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어느 추운 겨울, 부산 여행을 갔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새까만 밤바다에 이끌려 두어 시간을 멍하니 서 있었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계속해서 맞으면서도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의 기억은 추위보다 더 강렬한 해방과 해소라는 감정으로 내게 남았다.
그로부터 반년 뒤, 생일에 하루를 모두 비우고 무작정 가까운 바다로 향했다. 마음이 힘든 시기였기에 사람을 만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대신 바다를 봐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도 가는 데에만 거의 세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락사락 다리를 스치는 원피스의 감촉과 계속해서 들리는 파도 소리에 몸을 맡긴 채 해안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날이 흐려 반짝반짝하거나 투명한 느낌의 바다는 보지 못했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알 수 없는 위로를 주었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던 때에는 생애 첫 일출을 보러 아침 일찍 바다로 달려갔다. 넘실넘실한 바다를 앞에 두고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자니 영원히 그 장소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 이후로 바다에 갈 일이 생기고 일정이 된다면 꼭 일출 혹은 일몰도 보려고 한다.
오랜 시간 바다를 마주한 뒤로 내게 바다는 위로의 장소가 되었다. 힘든 일이 있거나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 바다를 찾는 일이 잦아졌고 작년에는 5일의 여름휴가 내내 바다만 보기도 했다.
바다의 어떤 속성이 나를 끌어들이냐고 물으면 영원히 계속되는 성질, 즉 영속성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바다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파도 소리 또한 그렇다. 그러면서도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으면 잡념이 씻겨나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넘치고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기 위해 짤막하게 글을 남겼고, 그 생각을 하던 장소 혹은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렇게 붙잡는 때가 있기 때문에 바다를 보면서 모든 생각을 놓아버릴 때도 필요했다.
즐겨듣는 노래 중 호피폴라의 ‘너의 바다’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서 ‘바다’는 사람의 내면을 뜻한다. 당신이 내면의 깊은 감정에 가라앉을 때 그 곁에서 함께 바다를 걸어보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비유처럼 바다를 볼 때가 나의 내면을 오롯이 들여다 보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의 끈을 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나’도 있는 것 같다.
힘들 때 바쁜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내면서도 먼바다를 찾게 되는 건 결국 바다가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자연물이지만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이기에 더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와 바다의 관계가 앞으로도 영원했으면 한다.