 이상 명백할 수 없는 결의를 확인할 수 있다. 서래는 단지 나지막한 파도 소리와 자연히 차오르는 밀물의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있다. 초연하고 담담하게,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죽어가면서.
시선과 화면
영화의 1부에서 해준은 끊임없이 서래를 관찰한다. 그녀가 ‘마침내’ 울게 될 때까지.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찾는 형사의 명분으로 시작된 의심 가는 용의자에 대한 관찰은 관심 가는 여자에 대한 관음으로 마무리된다.(훗날 서래는 이에 대해 ‘믿음직한 남자가 잠을 안 자고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었다고 진술한다.) 반면 2부에서는 서래가 해준을 관찰한다. 경찰서의 화재 경보기를 누르고 밖으로 나온 인파 속에서 곧장 해준을 찾아내 쌍안경으로 해준을 내려다보는 서래의 모습은 차 안에서 쌍안경으로 서래의 집 안을 올려다보는 해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시선은 효과적이고 명백하게 관심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화면 속 배우들의 눈빛은 훌륭한 ‘마음의 창’ 역할을 한다. 같은 구도로 촬영된 화면 속 해준과 서래의 시선은 두 사람이 그 장면에서 같은 감정과 관점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녹색으로 보였다가 파란색으로 보였다가 하는 그 원피스’를 다른 사람들은 ‘녹색’이라고, 해준은 ‘파랑’이라고 하고, 서래는 남들은 알지 못하는 해준의 변화-부산에서는 운동화만 신던 해준이 이포에서는 구두를 신는 것 같은-를 안다. 그들은 타인들과는 차별되는 시선으로 서로를 볼 수밖에 없다. 그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식사가 초밥이든 핫도그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런 ‘시선’의 문제는 촬영기법과 편집에서도 유의미하게 활용되고 있다. ‘붕괴’된 채로 서래의 집을 나가는 해준과 혼자 남겨진 서래를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이 그렇다. 카메라는 하이 앵글에서 천장과 서래의 머리 부분을 촬영하다가 서래가 자리에 앉으며 프레임 아래로 나갔다가 카메라가 내려오며 다시 서래의 전신이 화면에 잡힌다. 인물을 놓쳤다가 다시 찾아가는 움직임이다. 인물들은 깊이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내리눌러지는 압박감과 시공의 뒤틀림을 보여주는 카메라워크는 명백하게, 누군가의 시선을 떠올리게 하고 심지어는 관객을 그 장면에서 쌍안경을 들고 타인의 집을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포의 취조실에서 마주보고 있는 해준과 서래. 부산의 취조실에서 마주보고 있는 해준과 서래.
이포의 취조실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을 서래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모니터를 활용하여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연출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 이미지는 취조실에서 재회한 둘 사이의 긴장감과 복잡한 감정, 엇갈리는 시선이 주는 13개월간의 변화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거울이라는 사물을 활용해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을 강조한 부산에서의 취조실 숏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불통’에 대하여
해준의 언어는 서래를 위해 풀어지고 서래의 언어는 번역을 거친다. 두 사람의 독백은 녹음을 거쳐 서로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말들은 오역되고 오역은 오해를 낳는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언어의 숙명이다. 언어는 전달의 수단일 뿐이고 그 사이에서 원본인 ‘마음’은 조금씩 왜곡된다. 동일한 언어권의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 ‘심장’인지 ‘마음’인지보다 더 많은 것들이 원본과는 다른 형태로 서로에게 전달되고 우리는 이 비극을 막을 수 없다. 또다른 비극은 이것이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화 내내 ‘사랑해’라는 말은 딱 한 번, 임호신의 입에서 나오는데, 단지 서래를 달래기 위한 이 ‘사랑해’라는 말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그럼에도 통하는 것들이 있고 그것이 서래가 해준을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로 해독되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처럼. 서래와 해준 사이에는 연인들 사이의 사랑의 밀어, 사랑의 시니피앙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타인과는 다른 ‘시선’과 관련된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는 외부인들과는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기표가 있다. 「헤어질 결심」은 둘 사이에 오가는 사랑 없는 고백과 오역으로 발생하는 암호를 통해 그 기표와 상징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21세기의 산해경
무너질 붕의 부수는 뫼 산, 결단할 결의 부수는 물 수이다. 우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딱 들어맞는 무너짐과 결단, 그리고 산과 바다의 이미지는 서래의 집 벽지를 떠오르게 한다. 산의 봉우리인지 바다의 물결인지 불명확한 벽을 배경으로 ‘완전히 붕괴’ 되었다고 말하는 해준의 표정은 산해경에 등장하는 요괴에게 홀리기라도 한 사람 같다.

‘산과 바다의 이야기’라는 뜻의 「산해경」 은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뉜다. 「헤어질 결심」 역시 1부에서는 산, 2부에서는 바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산해경」과 동일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산의 붕괴와 물의 결심. 그리고 종내에 남는 질문. 그래서 송서래는, ‘헤어질 결심’에 성공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포의 취조실에서 재회한 해준과 서래. “왜 그런 남자랑 결혼을 했어요?”라는 해준의 질문에 서래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그래서 결혼 했습니다.”라고 답한다. 결심을 위해 이용된 결혼은 만남 이전과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고 두 사람을 다시 용의자와 형사의 자리에 앉힌다. 초밥은 핫도그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좋아하기를 중단’할 수는 없고 결국 결심을 위한 수단은 ‘당신 만날 방법’으로 변질된다.
그들의 관계에서 ‘만날 결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남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고 이루어진다. ‘사건’이 늘 그렇듯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별에는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決하기 위해 結하는 아이러니는 결과적으로 어떤 決을 이루어내지만 그것은 분명 ‘헤어질 決심’은 아니고 그렇게 영화는 완결完結되지만 이야기는 미결未決로 남는다. ‘완전完全’한 ‘미결未訣’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