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최신글
-
[Opinion] 예술가와 비평가, 그리고 미학자 [예술 철학]
문화 예술계에도 예술이라는 공통된 몸을 지니면서도, 각각 다르게 뻗어 나온 머리들이 있다. 예술가와 비평가, 그리고 미학자가 그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흥미로운 동물이나 수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저승길 초입에 서 있는 관문을 지키는 파수꾼개, 케르베로스는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동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저승으로 향하는 청동문 앞에서 들어오려는 원혼들을 위로하고, 산 자가 난
-
[Opinion] ‘신파’의 눈물과 함께 흘러 내리는 대중문화 [문화 전반]
국어 사전에 따르면 ‘통속적이다’라는 말은 세상에 널리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쁨, 슬픔, 분노 등 모든 예술이 비추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모든 감정들은 거시적으로 통속이라 할 수 있다. 신파적 장르가 표현하고자 하는 통속성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울한 날이면 꼭 눈물, 콧물을 쏙 빼야만 개운해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집안에서 방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조명을 어둡게 한 뒤, 휴지를 충분히 준비하고는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 한결 살 만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
-
[Opinion] 미학을 품은 예술, 예술을 낳는 미학 [예술철학]
예술과 미, 작품과 관념을 별개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것은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미학이 추구하는 미적인 것은 자연미와 같은 내용 없는 형식적인 것이고, 예술학이 추구하는 예술적인 것이 내용을 가진 예술미라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글을 기고하면서 제목 끝에 [예술철학]이라고 꼬리표를 붙였다. 그러면서 정작 예술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예술과 관련하여 그저 어렵게, 복잡하게, 형이상학적으로 토로하면서,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이나 누구나 알만한 작가들, 작품들을 거
-
[Opinion]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가난한 예술가들 [문화전반]
누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가난한 예술가들을 벼랑에 몸을 던지게 만드는가. 뛰어내린 이들의 삶을 제물 삼아 누가 이익을 취하고 있는가.
예술가가 가난에 허덕인 역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술책에 거론되는 예술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일생을 궁핍하게 살았다. 고흐,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브라크 등 해외 사례부터 박수근, 이중섭 등 국내 사례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
[리뷰]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 모놀로그 아이[공연]
변비’라는 소재에 빗대어 삶의 묵은 기억들을 헤집어보려는 시도는 이 연극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할 만하다. 아울러 모놀로그라는 도전 역시 신선했다. 이 연극을 통해 그간 묵혀놓았던 똥들에게 안부 인사를 던질 수 있겠다. 연극 초반부에 배우가 직접 관객에게 물었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그것은 정말 안녕하십니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강이 하늘로 흐를 때, 명절 떡쌀에 햇살이 부서질 때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흐르는 안개가 아마포처럼 몸에 감길 때, 짐 실은 말 뒷다리가 사람 다리보다 아름다울
-
[Opinion] 왜 말을 못하냐는 이에게 [예술철학]
우리의 언어로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을 남자와 남자를 마주한 남자로, 다른 주체로서 구분하는 것조차 번거로움을 느끼게 된다
한 쌍의 연인이 벤치에 앉아있다. 남자가 옆에 앉은 남자에게 지그시 속삭인다. 사랑해. 옆에 앉은 남자는 빙긋 웃으며 짓궂은 질문으로 답한다. 얼만큼? 남자는 고민한다. 남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지금의 마음 상태를 설명할 수 있을 법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상황
-
[Preview] 대학로 연극, 순수창작 배고파 시리즈 10탄, 모놀로그 아이(i)
“ 우리가 과거의 아픔을 잊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사랑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까요. 내가 나를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까요.”
개인적으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에서는 아무런 무대 장치나 연출 없이, 오로지 배우의 연기에만 의존하여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전개가 가능하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이것이 배우 혼자 말하는 방백, 독백으로 표현된다고 배웠던 것 같다. 이러한 연극적
-
[Opinion] 무엇을, 어디까지 괜찮다고 할 수 있나 [문화전반]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예술적 자유는 딱 거기까지라는,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오히려 무엇을, 어디까지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획일적인 기준을 쌓는 것은 폭력적인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예술 표현을 어디까지라고 규정하려는 접근 보다, 예술 표현이 아니라고 할만한 것들을 제거하는 식의 부정신학적 접근은 어떨까.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그건 좀 아니잖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런 종류의 말을 종종 듣는다. 저런 종류의 말이란, 으레 당신과 나 사이의 암묵적 기준 기저에 공통된 인식이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