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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김초엽의 소설 『므레모사』에 대한
전반적인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초엽의 경장편 소설 『므레모사』(현대문학 핀 시리즈 38)는 대참사 이후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로 봉쇄되었던 가상의 구역 ‘므레모사’가 외부 참관단에게 처음으로 한시적 개방을 선언하며 시작된다. 정부는 이곳을 '재난을 극복한 희망의 땅'이라 칭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기차와 밴 속에서 통성명을 나누는 방문객들은 타인의 비극을 우리 사회가 어떠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소비하는지를 선명하게 비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시선은 소설 속 참관단이 아닌, 그들의 눈길에 관람당하는 므레모사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에게 줄곧 머물렀다.
1. 므레모사를 찾은 방문객들과 인물에 대한 사유
므레모사를 참관하는 이들의 방문 목적은 P.21~ P.31에 걸쳐 명확히 서술된다. 이들은 단순한 개인이라기보다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다층적인 시선을 대변한다.
① 유안 (주인공, 전직 무용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뒤 의족을 달고 복귀한 무용수로, 식물학자 레오의 동행인이자 중심 관찰자. 끊이지 않는 환지통과, ‘장애를 극복하고 일어선 의지의 영웅’으로 프레임 짓는 사회의 잔인한 시선에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나는 나의 고통을 팔아서 생존했고 때로 그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P.168)
외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을 들였지만,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고통도 움직임도 없는 완벽한 부동(不動)의 상태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의 생존을 찾기 위해 므레모사를 택한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P.175)
유안이 선택한 '움직이지 않는 상태(부동)'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극복'과 '정상 상태로의 복귀'라는 규범을 거절하고, 움직이지 않는 몸 그 자체로 존재하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낸 급진적인 응답이다. 나에게 유안은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위해 자신을 소모해 온 현대인들에게 ‘사회가 정한 기준대로 상처를 극복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일깨워주는 가장 서늘하고도 존엄한 인물로 다가온다.
② 레오 (전직 펍 운영자 및 식물학자)
빌바오에서 펍을 운영하다가 망하고 방황하다 투어에 당첨되어 합류했다. 자신만의 식물학적 목적과 므레모사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추궁하며 진실을 확인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빌바오에서 펍을 운영하다가 3년째에 홀딱 망하고 어쩌다 보니 여기로 흘러왔습니다. (……) 제 인생의 얼마 안 되는 행운 전부를 이 투어 당첨에 써버린 것 같네요.” (P.26)
레오는 참관단 사이에서 비교적 진지하게 므레모사의 식물학적 비밀과 진실을 탐구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 역시 결국 외부 세상의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므레모사를 해석하려는 관찰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레오는 우리에게 ‘아무리 다정한 시선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외부인은 타인의 고통과 선택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서늘한 경계를 확인시켜 준다.
③ 탄 (태국 출신의 신입 기자)
종합 언론사의 신입 기자인 탄은 므레모사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하기 위해 참관단에 합류했다. 베일에 싸인 므레모사의 첫 개방 실태와 귀환자들의 실상에 도달하여 대단한 기사를 쓰고 폭력적 실체를 미디어에 폭로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저는…… 태국에서 온 기자 탄입니다. 음, 지금 제가 속이 좋지 않아서.” (P.27)
“그때 들은 바로는 그는 종합 언론사 신입 기자로, (……) ‘연예인들만 쫓아다니기보다는’ 대단한 걸 써보겠다며 므레모사 투어에 자원했으며, 이번 기회에 이르슐의 폭압과 므레모사 주민들의 비극을 널리 알리려고 한다는 긴 이야기를 늘어놓아 가이드의 눈총을 받았다.” (P.27)
④ 이시카와 (관광학 대학원생)
교토대에서 관광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참사의 현장이 관광 자원으로 변형되는 '다크 투어리즘'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참가했다.
“이시카와 유지라고 합니다. 교토대에서 관광학을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정확히는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들이 어떻게 비극의 장소에서 관광의 장소로 변형되는지를 주제로 연구 중입니다.” (P.23)
신입 기자 탄과 관광학 연구자 이시카와는 진정성 있는 정의감이나 학문적 사명감을 품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복잡한 일상과 맥락을 지워버린 채 자신들의 프레임(기사와 연구 데이터)에 므레모사를 밀어 넣는다. 글을 쓰고 기록하려는 나 자신이 가장 경계해야 할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⑤ 헬렌 (다크 투어리스트)
외국어에 능통하고 여행 경험이 풍부한 60대의 전직 인물로, 죽음과 참사 현장을 직관하고 금지된 공간이 주는 특수한 감흥을 소비하려는 전형적인 다크 투어리스트다.
“비극을 찾아가는 여행이랄까. 죽음과 심령현상과 사이비 종교, 타인의 고통을 탐험하는 것. (……) 내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일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확신했네.” (P.25)
⑥ 강주연 (여행 유튜브 크리에이터)
한국에서 온 인물로, 더 이상 눈길을 끌 소재가 없던 차에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땅, 첫 번째로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희소성과 대중의 주목을 모을 영상 콘텐츠를 확보하고자 참관했다.
