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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CULTURE FIELD

[전시] 죽음을 지나, 다시 삶으로 - 김하녹 개인전 <구명의 서>

관객의 마지막 말이 부고를 덮고, 회화의 조각이 각자의 삶으로 건너가는 참여형 전시

직접 등록 박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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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녹 개인전 <구명의 서> 포스터.

이미지 제공: 김하녹

 

 

“누구보다도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죽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김하녹 작가의 개인전 <구명의 서>가 2026년 9월 18일까지 서울 성북구 헤리시에서 열린다. 2년 만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2025년 11월 20일 진행된 ‘부고 문자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자신의 죽음을 가정한 부고를 전하고, 그 소식을 받은 이들이 남긴 말을 마치 유령처럼 바라보았다. 죽음을 미리 통과해 본 경험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구명의 서>는 죽음과 애도를 완결된 사건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은 말과 손길을 통해 작품 안으로 들어오고, 전시가 변화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한 사람의 가상 부고는 여러 사람의 마지막 말로 덮이고, 완성된 회화는 관객이 조각을 떼어갈수록 조금씩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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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에 설치된 <부고문자>. 사진: 이서영

 

 

전시의 첫 공간은 죽음을 다루는 암실이다. <부고문자>는 단채널 영상과 프로젝션, 아크릴 거울, 웹 아카이브와 관객 참여로 구성된다. 분절되고 왜곡된 부고의 문장들이 빛과 함께 벽을 떠돌며, 한 사람의 부재를 반복해서 알린다.


관객은 투명 메모지에 자신의 ‘마지막 말’을 적어 부고의 잔상 위에 남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 삶의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문장, 혹은 지금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 부고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575A6027 (1).jpg관객이 <부고문자> 위에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있다. 사진: 이서영

 

 

전시가 계속될수록 최초의 부고는 관객들의 문장에 가려져 점차 흐릿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던 자리는 살아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모이는 장소로 변한다. 죽음을 상상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삶을 응시하게 하고, 개인의 애도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동의 기록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전시는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두운 방을 지나 다시 문을 열면, 밝은 중앙 전시장에 네 점의 <삶의 파편: 너울 1-4>이 나타난다. ‘너울’은 기상 관측만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거센 파도다. 작가는 예고 없이 밀려오고 물러나는 파도의 움직임에서 고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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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파편: 너울 1-4> 전시 전경. 사진: 이서영

 

 

관객은 회화의 표면을 직접 만질 수 있다. 작품의 일부를 가져가고 싶다면 장갑을 착용한 뒤 현장에 마련된 도구로 표면을 떼어낼 수 있으며, 떼어낸 조각은 포장해 가져갈 수 있다.


<삶의 파편: 너울>은 없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처음에는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지만, 관객의 참여가 이어질수록 표면이 깎이고 비워지며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작품에서 사라진 자리는 누군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흔적이 되고, 전시장을 떠난 조각은 또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갖는다. 그 조각은 간직해도, 버려도, 잊거나 잃어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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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삶의 파편: 너울> 의 일부를 직접 떼어내고 있다. 사진: 이서영

 

 

전시장에 비치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작가의 목소리로 제작된 국문·영문 작품 설명과 참여 안내를 들을 수 있다. 여분의 이어폰도 준비되어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만지고, 듣고, 떼어가는 과정까지 모두 전시의 일부가 된다.


<구명의 서>는 이미 완성된 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작가와 관객이 함께 문장을 덧붙이고, 작품의 일부를 비워가며 만들어가는 기록에 가깝다. 부고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말에 덮이고, 회화의 결손은 또 다른 삶과 기억으로 이어진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전시의 끝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결국 삶이다. 언젠가 끝나버릴 삶이라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애절하고도 어색한 고백. 그 고백이 바로 <구명의 서>이다.


김하녹 개인전 <구명의 서>


기간: 2026. 9. 2.-9. 18.

관람 시간: 화-일 14:00-18:00, 월요일 휴관

장소: 헤리시

주소: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58-1, 에이치원빌딩 B1F

인스타그램: @hanokdrawdreams

문의: palantehaeon9@gmail.com


본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전문화재단의 K-Art청년창작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받은 사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