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인다. 내 왼발 측면에는 손톱 너비만큼 작은 흉터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다섯 살일 때 거실을 뛰어다니다가 스카치테이프를 밟아 상처가 났던 흔적이다. 당시의 기억이 꿈처럼 가물가물한 나는 이 흉터의 존재를 통해서만 그때의 일이 실제 내게 일어난 사건임을 확신할 수 있다. 흉터뿐일까. 이제는 맞지 않는 옛날 옷을 보며, 검기만 했던 엄마의 머리에 흰 머리칼이 한두 가닥씩 난 것을 보며, 활기 넘치던 할머니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것을 보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주름살이 늘어가는 엄마의 얼굴이 점점 할머니의 얼굴과 닮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엄마의 나이에 이르면 내 얼굴에는 엄마와 할머니의 그림자가 얼마나 남아있을까?
부쩍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요즘, 은희경 신작 『시간의 감촉』은 시간을 통과하는 몸과 여성으로서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여성의 몸이 삶의 조건이 될 때 삶의 출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소설은 안나와 경선 자매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다. 일찍이 자신의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안나의 자세와 행동에는 그 깨달음이 배어 있다. 꾸미는 것을 포기하고 나서 드러내기 시작한 맨 이마, 큰 골격을 감추기 위한 구부정한 자세, 관찰을 바탕으로 어디서든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평범한 차림. 안나는 고독하지만 무대의 뒤편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는 입장에 만족한다. 반대로 하얀 피부와 웃을 때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타고난 경선은 시선을 즐기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은 동시에 자신이 특정한 유형의 여성으로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남자에게 관심이 많은 여성스러운 여자, 아이를 낳고 몸 관리를 하지 못하는 여자, 이혼 후 외롭고 궁핍하게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자 등. 사회가 규정하고 멸시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경선은 자신을 가꾸고 가꾼다.
그러나 젊은 시절 두 사람의 삶을 구분짓던 외모와 그에 대한 태도는 노년이 되어 희미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차이로 삼을 만큼 신체가 섬세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징이 모호해졌다거나 평가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조건에 둔해진 것은 더욱 아니다. 관심의 시효가 다한 것뿐이다. 노인이라는 일반화가 너무 강력해서 개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p.77)
안나와 경선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노화는 경선의 입을 빌리자면 "주름살이나 노안이나 소화가 안 되는 정도로 호들갑을 떨 만큼 감상적인 현상이 아니" (p.215) 다. 필연적으로 추해질 수밖에 없는 노화의 과정에서, 안나와 경선은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는 만큼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안나와 경선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알아차린다. 카페에 간 안나는 노인 손님을 반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선뜻 자리에 앉지 못한다. 경선은 좁은 길을 걸어갈 때 뒤에서 자주 멈춰 서는 듯한 발소리가 자신의 느린 걸음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인 것을 느낀다.
그러나 노인의 일반화 속에서도 이들에게 남은 여성의 특수성이 있다. 바로 가족돌봄자로서의 역할이다. 딸을 도와 손녀 다니엘을 돌보는 경선은 입원 기간 동안 그 일을 안나에게 부탁해야 한다. 안나는 전문간병인 대신 경선을 돌보고 경선의 손녀도 대신 봐 준다. 경선의 딸 다은은 본인도 일을 하지만, 지방 출장을 간 남편을 대신해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한다. 같은 맥락에서 경선이 입원한 병실에 있는 간병인 여성들의 존재도 눈에 띈다. 안나 경선의 이야기와는 크게 관련이 없지만 소설은 지면을 할애해 이들을 호명하고 그들간의 대화를 기록한다. 이들에 대한 소설의 관심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노년 여성 자매를 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화를 느끼며 안나와 경선은 씁쓸해하지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경선의 손녀 다니엘을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이들은 잊었던 추억을 떠올리고 삶을 지탱해주는 기억의 힘을 깨닫는다. 셋의 여행은 서로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는데, 이를 통해 안나와 경선은 지나간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남은 날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그래. 누군가가 기억하면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거지.” (p.248)
기억을 지탱하는 건 몸이다. 소설의 끝에서, 경선은 춤춰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나 막상 몸을 움직이고 자세를 취하자 경선은 깨닫는다. “몸이 여기에 있고 낯설지 않다” (p.376)는 것을. 몸이 존재하는 한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다.
세월이 흘러서 내가 엄마의 나이를 넘기고 할머니의 나이에 가까워질 때, 얼굴에 드리운 할머니와 엄마의 그림자가 선명해질 때, 『시간의 감촉』을 다시 꺼내보는 상상을 한다. 어느새 안나와 경선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어 있다. 지나간 시간은 까마득하고 다가올 시간은 막막하다. 그때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내 몸이 여기 있고 삶은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