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아트뮤지엄은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스웨덴국립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이 협업한 전시로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 79점의 명작을 선보인다.
스웨덴 - 대한민국 수교 6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이 특별 전시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북유럽 국가에서 두드러진 예술발전과 북유럽 특유의 화풍이 정립된 배경을 조명한다. 당대 젊은 스웨덴 예술가들은 역사화와 풍속화만을 고집하던 보수적인 예술계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회화 실험과 전시 기회를 갈망하며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고국으로 귀향한 후 그들은 표현의 대상과 예술적 주체를 지역 모티프에서 찾는 등, 이국에서 체득한 화풍을 북유럽의 정경과 현실에 접목했다.
전시명 <새벽부터 황혼까지>는 '동이 튼 예술적 혁신이 예술적 성숙의 황혼기와 민족 낭만주의로 무르익을 때까지'라는 상징을 내포한다. 본 전시는 당대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이 직면한 현실을 드러내며 국제 무대에서 연마한 그들의 표현법이 귀향 후 모국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북유럽 특유의 예술 확립으로 귀결된 여정을 보여준다.
근 2년 만에 마이아트뮤지엄을 찾았다. 지난번 전시는 호안미로전. 마이아트뮤지엄의 높은 퀄리티에 감탄하며 전시를 관람한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 소식을 전해듣고 2년 전 생각이 났다. <새벽부터 황혼까지>라는 명칭이 마음에 들어 전시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전시를 개최하는 곳이 마이아트뮤지엄이어서 궁금증은 더 커졌다. 이번엔 어떤 작품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줄까, 싶었다.
전시는 총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챕터1부터 4까지는 각 주제 아래 메인 작품을 전시 중이고 마지막 챕터는 '칼 라르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는 북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 만큼 북유럽 미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전시관에서 친절히 작품 배경을 설명해주는 만큼 모르고 있다 해서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다. 필자 역시 관련 지식이 전무했지만 간단한 설명을 보는 것 만으로도 전시를 보는데는 충분했다.
설명을 천천히 즐기면서 보는 게 전시를 풍요롭게 만들기는 하나, 이번 전은 머릿속에 관련 정보를 꽉꽉 채워넣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처럼 해석이 필요한 작품들이 아닌, 직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묘사하려 노력한 작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편한 마음으로 봐도 재밌게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번 리뷰에서는 필자가 인상깊게 봤던 작품 몇 편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둘 생각이다. 부연 설명이 길지는 않으니 리뷰 역시 편한 마음으로 봐주면 좋을 듯 하다.
오, 아름다운 강산이여
이번 전시 작품들은 보수적인 기존 스웨덴 화풍(역사화, 풍속화)에서 벗어나 기회의 땅인 프랑스에서 습득한 외광 회화를 적극 수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외광 회화는 야외에서 직접 빛을 관찰하여 그리는 방식의 회화로 놀라울 정도로 빛을 세밀하게 묘사한 게 특징이다.
<샌드빅의 피오르>, 한스 프레드릭 구데 ©Nationalmuseum Stockholm
챕터1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샌드빅의 피오르'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사진이라 착각할 정도로 빛의 묘사가 탁월하다. 아무리 봐도 사진같아 가까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저 멀리 펼쳐진 산과 구름이 1차적으로 감탄을 자아내고 바다의 잔물결에서 2차로 감탄, 흩뿌려진 빛의 세밀함에 3차로 감탄했다.
자연풍경을 너무나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최고의 작품이다. 작품을 그린 한스 프레드릭 구데는 노르웨이의 가장 뛰어난 풍경화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일생 동안 노르웨이 산과 피오르(노르웨이어로 내륙으로 깊게 뻗은 만을 의미. 빙하가 이동·침식하면서 형성된 U자곡이 바다와 만나면서, 바닷물이 U자곡으로 들어와 침수된 해안지형. 유럽 중에서도 노르웨이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지형이기에 명칭이 노르웨이어로 굳어졌다)를 묘사하는데 집중했다고. 한스 프레드릭 구데의 다른 작품들이 더 궁금해진다.
<베니스 대운하>, 칼 스콘베르그 ©Nationalmuseum Stockholm
이전 작품이 맑은 날을 묘사한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은 가벼운 소나기가 내리는 장면을 묘사했다. 비가 내렸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지점은 거울에 비치듯 반사된 바닥 덕분이다. 사람들이 우산을 들었다는 사실보다 노면의 상태로 비가 내린다는 걸 알아차렸기에 이 역시 묘사가 탁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로로 긴 작품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건 오른쪽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형태로 추측컨대 시민들이 모이는 문화공간 아닐까 싶다. 하늘로 솟은 건물을 따라 자연스레 시선이 위로 향한다. 이윽고 구름에 시선이 닿는다. 구름속으로 푸른 하늘이 살짝 엿보이는데 이로 인해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마냥 울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곧 구름이 개고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쬘 예정이리라. 평화로운 오후의 작품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봄의 아침, 새비 숲 구주회 경기장>, 칼 프레데릭 아가르드 ©Nationalmuseum Stockholm
사진으로 작품의 세밀한 묘사가 담기지 않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지만, 위 작품 역시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늘진 숲의 풍경을 잘 묘사해 빨려들어갈 정도로 흡입력이 높다. 나뭇잎으로 내리쬔 빛에 의해 바닥에 그림자가 진 모습을 보면 자동으로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실제와 유사하게 묘사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라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작품 속 인물들은 구주회(볼링의 전형)를 즐기고 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필자는 내향인이지만, 기분이 좋아지면 외향인과 유사한(다만 찐외향인 입장에서는 티끌만도 못한) 에너지를 발휘하는데 작품 속 사람들에게 "같이 한판 하실래요?"라고 먼저 물어보고 싶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숲속에서 치는 볼링이라니, 이처럼 근사한 일이 어디있을까!
<피오르 풍경>, 소피 베렌시올 ©Nationalmuseum Stockholm
피오르가 많은 노르웨이답게 피오르 작품이 많다. 고요한 피오르 속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풍경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영감을 받은 실제 장소가 궁금해지는데 작품 속 장소는 어디일까 굉장히 궁금해진다. 내 눈으로 직접 작가가 본 풍경을 직접 보고싶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한나 파올리 ©Nationalmuseum Stockholm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실내 풍경을 그렸다. 그럼에도 다르지 않은 점이 있다면 빛을 세심히 묘사했다는 점이다. 방 안 구석구석 비치는 빛과 내부를 가득 채운 온기로 마음이 따스해진다.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안나 보베르크 ©Nationalmuseum Stockholm
챕터 2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이렇게 보면 크기가 작아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꽤 길어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웅장함에 지배돼 오래도록 작품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꼭 실제로 보시길 바란다.
<베스트만란드주 엥겔스베리의 호수>, 올로프 아르보렐리우스 ©Nationalmuseum Stockholm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작가는 스웨덴 베스트만란드 주의 광산이었던 엥겔스베리의 스나이텐 호수 풍경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가장 스웨덴스러운 그림'으로 꼽혔다는데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거울로 비친 풍경의 모습이 아름다워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지역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언젠가 꼭 해당 지역에 가보고 말테다.
이외에도 작품은 정말 많지만 풍경 사진 위주로 리뷰를 써봤다. 마이아트뮤지엄 전시는 언제 봐도 만족스럽다. 이번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가 느낀 웅장함과 경이로움, 감탄을 꼭 여러분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열리는 그 안에 가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