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ftersun, 탄 살갗에 연고를 발랐다 [영화]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손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서도 aftersun을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 <애프터썬>은 2023년 2월에 개봉한 영화로, 튀르키예에서 여름방학을 보낸 11살 소피의 이야기지만 봄이 오려면 아직 멀은 겨울 끝에 개봉한 것이다. 나는 이미 한 차례 개인 블로그에 애프터썬의 감상문을 적은 바 있다. 이 오피니언은 당시 작성했던 나의 감상문과 2024년 재개봉한 여름날의 감상을 더해 새롭게 적어 내린다.
aftersun; 해가 지고 난 후, 또는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
after는 ‘이후’라는 의미를 가진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나는 after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아프고 슬픈 의미를 가질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난 뒤를 뜻하는 이 after는 감독의 현재이자 11살 소피였던 시절의 이후를 뜻한다.
aftersun은 말하자면,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인데 연고로 볼 수도 있겠다. 우리 모두 다치고 나서 생각할 것이다. 미리 조심할 걸, 미리 알아둘 걸.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했을지도 모른다. 미리, 내가 잘했더라면, 내가 그때 어땠더라면. 과거를 회상하며 자책하는 마음을 시작으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당부할 것은 넘어져 까진 피부에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 되듯, 우리가 가진 상처도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 된다는 사실이다. 물리적 상처도 정신적 상처도 우리는 보살필 수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 영화는 이혼한 아빠 폴과, 엄마와 단둘이 사는 어린 딸의 여행으로 시작한다. 맞은 편에서 공사가 한창인 리조트에서 물놀이를, 사춘기에 접어든 소피는 언니, 오빠들과 노는 게 즐겁다. 물론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와 갈등을 빚기도 하고 리조트에서 만난 또래 남자아이와 수영장에서 몰래 키스도 했다. 소피는 우리가 그랬듯, 어른들의 사정을 꿰뚫어 보기도 했다. 아빠는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 소피가 원하는 음료를 자유롭게 시켜주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치가 아주 빠르다. 어른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엄마와 아빠가 ‘돈’으로 부부싸움을 한다든지,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허리띠를 졸라맨다든지. 소피도 어린 나와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부모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 모른 척한다. 눈치껏 둔한 척을 한다. 소피는 그런 아이다.
캠코더
영화는 소피가 캠코더로 영상을 찍는 모습이 나오고, 해당 영상도 장면에 포함되어 있다. 캠코더 조작법을 폴에게 배우고, 동영상을 찍고 킨다. 전원을 눌렀다. 이 영화는 소피의 캠코더 영상으로 첫 시작의 포문이 열린다. 우리는 종종 ‘남는 게 사진이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나는 사진보다 영상을 찍을 걸 후회하기도 한다. 목소리, 웃는 눈, 움직이는 눈동자, 이런 것을 보고 싶어서. 영화의 마지막에 30대가 된 소피가 등장하는데, 소피는 캠코더 영상을 재생했을 것이다. 아마 소피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영상을 찍어서 다행이라고. 소파 테이블 아래에 깔린 아빠가 선물해준 카펫을 밟으며.
각각의 카펫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졌어요.
폴과 소피가 함꼐 카펫을 사러간 장면이 있다. 가게 주인은 “Each Of These Carpets Tell A Different Story”라 한다. 소제목이 된 “각각의 카펫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졌어요.”라는 뜻이다. 먼저 폴과 소피가 함께 카펫 가게에 있었다가 폴은 홀로 또다시 카펫 가게에 간다. 카펫을 구매하고 그 자리에서 카펫 위에 누워 생각하기도 했다. 이 카펫을 소피에게 선물한 폴은, 이게 유품이 될 것을 알았을까. 그래서 마지막 선물을 한 것일까. 나는 영화를 본 뒤로 그 생각만 했다. 폴의 선택은 충동에 휘둘린 것인지, 마지막을 예견하고 간 여행이었을지.
*
영화는 중간마다 춤추는 폴의 장면이 삽입되어있다. 클럽 같은 곳에서 불빛이 번쩍거리며 그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여행에서 소피를 방 안에 재워두고 클럽을 가서 노는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뒤론 그 춤이 몸부림이었음을 짐작한다. 아무리 소리치고 몸을 꺾어대도 남들은 춤과 노래로 알겠지. 그 속에서 폴은 몸을 움직이며 서서히 사라져간다. 영화의 끝이 다다라가면, 어른이 된 소피가 몸부림치는 폴을 꽉 껴안는다. 울며 소리치고 폴을 배웅한다. 비슷한 나이대가 된 폴과 성인된 소피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알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다. 폴은 소피를 사랑했고 소피도 폴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폴은 소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호신술을 가르쳤고. 카드를 썼다. 그 안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담아 건넨다. 너를 사랑한다고. 그것을 잊지 말라고. 이 이야기는 카펫에 돌돌 말아져 날아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알라딘의 마법 카펫처럼 말이다.
Sophie, I love you very much
Don’t forget Heart
Dad
권민기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