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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인데,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영화 <드림 시나리오> 가 경고하는 것!

직접 등록 박명관

내 얼굴인데, 내가 한 일이 아니다


화면 속에 내가 있다. 가본 적 없는 곳에서 해본 적 없는 말을 하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영상 한쪽에는 ‘AI로 제작된 콘텐츠’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가짜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할까.


처음에는 딥페이크의 가장 큰 위험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AI가 만들었다고 분명히 표시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면 피해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림 시나리오〉를 보고 나면 질문이 조금 달라진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이 가짜임을 알아도, 그 이미지를 완전히 보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드림 시나리오〉에서 대학교수 폴 매슈스(니컬러스 케이지)는 어느 날부터 모르는 사람들의 꿈에 나타난다. 처음의 폴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남의 꿈 한구석에 서 있거나 무심하게 지나간다. 우스운 것은 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 평범해서다. 벗겨진 머리, 수염, 어정쩡한 몸짓을 한 교수가 아무 이유 없이 수많은 사람의 꿈을 공유한다.


니컬러스 케이지는 이 황당한 설정을 과장해서 밀어붙이지 않는다. 폴은 조금 둔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는 못한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아니지만, 정작 유명해질 만한 일을 해낸 사람도 아니다. 그 어긋남 때문에 영화의 기묘함은 꿈보다 현실에서 커진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폴은 자신이 한 일로 유명해진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본 ‘폴’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이다. 실제 인물과 그 인물을 닮은 이미지가 처음으로 갈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꿈에서 만나는 폴의 성격이 달라진다. 현실의 폴에게는 그 변화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사람들도 자신들이 본 것이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폴을 대하는 태도는 전과 같지 않다. 사람들이 꿈을 현실로 착각해서가 아니다. 현실이 아니라고 알고도 이미 본 얼굴에 반응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관객까지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현실의 폴이 무엇을 했고 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본 폴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듣고, 그 이미지가 덧씌워진 얼굴을 다시 본다. 영화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얼굴 자체의 변화라기보다 그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다. 폴은 그대로인데, 폴이라는 얼굴의 의미가 더는 폴에게만 속해 있지 않다.


여기에서 〈드림 시나리오〉는 딥페이크와 묘하게 가까워진다. 물론 둘은 같은 현상이 아니다. 영화 속 꿈에는 폴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만들어낸 제작자가 없다. 생성형 AI로 만든 영상에는 얼굴이나 목소리를 선택하고 결과물을 생성해 유통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차이 때문에 영화의 막연한 악몽은 현실에서 오히려 더 구체적인 질문이 된다. 누군가의 얼굴로 존재하지 않았던 그 사람을 만들었다면, 그 일을 할 권한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진 한 장이 다른 ‘나’의 재료가 될 때


이 질문은 이미 현실의 피해와 맞닿아 있다. 경찰청은 2024년 1월 1일부터 10월 25일까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964건을 접수·수사해 피의자 50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411명, 81.2%가 10대였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발표한 ‘2024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그해 지원한 피해자는 1만305명이었다. 합성·편집 피해는 1384건으로 전년 423건보다 227.2% 증가했고, 그 피해의 92.6%가 10대와 20대에 집중됐다. SNS 프로필 사진이나 졸업사진, 여행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남기는 것이었다. 생성 기술은 사진에 전혀 다른 용도를 더했다. 얼굴을 떼어내 실제로 하지 않은 행동과 결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때의 나를 기록했던 사진이 존재한 적 없는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때 피해를 결정하는 것은 합성의 정교함만이 아니다. 조악해서 누구나 가짜임을 알아보는 이미지라고 해도, 당사자가 허락하지 않은 얼굴이 성적인 이미지에 붙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얼마나 진짜 같은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피해다.


성적 딥페이크에서는 법의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다.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2024년 개정으로 허위영상물이나 그 복제물을 소지·구입·저장하거나 시청하는 행위 역시 처벌 대상이 됐다. 그러나 성적인 허위영상물 밖으로 나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누군가의 얼굴로 상품을 추천하는 광고를 만들거나, 실제로 하지 않은 정치적 발언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만들어낼 수 있다. 유명인의 외형과 말투를 빌린 패러디도 있을 것이다. 사안에 따라 초상권, 명예훼손, 개인정보나 민사상 인격권 등이 문제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목적과 맥락의 이미지를 성적 딥페이크와 똑같은 잣대로 다루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적어도 가짜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면 어떨까.



