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날을 허락해 주세요
시들지 않는 사랑을 주세요
소리 없는 말을 해주세요
날 미친 사람이래도 좋아요
- 유다빈밴드 'Letter' 中
지금 제주는 고사리 장마야. 하루걸러 하루씩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 고사리를 꺾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어. 이맘때면 세상은 푸르러지고, 공원에는 봄과 여름 사이의 계절을 즐기는 사람이 가득하지.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바쁘게 달리고 있어서, 한 뼘 쉬어가라는 말이 좀처럼 와닿지 않아.
최근에는 몸도 많이 지쳤어. 피곤함이 쌓이다 보니 입술 포진도 생기고, 어깨도 결려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어. 몸도 쉬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마음처럼 쉬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어. 마감을 앞둔 지금은 누워서 하릴없이 잠도 자고, 편지를 쓰겠다고 온갖 편지 책을 다 갖다 놔 읽는 중이야. 웃기지 않니? 편지를 쓰려면 편지 책이 필요한 네가, 방법을 글로 배우고 있는 네가, 어쩌면 오랫동안 외로웠을 네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서 그저 위로해 주고 싶었어.
너는 언제나 열심히 했지. 나를 바라봐 주길 바래서 열심히 했단 걸 알아. 너의 책임감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 손을 필 수조차 없게 굳은 힘이 들어가 있었어. 힘을 빼도 돼, 라고 말을 해도 너는 안 듣겠지. 꼭 아파봐야만 그제야 조금씩 무게를 내려 놓던 너니까. 그래서 힘들었던 걸 알아. 아픔마저 맛보고 나서야 추동을 멈추는 걸 나라고 어찌할 수 있었겠니.
나는 그게 후회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 생각해. 후회는 미련을 불러오니까. 미련은 늘 곁에서 맴돌고 있었어. 처음 미련을 배웠던 날이 생각나니? 네가 죽을 만큼 사랑했던 피아노를 놓아주어야 했을 때를. 처음이었지. 너는 그저 욕심 없이 좋아해서 하는 것인데 세상은 재능과 평가로 생채기를 냈어.
첫 마음이 또렷해서였을까? 늘 안전한 길로 우회하던 네가 기억나. 그러다 꿈틀거리는 마음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을 때, 너의 좋아하는 마음이 재능이란 벽을 넘고 피어올랐을 때를.
그건 살아가기 위한, 아닌 살기 위한 거였어. 처음의 생채기가 날이 갈수록 피딱지로 바뀌고, 또 상처를 입으면서도 즐거워하는 너를 더는 막을 수 없을 거란 걸. 좋아하는 글 좀 쓴다고 극적으로 인생이 바뀌진 않겠지만, 너의 표정이 바뀐다는 걸 알고 나서야 깨달았어. 울고 웃는 날이 오더라도 너는 이제 포기하지 않겠구나. 그저 즐거우면 나도 좋았어.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너를 가두지 않을게. 누가 무어라 떠들어도 너는 너만의 길을 가!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괜찮아. 대신 조건이 있어. 묵묵히 견뎌온 너의 마음, 그리고 감정에 한 번씩 볕을 쐬어줘. 참고 참았던 게 터지지 않도록, 울분이 되지 않도록 슬픈 우울함이 되어 다시 너를 놓아버리지 않도록. 그 정도의 여력은 남겨놔 줄래? 전력을 다하지 않는 날을 선물해 줘. 그게 내 바람이야. 더는 지치지 않게 말이야.
5년 뒤, 10년 뒤, 그 후에도 너는 무엇이 되지 못했을지 몰라. 그럼에도 기억해. 무엇이 되지 못한 건 너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란 걸. 그럴 땐 그저 지금의 일상도 괜찮다고 방긋 웃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용하길 바랄게.
그럼,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언젠가 피어날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