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해 보이지만 뭔가 허술한 정장 차림과 페도라, 신사라는 인상과 상반된 거침없는 태도와 자유분방한 예술적 세계관. 그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기인’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로 깊이 각인된다. 드러난 이미지를 뒤로하고, 음악적 측면에서 바라본 톰 웨이츠는 재즈, 블루스 혹은 아방가르드 장르를 기반으로 비트 문화와 보헤미안의 낭만적인 정서를 자신만의 음악으로 이식한 계승자이다. 그렇게 톰 웨이츠는 자신의 활동 영역 안에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궤적을 그어 오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채로운 넘버들 중에서도 그의 음악사 속 중기를 대표하는 앨범인 《Rain Dogs》, 그중에서도 그 세계관의 정수가 담긴 동명의 수록곡 ‘Rain Dogs’는 어쩌면 그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곡이다.
‘이보다 처량한 음이 있을까?’ ‘Rain Dogs’의 인트로 프레이즈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은 저절로 이러한 반응을 뱉어 내게 한다. 그 이후 이어지는 테마 선율은 카니발풍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것 같기도 하고, 낡은 카바레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 같기도 하다. 이 선율은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끈질기게 반복되며 곡 특유의 정서를 쌓아 간다. 장난스러움과 처연함, 절대 어우러질 수 없는 두 감정선이 얽히며 잔인한 농담과 불행을 훈장으로 여기는 자들이 가득한 뒷골목을 떠올린다. 일반적으로 노래는 가사로 주제를 드러내지만, 이 곡은 텍스처 면에서도 세계관의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 내고 있다. 하지만 이 점이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 준 것은 아니다. 싱어송라이터라는 호칭조차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그는 가사로 세계를 지어내는 시인이다.
비 맞은 개들, 고장 난 시계와 난파된 열차, 와인과 럼주, 쓰레기 수거꾼과 택시. 이처럼 ‘Rain Dogs’ 속엔 뜻을 숨긴 시적 표현이 즐비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단어들을 한 줄로 풀어낼 실마리가 필요한데, 그것은 이 곡의 핵심적인 이미지인 ‘비 맞은 개’이다. 앨범 발매 당시 톰 웨이츠는 비에 젖어 떠도는 개들을 언급한다. 비가 내리면 거리에 남아 있는 냄새가 씻겨 내려가, 개들은 방향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게 된 ‘비 맞은 개’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처럼 비 맞은 개들은 삶의 방향을 잃거나 혹은 주류 사회에 섞이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의 삶과 닮아 있다. 무심코 시선을 둔 곳에 있던 개의 모습에서 톰 웨이츠는 그런 방랑자들의 삶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
Inside a broken clock
고장 난 시계 안에서
Splashing the wine with all the rain dogs
모든 비 맞은 개들과 함께 와인을 튀기며
Taxi, we'd rather walk
택시는 됐어, 우린 걷는 편이 나아
(중략)
The rum pours strong and thin
럼주는 독하고 묽게 쏟아진다
Beat out the dustman with the rain dogs
비 맞은 개들과 함께 쓰레기 수거꾼을 물리치자
Aboard a shipwreck train
난파된 열차에 올라탄 채
Tom Waits, ‘Rain Dogs’ (1985)
그 개들의 주변을 둘러싼 것들 역시 방랑자의 삶과 맞닿아 있다. 기능을 잃어버린 고장 난 시계와 난파된 열차, 삶을 달래기 위해 들이켜는 싸구려 와인과 럼주, 개들이 어질러 놓은 밤을 치우며 아침을 열고자 하는 쓰레기 수거꾼, 목적지가 없는 이들에겐 탈 이유가 없는 택시. 곡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모두 낭만적이면서도 비루한 아웃사이더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 달갑지 않은 사회의 시선을 등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톰 웨이츠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는 따뜻한 말과 공감으로 그들을 품어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따끔하게 훈계하며 이상적인 삶의 방향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그는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말뿐인 위로나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대신 그곳에 함께 있어 주기를 택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톰 웨이츠는 비트 문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 문학 거장들의 작품 배경으로 자주 사용된 밤거리에 익숙했으며, 그곳을 정처 없이 떠돌던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다. 실제로 피자 가게와 식당에서 일하며 마주한 손님들의 말을 받아 적고,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와 생각들을 음악으로 그려 낸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호소력은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자연스레 묻어난 현장감과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한 그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그려 낸 풍경의 한자리에 자신도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가사에서 톰 웨이츠는 ‘나 역시 비 맞은 개’라고 노래하며, 개들과 함께 모여 체온을 나누고자 한다. 스스로를 ‘비 맞은 개’들과 같은 자리에 둠으로써, 그저 하나의 삶을 관찰한 제3자가 아닌 부랑자들과 함께한 한 등장인물이 된 것이다.
Huddle a doorway with the rain dogs
비 맞은 개들과 함께 문간에 웅크려 모여라
For I am a rain dog too
나 역시 비 맞은 개이니까
Tom Waits, ‘Rain Dogs’ (1985)
그렇게 톰 웨이츠의 ‘Rain Dogs’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간 어두운 거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텁텁하고 축축한 이야기의 끝에 그는 집을 내어 주는 대신 함께 자리를 지켜 주기를 택했다. 후렴구 마지막 문장인 누군가의 속삭임 ‘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가 화자를 향한다는 점에서, 방랑자들과 함께하기로 한 톰 웨이츠의 운명 역시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가혹하다. 그럼에도 같은 운명 속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며, 그 곁에 머무는 선율이 있다는 것은 작은 위안이 되어 주는 듯하다. 이 곡은 아웃사이더들과 그들의 삶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외로운 자들을 위한 짙은 블루스이다.
요즘 톰 웨이츠의 노래를 들으며 자주 생각에 잠긴다. 흘러간 생각들을 다시 짚게 하는 독서와 깊은 향을 음미하는 커피가 잘 어울리는 가을밤에, 그의 이야기가 더 오래 남는다. ‘Rain Dogs’는 이미지 하나하나를 짚어 보며 숨겨진 이야기를 완성하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그의 예리하면서도 감성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곡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은 그의 1집 《Closing Time》의 두 번째 트랙 ‘I Hope That I Don’t Fall in Love with You’ 속 가사를 곱씹었던 경험이 있다. 사랑이라는 흔한 주제를 다루지만, 서사의 구조 속에서 변해 가는 한 남자의 심리가 잘 나타난다. 이야기 속 남자는 바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너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것이 사랑이 가져다줄 고통 때문인지, 결국 서로를 떠날 운명 속에서 서글퍼질 감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도 차분하게 자신의 진심을 감추기 바쁘다. 하지만 그녀가 사라진 순간 ‘난 너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지만, 마지막엔 고백을 빙자한 낙담을 뱉어 내는 그가 한심스럽지만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진심을 전하지 못한 그 감정은 분명하게 와닿아 여운을 남겼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한 남자의 작고 의미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마저 선명히 남길 수 있는 그의 세심함에서, 나는 체온을 느낀다. 어제는 그의 2집 《The Heart of Saturday Night》을 들으면서 잠에 들었다. 한동안 그가 해 주는 이야기에 홀려 밤을 삼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