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마뜩잖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대에게 한 마디만 허락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당신은 꽤 별난 사람입니다. 어느 20대가 다른 사람을 그대라고 부르나요. 그런 말투를 쓰니 할아버지라고 놀림을 받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네요. 말하고 보니 우리는 아주 단단히 조진 것 같습니다. 어찌 이리 한결같이 살고 있나요. 가끔은 좀 변하고 그래보세요.
늘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어 했는데, 이루지는 못한 것 같네요. 원인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겁쟁이에다 핑계만 찾는 사람이었어요.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고,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고, 그렇게 핑계에 핑계를 대다가 그럴싸한 게 없으면 뒤로 미뤘어요. 언젠가는 할 것이라고 실천하지 않을 다짐만 세뇌하듯 반복하면서. 허울 좋은 핑계들로 사실은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내 모습과 언제까지고 뒤로 미루는 태도를 가리는 거였죠.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참 짜치네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인연도 그런 식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놓쳤다고 해야겠네요. 애초에 붙잡지도 못했으니까. 특히나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엮일 사람에게는 더 그랬습니다. 경제적인 여건을 갖추지 못해 누굴 만날 처지가 아니다.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여유를 낼 수가 없다. 참 솔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현실을 직시할 각오가 없었으면서. 누군가를 믿었다가 다시 다치면 어쩌나 하는 으레 짐작에 겁을 먹었으면서.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변명거리를 찾아 헤맸네요. 참 못나고 비겁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지만 지금의 나는 당신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되돌아보니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유별난 삶을 산 게 아니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누구나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걸 몰랐을 뿐이었네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예요. 지나고 나서 되돌아볼 때야 깨달을 일이죠.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렸고, 그동안은 넘어지지 않으려 바닥을 보기도 바빴으니까요. 이제라도 잠깐의 여유를 가지고 내 주변을 둘러볼 줄 알고, 그 사람들이 의지하고 싶은 어른이 됐으니 그걸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원하던 목표도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 중입니다. 그 보람 덕분에 다음 하루를 향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네요. 이렇게 한 주, 한 달, 그리고 일 년을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의 내가 당신처럼 애늙은이로 살고 있을지, 아니면 때 이른 회춘을 맞이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는 없잖아요.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도 저질러봐야 알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이제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려고 합니다.
제발 자기 주제를 알고 사세요. 세상에 완벽은 없습니다. 당연히 어떤 것을 위한 완벽한 준비도 불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산정할 수도 없습니다. 천재, 아니 슈퍼컴퓨터를 가져와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잘 봐줘야 겨우 범재가 될까 말까 하는 당신이 무슨 수로 그 힘든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건방지게 굴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생긴다면 일단 하세요. 저지르고,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세요. 그렇게 배우면 됩니다. 기회를 그저 날려 먹지 마세요. 그러면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도태되는 겁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를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으니까요. 아플 것도 압니다. 하지만 같은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래 매를 휘두릅니다. 이미 우리는 많이 힘들었고, 아팠고, 고생했습니다. 이제 충분해요. 이런 말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와닿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말하고 보자는 생각입니다. 다짐은 실천할 때 의미가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인생은 이렇게 살아가세요. 그렇게 살다가 참 재밌게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