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이 말의 화자는 참으로 친절하지만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다', '찾아가겠다' 이 두 말은 한편으로는 따뜻해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말보다 차갑지 않은가. 누군가는 비가 오는 날, 방 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눈이 오는 날, 쌓인 눈의 소복한 소리를 좋아한다. 또 누군가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햇빛이 쨍한 날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잔뜩 낀 구름 사이로 피어 나오는 햇빛과 바람을 좋아한다.
대체 어느 날이 그 사람이 말하는 좋은 날씨인지 청자는 알 수 없다. 청자와 화자가 생각하는 '좋은 날씨'가 다르더라도 청자가 생각하기에 '오늘 이 정도면 날씨가 좋은 편이지!'인 날에 화자를 보러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화자는 청자에게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내가 당신을 찾아가겠다고'
그렇기에 청자 입장에서는 화자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 정도 비면 날씨가 좋은 편일려나?', '이 정도 바람이면 너무 쎈 바람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언제 올 지 모르는 화자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도대체 청자는 화자에게 어떤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긴 벌을 받아야 하나 생각하며 이 책이 과연 사랑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은섭'과 '해원'의 사랑 관계가 아닌 '해원'과 '보영'의 우정 관계에 더욱 눈이 갔다.
눈처럼 쌓인 오해
오해는 눈을 닮았다. 처음 내리고 쌓인 눈은 빗자루 몇 번이면 쉽게 쓸어낼 수 있다. 하지만 치우지 않은 눈 위로 다시 눈이 쌓이고 그 눈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그 눈은 단단한 얼음이 된다.
사람 사이의 오해도 그렇다. 처음에 쌓인 오해는 말 한 마디면 쉽게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 한 마디를 어렵게 미루고 아낀다. 내가 굳이 먼저 설명을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고 이야기해주기를 기다리면서 오해를 치우지 않고 쌓아만 둔다. 그렇게 쌓인 오해 위에 다시 오해가 쌓인다.
처음의 작은 오해 입자에 서운함과 추측이 쌓이면서 그 오해는 너와 나 사이의 벽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긴 벽을 보면서 오해를 푸는 것보다는 왜 지금에서야 그 이야기를 하느냐는 또 다른 오해가 벽을 잠그기까지 한다.
해원과 보영의 사이에는 작은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둘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단한 벽이 되었다. 보영은 해원에게 따뜻한 차 한 잔 하자고 하면서 눈을 녹일려고 하지만 이미 눈 속에 있는 해원은 날씨가 춥다고 한다.
'다음에. 다음에 날씨 좋을 때 보자.'
이해를 두 번 해도 일만 나면 오해
해원의 입장에서도, 보영의 입장에서도 서운한만 더 쌓인 대화이다. 아마 누군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해원과 보영 모두 '이해'만 하면서 날씨가 좋아져서 이 '오해'가 녹기만을 기다릴 수 있다. '오해'의 반의가 '이해'가 아닌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혹은 모르는 척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을 이해만 하면 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를 한 번 하고, 또 다시 한 번 더 하면서 '나는 이 사람을 이해하고 있어.'라는 내 생각 '일'을 더하여 '오해'를 만든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생각 하나가 아니라 대화가 필요하다. 나의 말 한 마디를 나의 이해 두 번에 더하는 것이 아닌, 나와 너의 말 두 마디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더해야 하는 것이다. 이해에서 오해로 가는 그 빈 칸에 한 마디가 아니라 대화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대화는 나뿐만 아니라 너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약 여섯 다리를 건너면 다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고전 문학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더 가까운 관계, 혈족 등을 육촌이라고 한다.
이해 두 번에 말 두 마디를 더 하면 우리는 다 만날 수 있고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날씨가 좋아지기 전에, 찾아가겠어요.
우리는 왜 관계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일까.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되고 내가 먼저 말을 하면 되는 것을 이미 수많은 관계의 상처들로 알면서도 말이다.
이미 쌓인 벽의 오해 앞에서 그 사람에게 더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벽에 다가가고 그 사람 역시 벽에 다가왔다면 우리의 말 한 마디는 벽을 넘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 그 벽이 있던 곳을 보면 좋아진 우리의 관계처럼 좋아진 날씨로 벽은 녹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날씨가 좋아지기 전에, 당신을 찾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