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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CULTURE FIELD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직접 등록 조영현

김종관 감독의 다큐멘터리 〈졸업앨범〉은 “1980년 한국”이라는 자막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부제는 ‘선생님을 기다렸다 1980. 5. 27’이다. 그 해에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기대했으나 봄은 오지 않았다. 봄은 계절 주기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기다림’을 뜻하기도 한다. 기다림은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에 한국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민주화였다. 그러나 민주화에 대한 기대는 또다시 군홧발에 짓밟히고 만다.

 
〈졸업앨범〉은 이 시기에 광주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민주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 열망의 좌절과 그로 인해 평생을 짊어져야 했던 분노와 고통도 드러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하지만, 그 시절 겪어야만 했던 고통이 어느 순간 삶을 뚫고 솟아난다.


1980년 5월, 전주 신흥고등학교 학생들은 광주에서 벌어지던 민주항쟁과 계엄군에 의한 잔혹한 진압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신흥고 학생들은 고등학생이란 신분에도 광주와 함께 신군부 세력에 저항할 계획을 세운다. 이는 신흥고등학교 학생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전주의 여러 고등학교와 대학교 역시 대규모 항쟁을 위해 연대한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계엄군에 의해 신흥고 학생 박영화를 제외한 주동자가 모두 체포되고, 연대 시위는 사전에 막히고 만다.


이제 신흥고 주변을 계엄군과 전투경찰이 둘러싸고, 학생들의 시위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신흥고 선생님들 역시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쏟아져 나갈까 봐 사력을 다해 학생들을 막았다. 학생들은 분노했고, 시위를 이어가려 했으나 결국 그 계획은 좌절되고 만다. 당시 교감이었던 정옥동 선생님이 증언하는, 이 긴박했던 순간을 들어보자. 당시 35사단 전북 지역 계엄사령관은 “완전히 불바다를 만들어라. 아이들까지 다!”라는 상부 명령을 정옥동 선생님에게 들려준다. 이어 당시 시위 진압을 위해 전투경찰로 투입됐던 김상회는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를 메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광주에 이어 무차별 대학살이 벌어질 수도 있던 순간이었다.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은 모조리 계엄군 영창에 끌려가고 만다. 그곳에서 모진 폭행을 당하고 구속되어 있던 순간을 신흥고 시위 주도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허천일은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되새긴다. “학생들이 구속되어 있을 때 선생님은 한 분도 오지 않았다.” 신체에 가해진 폭력은 시간이 흐르면 지워지기 마련이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법이다. 그렇게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음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졸업앨범〉이 묘사하는 것은 어떤 위대함이 아니다. 아니, 그 시절 학생들은 분명히 위대했다. 그래도 멍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학생들 가운데 몇몇은 크나큰 실망감에 선생님에게 항의하며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학교를 버린 것이다. 다큐멘터리 〈졸업앨범〉이 담아내는 놀라운 순간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상처 입고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고통 가운데 일부를 치유하려는 데 있다.

 
다큐멘터리 팀은 1980년의 기억을 고통스럽게 담고 있던 이들과 당시 선생님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렇게 만난 이들은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그 시절 새겨진 고통 가운데 일부를 해소한다. 해원(解冤)은 사람의 넋만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삶의 고통 가운데 일부나마 해소한 신흥고 학생들은 이제 나이 든 어른이 되어 한국 사회의 위기였던 내란을 막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졸업앨범〉은 오늘날 다큐멘터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는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열린 비극 경연대회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은 소포클레스에 이르러 인간 행위 중심의 고대법과 정황을 고려하는 현대법의 대립을 다룬다.


이러한 대립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인 《안티고네》는 아테네라는 도시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한 논점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비극 삼부작과 함께 공연했던 희극은 아예 당시 활동하던 위정자의 문제점을 직접 다루기도 했다. 이를 통해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민주주의를 더 잘 운영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렇기에 페리클레스는 당시 최하층 빈민에게도 일당까지 제공하면서 연극 관람을 장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졸업앨범〉이 제시하는 내용은 아주 소수의 상업영화만이 닿을 수 있을 지점을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이 오늘날 가장 적절하게 담아낼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고통의 기억과 상흔을 담아낸 다음 이를 조금이나마 치유하는 것은 그 당사자들이 직접 행동하고 길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더 잘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 정옥동 선생님의 진실한 말 한마디가 제자들의 상처를 얼마나 잘 보듬는지는 다큐멘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짜 눈물이었고, 그 눈물이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신흥고 학생들이 ‘기대’했던 기다림이기도 할 것이다.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는 자신과 타인 등 인간 내면의 부조리와 갈등 그리고 고뇌를 해소하는 내용을 수준 높게 표현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와 언론의 문제 및 한계 또한 다룬다. 〈졸업앨범〉은 휘슬러영화제의 내적, 외적인 면에서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뛰어난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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