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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유령

베레나 크리거『예술가란 무엇인가』 리뷰

by 이성혜 에디터
2026.10.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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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은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해 왔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일상에서 사용하던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대신 하나의 개념과 질문을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뛰어난 기술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인가, 남다른 상상력과 천재성을 지닌 사람인가, 아니면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사람인가?

       

      예술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예술가를 정의하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과 그 안에 담긴 재능이 예술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 이르러 작품의 형태와 제작 방식이 다양해지고, 예술의 개념 자체가 끊임없이 도전받으면서 기존의 정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예술가라는 이름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베레나 크리거의 『예술가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예술가의 본질을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기보다, 시대에 따라 예술가가 어떻게 이해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수공업자에서 창조자로, 창조자에서 천재로, 다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혁명가와 예술의 개념을 의심하는 존재로 이어지는 예술가의 역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예술가의 모습을 낯설게 만든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가란 처음부터 정해진 속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예술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어 온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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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공업자에서 천재로: 예술가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고대와 중세의 조형예술가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독립적인 창작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예술 활동은 수공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예술가 역시 조합의 규칙 안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자신의 지위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원근법과 기하학을 회화에 적용하고, 예술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지적인 활동으로 설명하면서 예술가를 시인이나 학자에 가까운 존재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창조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었다. 예술가의 영감은 과거처럼 신이나 뮤즈로부터 주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예술가는 외부의 힘을 전달하는 매개자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가 된 것이다.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신적인 존재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취한 것 역시 예술가가 스스로를 특별한 창조자로 이해하게 된 시대적 변화와 연결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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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인식은 천재의 개념과 결합한다. 예술가는 남다른 감수성과 상상력, 열정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으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타고난 천재성의 증거가 되었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천재를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으로 설명한다. 천재는 기존의 규칙을 단순히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독창성을 통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는 존재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단순히 작품을 잘 만드는 사람을 넘어섰다. 그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내면을 지니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창조성을 발휘하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독창성이나 개성 역시 이러한 역사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책은 천재라는 개념이 예술가를 설명하는 동시에 특정한 이미지에 가두었다는 점도 보여준다. 예술가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 위해 사회와 거리를 두고, 고독과 가난을 견디며, 때로는 고통을 통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존재로 그려졌다. 보헤미안과 아웃사이더의 이미지, 고통받는 천재의 신화는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실제로 고독하거나 고통받는 사람인지가 아니다. 오히려 왜 사회는 예술가에게 고독과 고통을 특별한 창조성의 증거로 요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천재라는 개념은 예술가에게 독창성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예술가라면 특별한 내면과 남다른 삶을 지녀야 한다는 기대를 만들어 냈다.

       

       

       

      2. 세상을 구원하는 예술가: 창조성은 사회를 향한다


       

      예술가가 특별한 창조자로 인정받게 되면서 예술에 부여되는 역할 역시 달라졌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운 대상을 만들어 내는 활동에 머무르지 않았다.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가 사회의 구원자이자 선구자로 여겨지는 과정이다. 19세기 초 생시몽은 예술가를 학자와 산업가 등과 함께 사회를 이끌어 갈 중요한 세력으로 보았다. 예술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 작용할 수 있으며, 그러한 능력을 지닌 예술가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초병, 즉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가의 역할은 개인적인 창작을 넘어 사회적 변화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생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실천되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예술가이자 정치적 행위자로서 당대의 사회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구스타브 쿠르베는 전통적인 미술의 위계에 도전하며 노동과 현실의 모습을 회화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쿠르베의 리얼리즘은 무엇을 그릴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기존 예술의 경계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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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러시아 구성주의자들 역시 예술과 삶의 분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들에게 예술은 미술관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삶의 형식을 구성하는 활동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예술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예술가는 정치적 선전의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하고, 어떤 예술가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제시한다. 이들에게 예술가의 정체성은 창조적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예술가를 사회의 구원자로 바라보는 관점에도 한계는 있다. 예술가에게 사회를 변화시킬 사명을 부여하는 순간, 예술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반드시 사회의 선두에 서야 하는가? 예술의 가치는 사회적 효용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예술가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하나로 정해질 수 없다. 결국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예술가가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보다, 예술가에게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려는 시도 그 자체다. 예술가의 정체성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사회와 맺는 관계 속에서도 만들어진다.

       

       

       

      3. 고통과 광기, 그리고 여성 예술가: 천재라는 신화의 이면


       