가짜라고 쓰는 것과 허락받는 것


한국의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제31조는 생성형 AI 결과물에 관한 투명성 의무를 규정한다.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의 결과물에는 AI에 의해 생성됐다는 사실을 표시해야 하며,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이미지·영상 등에는 이용자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를 고지하거나 표시하도록 한다. 이런 표시는 적어도 한 가지 질문에는 답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진짜인가.’

 

하지만 다른 질문은 남는다. ‘저 사람은 자기 얼굴이 저렇게 사용되는 것을 허락했는가.’ 한 사람의 얼굴로 광고 영상을 만든 뒤 ‘AI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표시했다고 해보자. 소비자는 그 사람이 실제로 촬영한 광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당사자가 자기 얼굴로 그 상품을 팔도록 허락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진위와 동의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드림 시나리오〉에서 폴이 겪는 곤경도 이 갈라짐을 생각하게 한다. 현실의 폴과 사람들이 기억하는 폴 사이에는 거리가 생기지만, 그 거리를 없앨 권한은 정작 폴에게 없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그 얼굴에 붙는 의미까지 소유하지는 못한다. 영화에서는 그 상황을 만들어낸 사람조차 없다.


AI는 여기에 행위자를 추가한다. 누군가는 얼굴이나 목소리를 선택하고,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 때로는 그것으로 돈을 번다. 우연히 떠도는 꿈과 달리 현실의 이미지는 누군가의 선택을 거쳐 만들어진다.


최근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은 얼굴이 아닌 다른 식별 요소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 8월 31일 제이슨 이스벨, 데이비드 로워리, 가이 포사이스, 에두아르도 카예는 AI 음악 생성 서비스 수노를 상대로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수노가 음악가들의 이름과 식별 가능한 특징을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며 여러 지역의 퍼블리시티권 등에 근거한 주장을 펴고 있다. 저작권 침해를 청구 원인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여러 생성형 AI 분쟁과 결이 다르다. 아직 법원의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누가 옳은지는 현재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분쟁이 법정에 가져온 질문은 눈여겨볼 만하다. 어떤 작품을 AI가 학습했는가와는 조금 다른 문제, 곧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알아보게 만드는 특징을 누가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폴이 잃어가는 것 역시 얼굴 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들이 그 얼굴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를 통제할 가능성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형성된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얼굴에 허락을 받을 것인가


여기까지 오면 간단한 해답이 하나 떠오른다. 얼굴이나 목소리를 AI로 재현하려면 언제나 당사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그 원칙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곧 다른 문제가 생긴다. 정치인을 풍자한 AI 영상에도 당사자의 허락이 필요할까. 배우나 유명인의 이미지를 변형한 패러디는 어떨까. 보도와 비평, 역사적 인물의 재현까지 동일한 사전동의 원칙으로 묶는다면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다. 상품 판매를 위해 일반인의 얼굴을 가져다 쓰는 일과 공적 인물을 풍자하는 일을 같은 행위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동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답이 되기는 어렵다. 실제 인물을 얼마나 식별 가능하게 재현했는지, 하지 않은 행동이나 발언을 만들어냈는지, 상업적으로 이용했는지, 풍자·비평·보도처럼 보호할 필요가 있는 표현인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어느 범위까지 삭제나 사용 중단을 요구할 수 있을지도 그 과정에서 다뤄져야 한다.

 

경계가 복잡하다고 해서 아무 경계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AI로 만들었다고 밝혔는가’만 확인해서는 그 경계를 그을 수 없다.


이쯤에서 다시 〈드림 시나리오〉의 폴을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수많은 사람이 똑같은 남자를 꿈에서 본다는 설정만이 아니다. 폴은 계속 폴인데,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폴이 점점 그에게서 멀어진다는 데 있다. 니컬러스 케이지의 어정쩡하고 평범한 얼굴은 그래서 묘한 기능을 한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으킬 것 같지 않았던 얼굴이 반복해서 타인의 머릿속에 나타나는 동안, 얼굴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보는 방식만 달라진다.


관객도 그 과정 밖에 서 있지 못한다. 우리는 폴이 실제로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경험했다고 말하는 또 다른 폴을 계속 의식한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이 그 사람이 실제로 한 일을 아는 것인지, 그 사람에 관해 반복해서 본 이미지를 기억하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영화는 AI를 다루지 않는다. 폴의 얼굴을 훔쳐 영상을 만든 사람도 없다. 그런데 영화가 만든 상황은 생성형 AI 시대에 뜻밖에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내 얼굴이 나에게서 떨어져나가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의미를 얻는 상황이다. 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다른 폴을 보았다. 화면 속의 내가 입을 움직인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끝낸다. 구석에는 AI로 만들었다는 표시가 선명하다. 이제 누구도 그것을 진짜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화면 속 얼굴은 내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