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아이들은 언제 놀아요?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초등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고 학원에서도 성적이 좋았다. 영어 문법을 묻거나 긴 지문을 읽히면 좀처럼 막히는 일이 없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배운 것을 차근차근 꺼내 답했고, 정답이 분명한 질문 앞에서는 망설이지 않았다. 출국을 앞두고 어느 날 스몰 토크를 연습했다. 현지에서 처음 만난 친구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었다. 이름과 사는 곳, 좋아하는 음식 같은 질문이 지나가고 아주 쉬운 문장이 나왔다.
What do you do in your free time?"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I have no free time."
처음에는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줄 알았다. 학교와 학원에 가지 않을 때는 뭘 하는지, 주말에는 뭘 하며 노는지 다시 물었다. 어려운 단어도 문법도 필요 없는 질문이었는데 앞서 까다로운 문제를 풀 때보다 대답이 더디었다.그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질문에는 답을 잘하는 아이가 "넌 뭘 하면서 노니?"라는 질문 앞에서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교육 현장에서 15년 동안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비슷한 순간을 여러 번 보았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시간이 조금 남으면 휴대폰부터 찾고, 기다려야 할 일이 생기면 화면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휴대폰과 게임도 분명 놀이다.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보며 웃는 시간까지 문제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다만 화면을 치운 뒤 "이제 마음대로 놀아"라고 했을 때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를 만나면 마음에 걸렸다.우리는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정작 놀 줄 모르는 아이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보다가 오래전 그 아이의 대답이 떠올랐다. 영화는 초등학생 선과 지아의 우정을 따라간다. 가까워졌다가 어긋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두 아이의 관계는 계속 모양을 바꾼다. 카메라는 그 관계를 어른의 언어로 정리하거나 누가 옳은지 판결하지 않는다. 아이들 곁에 머물면서 어제까지 붙어 다니던 아이들이 오늘은 서로를 외면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다 선이 어린 남동생 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친구와 싸우고도 왜 다시 함께 노느냐는 누나의 말에 윤은 되묻는다.
"그럼 언제 놀아?"
아이의 말인데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어른은 다툼이 생기면 원인을 찾고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진다.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관계가 계속 힘들다면 그 친구와 놀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다른 계산이 있을 수 있다. 오늘 싸웠더라도 다시 놀고 싶고, 그러려면 어느 순간 싸움을 그쳐야 한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그렇게 놀면서 관계를 만든다. 가까워졌다가 토라지고, 편을 가르기도 하며 다시 말을 건다. 놀이가 공부를 마친 뒤 남은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익혀가는 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영화는 아이들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다시 I have no free time이라고 말했던 아이를 생각했다. 문법적으로는 완벽한 문장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영어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하루에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동사가 많다.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며 숙제를 한다. 책을 읽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기도 한다. 뒤처지지 않게 시간을 나누다 보면 빈칸이 생겼을 때 무엇을 더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를 채워놓고 어느 날 묻는다.
"요즘 애들은 왜 놀 줄을 모르지?"
어쩌면 아이보다 시간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질문이다. 놀이는 정답을 찾아가는 시간과 조금 다르다. 무엇을 할지부터 정해야 하고, 친구와 규칙을 만들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쳐야 한다. 서로 하고 싶은 것이 다르면 어떻게든 합의해야 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도 지나야 한다. 심심해서 주변을 뒤적이다가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기도 한다. 처음의 아이가 유난히 공부만 아는 아이였던 것은 아니다. 어려운 문법에는 규칙이 있었고 독해 문제에는 답이 있었다. 열심히 배운 만큼 답을 잘 찾아냈다. 그런데 자유 시간에는 정답지가 없었다.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정해주지 않은 순간이 오히려 낯설었다. 휴대폰이 아이들의 놀이를 빼앗았다고 말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하지만 화면을 없앤다고 놀이가 저절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거실에 누워 빈둥거리면 숙제부터 확인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며, 주말이 비면 갈 만한 곳을 찾아 일정을 만드는 쪽은 대개 어른이다.
아이의 심심함을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견디지 못하는 셈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잠깐 멍하니 있어도 되는 시간, 친구를 만나 특별한 목적 없이 돌아다녀도 되는 시간은 시간표에 적기 어렵다. 무엇을 배우는 시간인지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쉽게 낭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놀기 위해서는 그런 빈칸이 먼저 있어야 한다.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오래 보면서 이제는 무엇을 배우는지만큼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궁금해졌다. 자유 시간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친구를 만나면 무엇을 하며 노는지, 심심할 때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묻게 된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도 거창하지 않다. 아이의 일주일에서 몇 시간쯤은 목적을 붙이지 않고 남겨두는 것, 심심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할 일을 찾아주지 않는 것, 친구와 실컷 놀고 돌아온 아이에게 그 시간이 무엇에 도움이 되었는지 묻지 않는 것이다. 놀 시간을 주었다면 노는 방법까지 정해줄 필요는 없다. 어른이 지켜야 할 것은 안전의 선이고, 그 안의 빈칸까지 채울 필요는 없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그 아이에게 나는 자유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영어로 말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지금 다시 그 수업을 한다면 문장 하나를 더 알려주기 전에 먼저 시간을 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할지는 스스로 찾아도 되는 시간 말이다. 아이가 곧바로 무엇인가를 시작하지 않아도 기다려야 한다. 심심하다고 하면 조금 더 심심하게 두어도 된다. 친구와 별것 아닌 일을 하며 오후를 보내고 돌아왔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어야 한다.
오래전 교실에서 한 아이가 말했다.
"I have no free time."
그리고 《우리들》의 아이가 묻는다.
"그럼 언제 놀아?"
아이의 시간표를 짜는 어른이라면, 그 두 문장 사이에 놀 수 있는 빈칸 하나쯤은 직접 만들어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