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오르막길처럼 산을 오른다면 런웨이는 그 정상 꼭대기같이 보인다. 모든것이 스스로를 완벽하다며 드러낸다. 옷도, 머리도, 메이크업도 그 장소도. 아, 현대사회의 나비같은 존재! 런웨이는 욕망을 최대로 고취시키는 공간이다. 이 욕망은 참여욕망이기도 하고 소비욕망이기도 하지만 더 큰 차원에서, 매끄럽게 아름답고, 요상하게 새로워서 셔터를 누르게 하는, 그 자체로 끝이 없는 미학, 그 미학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온 정신을 앗아가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과 리듬을 같이 같이 한다. 모델의 워킹과 비트가 하나가 되는 것처럼.
그런데 런웨이 자체를 하나의 예술행위로 볼 수도 있을까. 아름다움, 놀라움, 새로움, 의미창출의 향연인 런웨이를 예술로 보지 않는 것이 직관적으로 더 힘든 일일수 있겠다만, 그 자체를 예술로 치환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도 한켠 있다. 예술이 숭고할 필요는 없지만 예술에 거는 또 다른 기대가 커서, 또 런웨이는 런웨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거대한 패션산업 앞에 서있는 좁은 길이라서. 런웨이는 감각의 제국 중 그 심장, 또 다른한편으로는 아주 고급스러운, 그래서 더이상 "저급한" '홍보' 따위로 보이지 않는 브랜드 홍보의 현장.
얼마전 여성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에서 미우치아 프라다 부분을 읽었다. 새삼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가와 디자이너 사이 모호한 경계에 위치해 있음을 알게되었다. 창의적이고 본인을 표현하는 방편이되 궁극적으로는 팔기 위함이라니, 모든 패션 디자이너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단정지을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별안간 놀람으로 다가왔다. 명품 브랜드들의 '거리두기'에 세뇌가 됐었었나, 브랜드나 디자이너는 마치 판매의 목적은 신경쓰지도 않고, 아름다움 같은 것에 대한 광기적인 추구나 숭고함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무의식에 품고 있었던것 같다. 명품 브랜드들은 너무나도 매끄럽게 '거리두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바.
날이 갈수록 시각예술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증가하는 것 같은데 그 수요중에 관람적 혹은 예술적 수요보다 소비적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적으로 커지는 것처럼 보여 슬픈 마음이다. 경매되고 재태크로 사용되는 미술품이나 포토존으로 설치되는 전시들이나 다 상품에 가까워 보인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이 주술의 기능을 넘어 전시의 기능으로 옮겨왔다고 했는데 최소한 예술품은 요즘 사회에서 조금의 전시, 그리고 보관과 결합한 (안전하고 본새나는) 자본 축적의 기능으로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건 아닌지. 이런 말을 하며 나는 달과 6펜스에서 서머싯 몸이 말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를 품어안지 못하고 과거만을 유희하는 사람이 된것일까..조금 돌아보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재미를 위해 (인기없는)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적으리라!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로움(newness)'을 만들고 거리두기등을 통하여 이런 새로움을 영영 낯선것으로 유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것이나 판매와 고가치 부과라는 노골적인 의도가 어딘가 모든것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런웨이나 옷, 패션소비주의만을 탐욕스럽게 몰고갈수는 없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이 동일한 선상에서 문제가 된다. 소비주의의 기저에는 현대인의 돈에 대한 사랑과 세계관이 있기에 삶의 많은 것들이 동일한 도마위에 오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돈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그만큼 돈의 유용성, 즉 돈으로 할수 있고 살 수 있는것들이 증가했다는 소리다. 자본주의가 적극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합리화되는것은 많은 기술발전과 상품 생산을 통해서인듯하다. 결국 돈이 좋은건 소비가 좋아서니까. 기술, 시각적 유희와 접목하여 소비할 거리가 더 더 많아지는 이상 돈도 더더 좋아질 수 밖에 없다.존 버거는 광고의 문제는 소비가 행복을 약속하는 것처럼 우리를 기만하는 점이라고 한다-요즘 세대는 이 사실 조차 그대로 긍정하는 것 같지만-. 명백히 우리의 하위구조는 경제, 경제, 그리고 또 경제다).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도 분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위의 책에서 각 나라의 '정치적 옳음' (Political Correctness)을 고려하며 옷을 만드는 것이 큰 재미라고 했는데, 스스로가 정치적 옳음을 자처하는 브랜드도 생겨났다. 발렌시아가는 작년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지하는 런웨이를 기획했다.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는 조지아 출신으로 난민의 경험이 있는 뎀나. 그는 일정금액 이상을 기부하면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지하는 표시가 있는 티셔츠를 판매했다.
[Balenciaga, winter,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