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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슬픔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착각

김미조 감독의 영화 <경주기행>를 보며

by 공선유 에디터
2026.10.1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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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경주기행〉의

      주요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티셔츠 맞춰 입고 경주나 다녀오자."


      이 대사가 흐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졌다. "이제 그만 털어낼 때도 됐잖아." 슬픔에 유효기간을 매기던 말들이 맞춰 입은 단체 티셔츠 위로 겹쳐졌다. 남겨진 이들은 적당히 울고, 적당한 때에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 기준을 벗어난 분노나 집착에는 '미련' 혹은 '기행'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 〈경주기행〉은 그 '기행'이라는 말을 아예 제목에 걸어 둔다. 노란 봉고차, 맞춰 입은 단체 티셔츠, 일회용 카메라. 겉보기엔 영락없는 가족 여행이지만, 트렁크에는 8년 전 막내딸을 죽인 범인이 실려 있다. 힐링 로드무비의 얼굴을 한 복수극. 이 기묘한 어긋남이 세상이 정한 슬픔의 양식을 비트는 네 모녀의 방식이다. 그래서였을까. 봉고차에 오르는 네 모녀의 뒷모습이 자꾸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좁은 차창 너머로 마주한 상처의 생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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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 밖 풍경과 달리, 좁은 봉고차 안의 공기는 무겁고 뜨거웠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살을 부딪치며 견디는 그 공간은 상처 입은 이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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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딸을 잃은 충격 속에서 버텨온 어머니 옥실(이정은)의 지친 얼굴에서 '돌봄과 한(恨)'의 실체를 본다. 피눈물을 삼켜온 그녀는 완벽하고 숭고한 어머니로 포장되지 않는다. 묵주를 쥔 손으로 딸들에게 매섭게 쏘아붙이는 모습에서 진짜 상처받은 사람의 생얼굴이 드러난다. 이정은은 이 인물을 대사보다 몸으로 먼저 보여 준다. 말보다 앞서 굳어 버리는 어깨와 손끝이 8년의 시간을 대신 말한다.


      그 곁의 세 딸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처를 견딘다. 운전대를 잡고 백미러로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첫째 장주(공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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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바이용 일회용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계획을 점검하는 둘째 영주(박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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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에도 태평하게 잠들어 버리는 셋째 동주(이연)까지. 거대한 고통은 사람을 다정하게 만들기보다 때론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날카롭게 만든다.

       

      차 안에서 툭툭 내뱉는 날 선 대사와 불협화음이 곧 상처의 맨얼굴이다.

       

       


      '경주'라는 이름과 기이한 여행의 의미


       

      도시 경주,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그리고 범인을 싣고 떠나는 기이한 여행. 이 겹겹의 제목 앞에서 사적 복수의 옳고 그름은 잠시 미뤄 두게 된다. 다만 미뤄 둘 뿐 지워지지는 않는다. 네 모녀에게 마음이 기울수록, 그 마음이 어디까지 허락될 수 있는지 묻는 불편함도 함께 자랐다. 영화는 이 불편함을 끝내 풀어 주지 않고, 바로 그 점이 〈경주기행〉을 손쉬운 사이다 복수극에서 건져 낸다.


      세상은 이를 '기행'이라 부를지라도, 그 발걸음은 슬픔을 매듭짓기 위해 그들이 찾아낸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어색하게 껴입은 하얀 티셔츠가 흙먼지로 더러워져 가듯, 이 여행은 지나간 슬픔을 비로소 바깥으로 꺼내어놓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슬픔에는 도착지가 없다.


       

      영화는 통쾌한 복수도, 완벽한 구원도 주지 않는다. 복수가 끝나도 막내딸 경주는 돌아오지 않고, 부재는 평생 안고 가야 할 무게로 남는다.


      그렇다고 이 무모한 여행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것은 아니다. 8년 동안 각자의 방에 슬픔을 가둬 두었던 네 사람은, 도로를 함께 달리고서야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마주 본다. 흙먼지에 얼룩진 티셔츠는 더 이상 알리바이를 위한 의상이 아니라, 같은 길을 지나온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흔적이 된다.


      경주(慶州)의 '경'은 경사 경(慶) 자다. 가장 슬픈 여행지에 가장 기쁜 이름이 붙어 있는 셈이다. 영화는 그 모순을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돌아오는 차 안, 네 사람의 침묵이 출발할 때와는 조금 다른 무게로 내려앉아 있을 뿐이다.


      슬픔에 유효기간이 있다고 믿은 쪽은, 어쩌면 남의 슬픔을 오래 지켜볼 자신이 없던 우리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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