      책은 예술가를 둘러싼 통념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통념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누구를 배제했는지 질문한다. 그중 하나가 천재성과 멜랑콜리, 광기의 관계다. 오랫동안 예술가의 우울과 고통은 특별한 창조성의 징표로 해석되었다. 고대의 체액설에서 비롯된 멜랑콜리의 개념은 시대를 거치며 예술가의 깊은 사유와 내면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후 천재와 광기가 연결되면서 예술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정신적 상태에 놓인 존재로 묘사되기도 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악몽과 불안,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관념을 이해하는 사례가 된다. 이러한 인식에서 고통은 단순히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가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증명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적 창조성을 고통이나 정신적 불안정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통을 예술가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하면, 예술가의 삶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동시에 창조성의 다양한 원천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또 다른 통념에도 주목한다. 바로 천재성은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여성은 오랫동안 예술의 창조자라기보다 예술의 대상이나 수공업의 담당자로 여겨졌다. 남성의 지적·정신적 능력은 천재성의 근거로 인정된 반면, 여성의 능력은 자연적이거나 장식적인 영역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은 예술을 감상하는 애호가로 인정받을 수는 있어도,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구조에 도전한 여성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적 관습을 활용하거나 전복하면서 창조성의 의미를 다시 질문했다. 메레 오펜하임의 작업은 여성성과 천재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사례로 살펴볼 수 있으며,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는 미술사에서 주변화되었던 여성들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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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에서 책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가라는 개념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가 천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어떤 삶이 창조적인 삶으로 평가되는지에 대한 기준은 사회적 편견과 권력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따라서 예술가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일만이 아니다. 누구에게 창조의 자격이 주어졌고, 누구는 그 자격에서 배제되었는지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누가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4. 예술가를 거부하는 예술가: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예술가인가?


       

      책의 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예술가라는 개념을 확립해 온 역사가 결국 그 개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소수의 천재만이 창조성을 독점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창조성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할 수 있으며,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예술가의 작품만이 높은 미적 가치를 지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우연을 활용한 다다의 작업, 집단적인 창작을 지향한 플럭서스, 작가의 개성을 최소화하려 한 미니멀리즘 등으로 이어졌다. 예술가의 독창적인 손길과 유일무이한 작품을 중시하던 기존의 관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받았다.

       

      그중에서도 마르셀 뒤샹의 《샘》은 예술가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뒤샹은 공산품인 소변기를 전시장에 제시함으로써 직접 제작하는 행위와 예술적 창조 사이에 놓여 있던 관계를 흔들었다. 작품의 가치는 더 이상 작가가 얼마나 능숙하게 대상을 만들었는가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선택하고, 그것을 새로운 맥락에 놓으며, 그 의미를 질문하는 행위 역시 예술적 실천이 될 수 있었다. 이 변화는 예술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예술가는 더 이상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물을 선택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관람객이 기존의 사고방식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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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관람객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뒤샹의 작품은 소변기라는 물건 자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이 미술관에 놓였다는 사실, 관람객이 그것을 작품으로 마주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술의 조건을 질문하게 된다는 사실이 작품의 의미를 구성한다. 예술은 제작자의 손에서 완성되는 대상만이 아니라, 선택과 해석을 통해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손길이 사라지고 작품의 개념만 남더라도 예술가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일까? 책은 이 질문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가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시도 속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이름과 개성을 지우려는 시도조차 누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맥락에 제시했는지라는 문제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예술가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예술가가 수행하는 선택과 의미 구성의 중요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5. 예술가라는 유령: 사라지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천재적 개인이 예술을 독점한다는 관념에 도전했다. 작품의 독창성을 의심하고, 작가의 개성을 지우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예술의 경계를 해체하는 데 성공한다면, 예술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은 바로 이 역설에 주목한다. 현대미술에서 예술은 특정한 재료나 제작 방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술가는 미술관 밖으로 나아가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영역과 관계를 맺고, 일상적인 사물이나 행위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예술의 경계가 넓어질수록 오히려 무엇이 예술인지를 판단하는 기준과 그것을 예술로 제시하는 주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은 그 자체로 반드시 예술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광고나 소비재, 혹은 폐기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예술의 맥락 안에서 제시되고 관람객이 그것을 예술로 인식할 때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행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존의 사물을 선택하고, 새로운 맥락에 놓으며, 그것이 지닌 의미를 재구성하는 행위 역시 예술적 실천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의 미학적 특성만으로 예술의 지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작품이 예술로 인식되는 과정에는 그것이 놓인 제도적·사회적 맥락과 작품을 제시한 예술가의 존재가 함께 작용한다. 예술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조차 그 행위를 예술로 받아들이는 맥락과 주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예술가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예술가가 수행하는 선택과 의미 구성의 역할을 다시 드러낸다. 이러한 모순은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라는 논의와도 연결된다. 작품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나 권위에 종속시키지 않으려는 시도는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저자의 권위를 약화하려는 시도가 곧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작품의 의미가 작가의 의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예술로 제시하고 그것을 예술의 맥락 안에 위치시키는 주체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러한 상황을 예술가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비유한다. 예술가의 특별한 지위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반복되었지만, 그때마다 예술가의 역할은 다른 형태로 변형되고 확장되었다. 과거 예술가가 뛰어난 기술과 천재성을 통해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았다면, 현대의 예술가는 사물을 선택하고 개념을 구성하며 예술의 경계 자체를 질문하는 존재가 되었다. 예술가의 권위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라는 주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역사가 단순히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고 다시 상실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가를 정의하는 기준이 흔들릴 때마다 그 역할은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예술가를 없애려는 시도조차 결과적으로 예술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결국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예술의 경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 예술가의 역할을 축소하려 할수록 무엇이 예술을 성립시키는지, 누가 그것을 예술로 제시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다. 예술가라는 존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예술의 경계가 계속해서 확장되는 한, 예술가라는 유령은 앞으로도 예술의 세계를 떠돌며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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