“어, 저는…… 남동생이랑 같이 여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걸 기반으로 여러 영상 콘텐츠도 제작해요. (……) 다들 므레모사라고 하면 기대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마을 분위기가 얼마나 무섭고 섬뜩했는지, 주민들이 어떻게 걸었고 건물들이 얼마나 막막했는지…….” (P.29~P.30)
이들에게 므레모사의 삶과 귀환자들의 생존은 맥락을 가진 진짜 삶이 아니라, 자극적인 썸네일이나 지루함을 달래줄 '구경거리(스펙터클)'일 뿐이다. 타인의 슬픔을 가볍게 소비하고 넘겨버리는 현대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가 조금씩 이들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각하게 만든다.
2. 므레모사가 균열을 내는 사회적 프레임과 질문들
참관단에게 므레모사는 타인의 삶의 터전이기 전에 자극적인 콘텐츠, 연구 자료, 혹은 호기심을 채워줄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타인의 고통을 맥락 없이 강렬한 ‘볼거리’로 취급하거나, 상처의 깊이를 다 안다는 듯 "시련을 극복한 희망"이라며 외부인의 입맛대로 포장해 버리는 태도. 그것은 당사자의 진솔한 목소리를 가리는 또 다른 형태의 타자화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 므레모사는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이러한 사회적 규범에 세 가지 중대한 '틈'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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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로는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정상성'과 '극복 서사'라는 일방적 폭력성에 틈을 가른다.
현대사회는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입은 존재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극복하고 회복하여 사회가 규정한 '건강한 정상 상태'로 복귀할 것을 강요한다. 정상성에서 벗어나 있거나 멈춰 선 삶은 불행이자 실패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므레모사에서 만나는 세계는 변형되고 움직이지 않는 신체를 결함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몸 그 자체를 완전한 삶의 한 형태로 수용하는 므레모사는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의 폭력성에 균열을 일으키며, ‘사회가 정한 기준대로 상처를 치유하거나 극복하지 않아도 될 권리’라는 사유의 틈새를 제시한다.
둘째, 안전한 관찰자의 시선과 '타자화'의 구도를 역전시키는 틈을 만든다.
현대 미디어와 대중은 타인의 고통을 안전한 울타리 밖에서 관망하고 동정하는 관조적 대상으로 소모하려 한다. 헬렌, 강주연, 이시카와, 탄 역시 므레모사를 자신들이 안전하게 취재하고 기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소설 속 므레모사는 내부로 들어온 외부 참관단을 역으로 귀환자들의 시선 아래 묶어두고 그들의 생태 속으로 흡수한다. 관찰하는 자와 관찰당하는 대상 사이의 엄격했던 권력 구도가 뒤바뀌는 순간은, 타인의 비극을 안전한 거리에서 구경하고 소비하려는 현대인의 이기적이고 타자화된 시선에 치명적인 균열을 낸다.
셋째, 단순한 해방구도, 절망의 땅도 아닌 '모순 자체'로서 제시되는 틈이다.
외부 세상의 기준에서 므레모사는 오염되어 파멸한 디스토피아에 불과하다. 반대로 기존 사회의 무한 경쟁과 신체적 통증 속에서 소외당했던 존재들에게 므레모사는 사회적 억압이 도달하지 않는 완충지대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므레모사를 온전한 '유토피아'나 '새로운 해방구'로 성급히 단정 짓는 것 역시 외부인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이상향을 포장해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작품 속 므레모사는 끝내 매혹적이면서도 기괴하고, 구원이면서도 섬뜩한 모순을 동시에 간직한다. 유안이 므레모사를 택한 진짜 이유나 참관단이 귀환자들 속으로 흡수되는 결말에 이르러 그것이 진정한 해방인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인지 소설은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결국 므레모사는 누군가에게는 참혹한 재난의 현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생존의 공간이 되는 ‘지울 수 없는 모순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3. 에필로그: 기록자로서 품어야 할 다정한 경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은 참관단에 대한 비판적 태도 너머로 불쑥 찾아온 자각이었다. "나는 과연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타인의 비극을 파헤쳐 대단한 기사를 쓰겠다던 기자 탄, 참사의 현장을 학문적 자료로 다루던 연구자 이시카와, 그리고 텍스트라는 안전한 울타리 너머에서 므레모사의 비극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독자인 나 자신. 누군가의 삶과 고통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해석하여 글로 옮기려는 나 역시 결국 한 명의 관찰자이자 '탄'이나 '이시카와'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문헌정보학에서 기록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아카이빙 과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어떤 분류 체계 안에 밀어 넣을지를 결정하는 순간 이미 기록자의 권력과 프레임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을 '재난 피해자'나 '기괴한 주민'이라는 키워드로 손쉽게 분류해버리는 참관단처럼, 우리 역시 분류의 편리함을 위해 당사자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맥락을 거칠게 생략하곤 한다. 완벽하고 객관적인 아카이브란 존재하지 않기에, 기록하는 자는 자신의 분류표 아래 스러져가는 개별자의 서사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하게 가공된 프레임이라도 그 사이에는 반드시 ‘틈’이 존재한다. 거창한 미디어나 타인의 관점으로는 결코 메워지지 않는 당사자들의 소소한 일상,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 삶의 흔적들이 바로 그 틈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 후반부,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P.175)라는 유안의 고백은, 세상이 쉽게 만들어낸 프레임에 강렬한 틈새를 내어준다. 타인의 아픔을 제3자의 위치에서 감상하거나 멋대로 구원 혹은 비극으로 포장하지 않고, 스스로가 안전한 관찰자일 수 있다는 오만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 그리고 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당사자의 진짜 목소리를 다정하게 마주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기록을 다루고 글을 써 내려갈 내가 평생 품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