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에 개봉한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Céline et Julie vont en bateau)>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핵심 감독 중 한 명인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가 연출한 작품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헨리 제임스의 고딕 소설을 모티브로 삼고, 주연 배우인 줄리엣 베르토와 도미니크 라부리에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여 인물들의 입체적인 매력을 더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영화적 관습을 깨는 독창적인 구조와 실험성을 인정받아 1974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현대 영화사에서 문학성과 영화적 유희가 가장 완벽하게 만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술사 셀린느와 도서관원 줄리는 우연한 추격전을 시작으로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한 남성과 두 여성, 그리고 위협에 처한 아이가 등장하는 미스테리한 이야기가 무한히 반복되는 저택에 호기심을 품게 되면서 더욱 깊어졌다. 저택을 빠져나온 뒤 주머니 속에 있던 신비한 사탕을 먹으면 저택 안에서 벌어진 기묘한 이야기의 파편들이 다시 재생되고, 두 사람은 반복되는 꿈을 보듯 그 환상의 세계를 재경험한다. 마치 또 다른 현실로 들어서듯 저택에 발을 들여 이야기를 하나씩 조각 맞춰 나가던 셀린느와 줄리는 마침내 사건에 직접 개입해 그 비극적인 결말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환상과 미스터리, 유머가 어우러진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는 스토리텔링의 본질과 상상력, 그리고 픽션과 현실 사이의 유연한 경계를 탐구한다.
마법 같았던 우정의 시작
셀린느와 줄리의 첫 만남은 마치 마법처럼 시작했다.
도서관 사서 줄리는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마법 책을 읽던 중, 소지품을 잇달아 떨어뜨리며 지나가는 마술사 셀린느를 발견한다. 줄리는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쫓아가고, 셀린느는 줄리가 자신을 추격한다고 오해해 계속 달아나며 해프닝 같은 추격전이 벌어졌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은 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서로와 가까워지면서 장난기 넘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인물이 상대의 세계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는 이 첫 만남은, 둘만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셀린느와 줄리의 깊어진 우정는 서로의 옷과 신분을 바꿔 입어 상대의 연인을 만나거나 직장에 대신 나가는 등의 파격적이고 유희적인 공모로 발전한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은 미스터리한 저택에 함께 빠져들어 이야기를 조각 맞춰 나가며, 수동적으로 보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힘을 합쳐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혼자라면 갇혀 있었을 일상과 정해진 비극에서 벗어나, 서로를 신뢰하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함께 넘나드는 이들의 모습은 우정이 가진 가장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힘을 보여준다.
수동적 관객에서 결말을 바꾸는 능동적 주체로
저택 내부에서 펼쳐지는 사건은 음산한 분위기와 비밀스러운 가족, 그리고 희생되는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19세기 고딕 소설 특유의 비극적 클리셰를 그대로 닮아 있다. 결말과 대본이 이미 완성되어 있어 인물들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자 닫혀있는 픽션임을 의미한다.
처음 저택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셀린느와 줄리는 그저 반복되는 비극을 구경하는 수동적인 관객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린 소녀가 비극적으로 희생될 운명임을 깨달은 셀린느와 줄리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제3자의 위치를 벗어나 이야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완성되어 있던 비극의 대본을 비틀고 소녀를 구출해낸다.
이는 두 사람의 우정이 관습적으로 정해진 비극적인 운명마저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가 우리에게 전하는 우정이란, 서로의 삶에 즐거움을 주고 상상의 배를 함께 타며 새로운 현실을 항해하는 자유로운 에너지이다.
정해진 비극적 서사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대신, 사탕을 나누어 먹고 힘을 합쳐 비극적 이야기의 결말을 바꿔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우정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